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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대학생동북아대장정! "가자! 고구려의 기상이 숨 쉬는 대륙으로" (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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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4. 14:22





교보생명 공식 블로그 '가족·꿈·사랑'의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프론티어 기자단 5기 임윤경입니다. 이렇게 가꿈사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고 설레는데요, 앞으로 알찬 이야기를 전해드리기 위해 노력할게요. 많은 응원 부탁 드립니다. ^ㅡ^! 제가 처음으로 여러분께 전해드릴 이야기는 바로 2014 교보생명 대학생동북아대장정(이하 동북아대장정) 5일차 이야기랍니다. 이날 저희는 백두산에서 느꼈던 감동을 뒤로하고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렸던 발해의 발자취를 쫓아갔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도록 할까요?!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渤海)를 더듬어 가는 여정



이날은 4일동안 정들었던 2단계 조원들과 헤어지고 마지막 3단계 조로 활동하는 첫날이었어요. 새로운 조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저희 대원들은 '돈화육정산고분군'으로 떠났답니다. 특히 이날은 늘 입던 단체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활동했기에 동료 대원들의 색다른 모습과 개성을 알 수 있었어요. 그 덕에 더 즐거운 기분으로 버스에 올랐답니다. 이날 일정은 '육정산'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육정산이라는 이름은 봉우리가 여섯 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어떠신가요? 사진 속 저 멀리, 여섯 개의 봉우리가 잘 보이시나요?! 육정산에는 발해 시기의 왕실·귀족의 고분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요, 그 덕에 육정산은 발해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답니다. 육정산의 발해 무덤군은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산 서쪽 평지의 무덤구역을 제1무덤구역이라 하고, 산 동쪽 평지의 무덤구역을 제2무덤구역이라고 부른답니다. 제1무덤구역에는 30여 기의 무덤이 산기슭으로부터 산 중턱에 이르기까지 분포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하나가 정혜공주묘랍니다.


정혜공주는 발해 3대 왕인 문왕의 둘째 딸이에요. 그녀의 묘는 발해건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줘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답니다. 경혜공주묘는 발해의 건국지역인 동묘산이 바로 이곳, 육정산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 다녀온 고구려의 오회분오호묘처럼 석실봉토묘 형식을 취하고 있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음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이러한 중요성을 인정받아, 육정산고분군은 현재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선정되어 보호받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저희 대원들은 육정산고분군을 멀리서 조망한 후, 발해의 가장 오랜 도읍이었던 '상경용천부'로 이동했답니다.


발해는 도읍지를 많이 옮겼던 국가였답니다. 발해가 지속된 약 230년 동안 총 다섯 번의 천도가 있었으니 말이에요. 이곳 상경성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도읍지의 역할을 해냈다고 해요. 755년에서 785년, 그리고 이후 다시 794년의 재천도 이후 발해 멸망(926년)까지 총 162년간 수도의 역할을 했다고 하니, 228년의 발해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상경용천부가 위치한 동경성에서 저희 대원들은 먼저 발해박물관을 방문했답니다.



<발해박물관 (출처 : 바이두)>



발해박물관은 상경성 궁터를 발굴하면서 발견된 여러 유물을 전시해둔 곳이랍니다. 박물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또, 전시물을 보호하는 유리관에 금이 있다던가, 유물이 외부에 노출되어 손때가 타 있는 등 전시 상태가 유물의 역사적 가치에 비해 매우 열악해서 교수님께서도 무척 안타까워하셨답니다. 우리 민족의 유물이지만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힘들 것 같아 안타까움은 배가 되었답니다. 발해 박물관을 둘러본 뒤, 저희는 상경용천부의 왕궁 유적에 도착했어요.





위 사진은 상경성 궁성의 정문, '오봉문'의 모습이에요.





위 사진은 오붕문에서 바라본 주작대로랍니다. 쭉 뻗은 대로를 바라보니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에요~! 상경성 성터 유적이 발견된 것은 2009년이지만, 이를 발굴하고 외부에 공개 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수님도 처음 답사하시는 것이라며 매우 설레어 하셨답니다.





