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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국모! 뮤지컬 명성황후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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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29. 11:37

 

 

ㅣ 뮤지컬 명성황후ㅣ


 



안녕하세요, 가꿈사 4기 김한진, 전윤정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내용은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 관람 후기와 명성황후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이에요.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조선왕조의 마지막 국모(황후)는 순종의 왕비였던 '순정효황후'가 맞아요. 하지만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기 전, '조선'이라는 국호가 있었을 때의 마지막 황후는 바로 명성황후였답니다. 또 비운의 시대를 살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명성황후의 파란만장한 삶은 우리에게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어 '조선의 마지막 국모'라고 하면 으레 명성황후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지금부터 뮤지컬 명성황후는 어떤 작품인지, 또 명성황후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할까요?




뮤지컬 <명성황후>는 어떤 작품일까?



(출처 : 더뮤지컬)

 



뮤지컬 <명성황후>는 다양한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을 선보이는 '에이콤 인터내셔널'의 대표 작품으로 1995년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초대형 뮤지컬이에요. 또, 국내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으로 이 당시로써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해요. 뮤지컬 <명성황후>는 1997년 한국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 안에 있는 뉴욕주립극장(New York State Theatre)에서 상연되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고 이 밖에도 다양한 해외 공연을 했답니다. 또 각종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어 대상·연출상·미술상·의상상·연기상을 받았어요.



뮤지컬을 줄거리를 소개해드리기 전, 을미사변이 발생하기까지의 계기와 당시의 역사적 흐름을 조금 살펴볼까요?


당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자면 가장 먼저 임오군란을 언급할 수 있어요. 1882년 일어난 이 군란은 신식 군대와의 차별 대우에 반발한 구식 군대가 일으킨 난이에요. 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장악하는 듯하지만 명성황후는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이내 임오군란을 제압했답니다.


이후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데 이를 제압하기 위해 일본과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왔고 수많은 조선 양민이 학살당했어요. 동학농민운동을 무마하기 위해 조선에서 대치 상태에 있던 청과 일본은 같은 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일전쟁'을 벌였고, 결국 일본이 승리를 거두었어요. 그리고 그 대가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의 랴오둥 반도를 얻었죠.


하지만 당시 강대국이었던 러시아, 프랑스, 독일은 일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청나라에 랴오둥 반도를 반환하도록 압력을 가했답니다. 이처럼 강대국들이 제각각 전쟁과 식민지배를 통해 세력 불리기를 하는 와중 명성황후는 조선 내에서 점점 커지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친러 정책을 세워 친일인사를 축출하고 친러 내각을 구성하게 돼요.  이로 인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잃을 것을 염려한 일본이 주한 일본 공사인 미우라의 주도 하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이에요. 그럼 본격적으로 뮤지컬 '명성황후'의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할까요?




뮤지컬 명성황후 줄거리



뮤지컬 명성황후의 서막은 1896년의 히로시마 법정 장면으로 시작해요. 명성황후 시해 주범 12명에게 재판장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 판결을 내리고 일본의 힘을 과시하는 웅장한 코러스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를 회한의 눈으로 지켜보던 대원군이 비운의 왕비 명성황후를 추억하기 시작해요. 




(출처 : 더뮤지컬)



1막은 민자영이 왕비로 간택되는 1866년부터 임오군란 후 행방불명되었다가 환궁하는 1882년까지를 담고 있는데요, 조선을 넘보는 서양 오랑캐들, 세자가 탄생하고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며 개화파와 수구파의 갈등이 심화하는 등 국내외 어수선한 정세를 표현하고 있답니다. 



(출처 : 더뮤지컬)



2막은 명성황후 시해가 벌어지는 1895년을 그리고 있어요. 대신들과 외교관 부부들의 성대한 초청 연회로 시작되는 2막에서 명성황후는 노련한 정치가로 자리를 굳힌답니다. 그런데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는 명성황후의 지략에 당황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를 모의해요.



(출처 : 더뮤지컬)



마침내 잔혹한 '여우 사냥'이 시작되고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 당해요. 명성황후의 죽음 뒤 홀로 남은 어린 세자가 '나는 이제 어찌하나'라며 구슬피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눈시울이 살짝 젖어들었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실제 명성황후가 시해 당했을 당시 세자의 나이는 이미 20대 청년이었다고 해요. 아무래도 극적인 효과를 살리기 위해 극 중에서는 나이를 낮춘 것 같더라고요.


사진 속 장면은 죽은 명성황후의 혼이 나타나 함께 죽어간 나머지 궁녀들과 신하들을 이끌고 맺음 막의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부르는 장면이에요.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이기도 해요. '백성이여 일어나라, 동녘 붉은 해 동녘 붉은 해 스스로 지켜야 하리라'라고 노래 부르던 명성황후의 카리스마에 찌르르한 전율을 느꼈답니다. 





이날 제가 관람했을 당시 명성황후와 고종을 연기하신 분은 각각 이혜경, 윤영석 배우님이에요. 그러고 보니 두 분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 당시 각각 크리스틴과 팬텀 역을 맡으셨는데 이렇게 부부로 다시 호흡을 맞추셨더라고요! 이혜경 배우님은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연기력으로 유명하신 분인데 가녀린듯하지만 심지 굳고 당당한 조선의 국모를 연기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답니다. 


명성황후는 드라마와 뮤지컬을 통해 실제 모습과 다르게 표현되면서 굉장히 미화된 인물이기도 해요. 그렇다면 명성황후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비운의 국모와 매국노라는 명암을 동시에 안고 있는 그녀, 명성황후



황현의 매천야록에 기록되어 있길 중앙의 요직은 물론 지방의 방백, 수령까지도 좋은 자리는 모두 민씨 가문들이 차지했고, 대원군이 10년간 쌓은 국부를 순식간에 탕진한 여자라고 기록되어있어요. 또한, 명성황후는 안동 김씨 이후 사라졌던 세도정권을 부활시켜 조선의 멸망을 가속하고 무속신앙에 심취해 많은 국고를 굿이나 잔치에 탕진했고 매관매직의 성행을 부추겼다고 해요.


그렇지만 명성황후의 정책에 관한 역사연구가들의 긍정적인 견해도 있는 만큼,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서 역사의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역사의 단면만 보시지 말고 여러 면을 살펴보고 판단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출처 : 명성황후 생가 공식 홈페이지)



명성황후 생가


 

 


주소 : 경기도 여주시 능현동 250-2

전화번호 : 031-880-4022

대중교통 : 버스  915




이곳은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한 명성황후 생가와 명성황후 기념관이에요. 명성황후와 관련된 유적과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으니 가족끼리 방문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명성황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문헌은 대표적으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중 명성황후를 직접 알현하고 남긴 기록을 들 수 있어요. 여기서 그녀는 사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평가되고 있죠. 또, 일각에서 흥선대원군이 10년간 축적한 재정을 명성황후가 1~2년 만에 허비했다는 글에 대한 반박으로 당시 대원군이 무리하게 경복궁을 재건시키다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당백전까지 발행할 정도였는데 10년간 축적할만한 재정이 어디에 있느냐는 의견도 많아요. 이처럼 명성황후와 관련된 내용은 현재도 의견이 분분하답니다.



명성황후는 청이나 러시아에 의존해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민씨 일가의 악행을 묵인했다는 점에서 더러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이 한 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국모를 잔인하고 수치스럽게 살해한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구한말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뜻깊은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분도 기회가 되신다면 재미와 감동이 가득한 뮤지컬 '명성황후'를 한 번쯤 관람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프론티어 기자단이 자신 있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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