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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일대 따라 둘러보는 서울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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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4. 13:00





교보생명 공식 블로그 가족·꿈·사랑을 찾아주신 여러분, 안녕하세요!^^ 프론티어 기자단 5기 설주환, 임윤경입니다. 일전에 프론티어 기자단은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세종로 일대를 구석구석 탐방해봤답니다. 세종로는 시청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큰 길을 말하는데요,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육조 거리'라고 불리며 조선시대는 물론 현재 대한민국 세종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심장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답니다. 그만큼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여러분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세종로의 이모저모를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그럼 지금부터 세종로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살펴볼까요?




세종로의 어제와 오늘



1. 과거와 현재의 공존, 서울 시청





먼저 서울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서울 시청에서 출발해볼까요? 사진 속 시청과 지금의 서울 시청을 비교해보면 시청 앞에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시청 광장 잔디밭이 조성된 것 외에는 아직도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또, 옛 시청 청사 뒤로 새로운 시청 청사의 모습도 엿볼 수 있는데 이렇게 옛모습과 현재를 비교해보니 과거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만 같아요. 

서울시청 청사의 역사는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경성부 청사로 지어졌던 옛 서울시청 청사는 당시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한 건물이라는 점이 특징이랍니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하는 동안 수 차례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면서 건물외관에 다소 변형이 생기기도 했지만, 건물의 주요 부분은 원형이 잘 남아 있어 당시의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답니다. 특히, 옛 시청 청사는 전체적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들과는 달리 이 건물은 외관에 장식이 거의 없어 당시 건축 경향의 분수령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해요.



오랜 시간 서울의 시청 청사 역할을 해왔던 이 건물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뜻에서 철거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어요. 바로 과거 일제 강점기의 경성부 청사였다는 점과 위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일본을 가리키는 한자’본(本)’과 닮았다는 점 때문인데요,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옛 시청사는 200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대로 보존하게 되었답니다.



한편, 시청의 옛날 모습과 지금의 모습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 청사라고 할 수 있어요. 옛 시청 뒤로 보이는 신 청사가 보이시나요? 한옥의 처마를 형상화한 신 청사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는 오랜 전통 속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지향하는 지금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문화재가 된 옛 청사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훼손이 우려되는 옛 청사의 태평홀은 자리를 옮겨 원형 그대로를 다시 복원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인 끝에 본래의 모습 그대로 옛 청사는 시민들의 정보문화공간으로 재탄생 하여 신 청사와 함께하게 되었답니다.


옛모습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는 시청의 모습을 보며, 시민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서울광장과 더불어 시청 청사는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아닐까 하고 기자단은 생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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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청사의 기억을 품고 있는 서울도서관 (☜ 클릭!)




2. 신고전주의 유럽 궁전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덕수궁 석조전







시청 맞은 편에는 덕수궁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제 덕수궁의 옛모습을 함께 찾아볼까요?! 프론티어 기자단이 마침 덕수궁을 찾았을 때, 이곳에서는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고 있었답니다. 먼저 대한민국 시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석조전의 옛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볼게요.






예전에는 없었던 분수대나 쉼터가 눈에 띄죠? 하지만 석조전 건물은 다소 달라진 주변 모습과는 달리 아름다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답니다. 그럼 덕수궁의 석조전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할게요.



석조전은 1900년 착공하여 조선이 일제에게 빼앗긴 1910년에 완공되었답니다. 석조전은 영국인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되었는데요, 당시 건축된 서양식 건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라고 해요. 신고전주의 유럽 궁전건축양식을 따른 것이 특징인 석조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남북분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미소공동위원회(1946년)가 열린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해요.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1953~1986), 궁중유물전시관(1992~2004) 역할을 한 석조전은 지금은 덕수궁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예전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만큼, 석조전은 복잡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잘 담고 있는 것 같아 석조전에게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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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비운을 함께한 덕수궁 (☜ 클릭!)