상경성은 발해의 행정구역인 5경 중 하나로, 발해 멸망 전까지 오랜 기간 발해의 수도였답니다. 성은 외성(外城), 궁성(宮城), 황성(皇城)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성의 평면은 동서로 기다란 장방형이면서 북벽은 밖으로 튀어나와있답니다. 동벽은 3,358.5m, 서벽 3,398m, 남벽 4,586m, 북벽 4,946m로 전체 둘레가 16,288.5m로 추정되지만 기록마다 그 수치는 조금씩 다르다고 해요. 상경성 성벽은 안팎 양쪽으로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리고 안쪽에 흙을 채워 넣은 구조이며 당시 규모는 높이 6m, 하부 너비 16~18m, 상부 너비 6~7m로 추정된다고 해요.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죠?! 외성에는 모두 11개의 성문이 있는데, 동·서벽에 각각 2개, 남벽에 3개, 북벽에 4개가 있었답니다. 

이러한 상경성은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델로 하는 계획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요, 그 크기는 장안성의 1/4에 지나지 않지만 상경성은 장안성과 흡사한 구조로 되어 있답니다.

당시 동북아시아는 장안성을 모델로 한 여러 도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발해는 장안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성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어요. 해동성국이라고 불리었던 발해인들의 기상이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어요.



<상경성의 구조 (출처 : 한국민족문화백과)>



이 그림은 상경성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파란색 네모는 우리 대원들이 답사한 내성이고, 주황색은 아까 보신 주작대로랍니다. 그리고 빨간색 동그라미는 그 다음에 찾아갈 흥륭사의 위치에요. 사진으로 내성의 모습을 보실까요?!







발해는 역사학자들에게 '잃어버린 왕국'이라고도 불리는데요, 그 이유는 현재 발해에 대한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한 나라의 멸망 후에는 그 나라의 계승국이나 그 나라를 멸망시킨 국가가 역사를 편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발해의 경우 후에 발해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고려나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때문에 상경성에서 발굴된 궁궐들에 대한 자료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은 궁성의 정문에서부터 차례대로 제 1궁, 2궁, 3궁, 4궁, 5궁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 쓰임은 당나라의 장안성 등을 참고하여 추측하고 있답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중국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발해 또한 당나라의 지방정권 중 하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참 속상한 일이죠? 하지만 상경성의 궁성에서 발굴된 온돌시설이나 독특한 형식의 석사자, 기와, 석등 등은 발해가 독자적인 문화양식을 지닌 자주국가였음을 알려주고 있어요. 특히 경복궁의 근정전에 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2궁의 경우 그 크기가 장안성의 제2궁보다 커서 발해가 '황제자주국'을 지향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답니다. 당 중심의 동아시아 문화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낸 발해인들의 자존심이 대단하죠?





발해인들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저는 '여러 북방민족과 연합하여 독자적이면서도 강성한 나라를 이루어낸 발해야말로 이번 대장정의 주제였던 소통의 리더십을 잘 보여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인지 바로 이곳에서 동북아대장정 백일장이 열렸어요. 시제는 만주와 북방. 우리 대원들은 그 동안 북방을 탐방하며 느낀 점과 생각을 모아 하나의 글을 써내려 갔답니다. 처음에 하얀 종이를 보고 모두 어떤 글을 써야 하나 막막해했지만 그것도 잠시, 모두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되돌아보면서 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백일장을 마친 뒤 13기 대원들은 발해 시기의 사찰인 '흥륭사'로 향했어요. 아까 지도에서 보신 빨간색 동그라미를 기억시나요? 발해는 불교를 매우 중시했다고 해요. 위에서 언급했던 정혜공주의 아버지, 문왕의 시호에는 ‘금륜(金輪)’이 들어가 있는데요, 이는 ‘윤보의 격이 높다’라는 뜻으로 문왕 자신의 깊은 불심(佛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요. 