3. 서울 시민들의 삶의 터전, 청계천과 청계광장



<청계천의 옛 모습 (출처 : http://1url.kr/ntr)>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석조전을 둘러보고 나와 다시 큰길을 따라 걸어볼까요? 다시 세종로를 따라 광화문을 향해 쭉 걸어 올라오다 보면 곧 청계광장을 만나실 수 있답니다. 지금은 많이 정비되었지만, 여전히 서울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청계천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통점이 있답니다.





청계천은 예로부터 서울 사람들과 함께 했는데요, 1958년부터 1977년까지 있었던 복개 공사로 인해 잠시 우리 곁을 떠났던 청계천은 2003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복원 사업을 통해 2005년, 다시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 했답니다. 조선시대 때부터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여인들의 빨래터 역할을 했던 청계천은 이제 빌딩 숲을 가로질러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취재를 갔었던 평일 오후에도 넥타이를 한 많은 회사원들이 잠시 여유를 가지고 산책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답니다. 더불어 청계천에서 열리는 등불 축제와 같은 여러 문화행사들은 서울 시민들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있어요.





4. 서울 10대 근대 건축물, 일민미술관



<과거의 일민미술관 (출처 : http://1url.kr/ntu)>




청계천에서 잠시 여유를 즐기고 다시 길을 걷다 보면 일민미술관을 만나실 수 있어요. 청계천 바로 옆에 있지만 이 건물을 그냥 스쳐가신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1926년 동아일보 사옥으로 지어진 이 곳은 1994년 리노베이션을 통해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요. 신문이 폐간될 때에도 굳건히 모습을 지켜낸 이 건물은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서울의 10대 근대 건축물로 선정되었다고 해요. 프론티어 기자 개인적으로는 약 9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도 지금의 서울 도심과도 참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4. 대한제국 시기를 엿보게 하는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 (출처 : http://1url.kr/ntv)>





일민 미술관을 지나 길을 건너면 바로 보이는 전각. 이곳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그저 스쳐가지 쉬운 곳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전각 안에는 바로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답니다. 이름 그대로 고종이 즉위하고 40년이 되었음을 기념하는 이 비석은 1902년 건립되어 '기념비전'에 의해 보호받고 있어요. 


본래 기념비각이라고 불려야 하지만, 고종은 이 전각에 한 단계 더 높은 기념비전이라고 이름 붙여 그 품격을 높였다고 해요. 또한 비석을 보호하고 있는 기념비전이 다른 기념비각들과는 달리 기단 위에 지어지고 방위에 따라 동물상을 배열하였다는 점, 그리고 그 위치를 광화문 앞 종로 사거리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이 비석은 대한제국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또한, 전각에는 철문이 달려있어 전통적인 건축물에서 현대적인 건축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에요. 그래서 제일 먼저 소개해드렸던 덕수궁 석조전과 더불어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는 전통적인 대한제국시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연구자료로 쓰이고 있다고 해요. 


프론티어 기자단도 이번 기사를 준비하기 위해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하고 현장을 찾았는데요, 덕분에 이전에는 그저 지나쳤던 전각이 조금 달라 보였답니다. 가꿈사 가족 분들도 광화문을 찾으실 때 한 번 둘러보시기 바라요. ^^




5. 서울 시민들의 마음의 등불,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1998년 2월 광화문글판>



이렇게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를 지나면 도심 속 청량제,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을 만나게 돼요. 광화문글판은 교보생명 본사 건물에 내걸린 가로 20m 세로 8m에 달하는 거대한 글판으로, 지난 1991년 이후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늘 같은 자리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파하고 있답니다. 


광화문글판은 일년에 네 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옷을 갈아입으며 정감 어린 글귀로 수많은 시민들의 마음 속 휴식처가 되어온 것은 물론 광화문을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잡았답니다. 광화문글판의 역사는 1991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님의 제안으로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고 해요. 광화문글판의 첫 번째 문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 활력 다시 찾자’였다고 해요. 


이후 우리나라에 IMF 외환위기가 닥쳐 고통과 절망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자 창립자님은 1997년 말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라는 제안을 하셨다고 해요. 이듬해 봄 고은 시인의 ‘낯선 곳’에서 따온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1998년 2월)라는 문안이 걸리면서 광화문글판은 표어나 격언 위주였던 초기와 달리 시심(詩心)이 녹아 들기 시작했어요.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휴식처가 된 것이죠.



<2014년 9월 가을 광화문글판>



최근에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안을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빛낼 수 있는 캘리그라피와 디자인이 가미되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특히 2014년 가을편 글판은 신선한 디자인 감각을 가진 대학생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졌답니다. 교보생명은 앞으로도 광화문글판 대학생 디자인 공모전을 매년 개최해 시민들과 함께 광화문글판을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해요. 프론티어 기자단도 광화문글판을 보면서 감동과 위안을 받았던 적이 많았는데요, 광화문글판의 원래 취지와 이에 얽힌 일화를 자세히 알아가면서 광화문글판에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광화문글판이 앞으로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우리 마음의 등불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






6. 변치 않는 위용을 자랑하는 광화문





자! 이제 마지막으로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의 정문이자, 조선의 위용을 보여주는 광화문을 보러 가실까요?! 예전 사진과 비교해서 찍어보았는데 과거와 현재 모습이 거의 다르지 않죠? ^^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즉위한 지 4년째에 창건된 광화문은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웅대한 구조와 뛰어난 장관을 자아내고 있어요. 때문에 가장 뛰어난 궐문으로 평가 받기도 하는데요, 이는 우리 조상들의 섬세한 수법 덕분이라고 해요.

광화문은 크게 3개의 궐문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 중 가운데 궐문은 다른 문에 비해 높이가 더 높고 큰데요, 이곳은 임금이 행차하는 문으로 쓰였다고 해요. 그래서 가운데 궐문의 천정에는 주작이 그려져 있답니다. 광화문의 정면 좌우에는 상상의 동물이자 영물인 해태상을 설치하여, 궁궐에 들어오는 악귀를 쫓고자 했다고 하는데요, 이 해태상은 현재 서울을 지키고 상징하는 마스코트인 해치는 이 해태상의 원래 말이라고 하니,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담고 있는 또 하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죠?

광화문 앞으로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와 같이 육조의 관아들이 늘어서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곳은 옛날에 육조거리라고 불렸답니다.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0여년 간 그 모습을 잃었지만, 1864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을 통해 그 모습을 되찾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일병합 이후 1927년, 경복궁의 정전이었던 근정전과 일직선을 이루던 광화문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의 정기를 막는 다는 이유로 동북쪽으로 이전 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답니다. 설상가상, 한국전쟁 때는 폭격으로 이마저 소실되기도 했어요. 


1968년, 광화문은 복원되기는 했지만,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철근콘크리트의 모습이었고, 도로확장으로 인해 본래 위치와는 동 떨어져 뒤 쪽으로 밀려나는 등 조선 최고의 궐문은 옛모습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어요. 하지만 결국 2006년 광화문의 본 모습을 찾기 위한 복원 및 이전 공사가 시작되었고, 2010년 완공되면서 광화문은 드디어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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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금까지 서울의 옛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았는데 어떠셨나요? 저희 프론티어 기자단은 이 과정을 통해 현재로 이어지고 있는 과거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과거의 사진을 살펴 보고 그 장면을 재현해 보며 마치 그때 그 당시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도 했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제 너무도 익숙해져 하나의 풍경으로 그저 지나치기 쉬운 역사 어린 건물과 장소들이 매우 많은데요, 여러분 모두 다른 시각으로 다시 한 번 그 때 그 모습을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떠세요? 이번 기사에서 우리들에게 익숙해진 것을 색다르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며, 여러분께도 색다른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는데 그 바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다음 기사는 더욱 더 재미있는 주제로 찾아 뵐 것을 약속 드릴게요. 이상 설주환, 임윤경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시청 청사 - 등록문화재 제52호 (대한민국 여행사전, 2009.03.20, 터치아트)

[네이버 지식백과] 덕수궁 석조전 [德壽宮石造殿]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경복궁 광화문 [Gwanghwamun Gate, 景福宮光化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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