왕이 모범적으로 불심을 강조했던 것이죠. 또한 상경성 내에서 총 9개의 절터가 확인되었는데, 이 또한 발해인들의 삶에 불교가 밀접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답니다.





입구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제일 먼저 사천왕상이 대원들을 맞이해주었답니다.





위 사진은 발해의 미술 양식이 온전히 남아있는 발해 연꽃 석등탑이랍니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발해 석등을 직접 보니 정말 새로웠는데요, 아직도 남아 있는 섬세한 연꽃무늬와 6.3m에 달하는 크기에 무척 놀랐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널리 전파한다는 의미를 가진 이 석등은 법회가 있을 때마다 어두운 경내를 밝혀주는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 석등은 흥륭사가 폐사되었다 다시 중창되는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고 해요. 발해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양식이 느껴지시나요? ^^





다음으로 흥륭사에서 만난 것은 삼성전 석불이랍니다. 이 석불의 본체가 바로 발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요. 석불의 머리 부분은 과거에 훼손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무척 안타까웠지만,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관음보살상을 보면서 저도 이번 동북아대장정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답니다.

이렇게 발해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흥륭사에서의 답사를 마치고, 13기 대원들은 동북아대장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목단강으로 떠났답니다.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상대적으로 알아갈 기회가 더욱 적어 안타까운 발해의 역사. 저 역시 현장을 직접 찾기 이전에는 발해사에 큰 관심을 두진 않았는데요, 앞으로 발해에 대한 연구와 유적 발굴이 계속되어 어둠에 싸여있는 발해의 역사와 문화의 찬란함을 후손들이 알아갈 수 있길 바라요. 이날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프론티어 기자단은 동료 대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보았는데요, 13기 동북아대원들이 말하는 동북아대장정과 발해 유적지에 대한 소감을 함께 들어보실까요?!






밤을 타고 달려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으며





큰 대륙이 아니고서야 경험할 수 없는 야간열차! 많은 대원들이 야간열차에 탑승하게 되는 이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저희가 타기로 예정되어 있던 기차가 갑자기 군수용으로 이용되면서 절반 이상의 표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답니다. 그래서 99명의 대원 중 여자 대원만 야간열차에 오르기로 하고 남자 대원들은 하얼빈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하얼빈에서 치치하얼까지 침대 기차를 타고 오기로 했답니다. 


물론 그룹장님들과 많은 운영진 분들이 함께 해주셨지만, 여자 대원들끼리만 이동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많은 대원들이 걱정했답니다. 기차역은 현지인들이 많아 매우 복잡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걱정도 잠시, 남녀 대원들은 모두 각자 차분하게 모여 이동했고 여자 대원들은 기차에, 남자 대원들은 버스에 모두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답니다.






처음 기차에 탔을 때 느낀 점은 '아, 내가 정말 중국에 오긴 온 모양이구나.'라는 것이었어요. 이미 중국에 왔지만 현지인들과 직접 부딪힐 일이 적었던 지난 일정과 달리, 이번 기차 안에서는 좁은 기차 칸을 함께 쓰고 현지인들과 계속 마주쳤기 때문이에요.


단체로 기차에 오른 외국인들을 신기해하는 중국인들이 간식을 선물로 주기도 했답니다. 이외에도 운영진이 준비한 간식을 먹으면서 13기 대원들은 수다도 나누고 더욱 친해질 수 있었는데요, 특히 흔들리는 기차에서 별이 총총 뜬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든 것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낭만적인 경험이었답니다.

이제 동북아대장정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리자 행복한 만큼 진한 아쉬움이 동시에 남은 밤이었어요. 이렇게 대원들은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5일차 일정을 마쳤답니다. 이제 다음 이야기는 저와 함께 동북아대장정 13기 대원으로서 참가한 전혜성 기자가 소개해드릴 텐데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동북아대장정 다음 이야기. 모두 기대해주시기 바라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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