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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우정을 나누며, 친구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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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7. 20:42

|우정노래|

 

2001년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가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치명적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썬 기록적인 800만 관객 흥행을 불러온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일까요? 이 흥미로운 영화는 다양한 영화적 장치 너머에 신라 진평왕 때 원광법사가 제시했다는 세속오계 중의 교우이신 곧 '친구는 믿음으로 사귀어라'는 한국 사회 특유의 '의리'라는 가치의 생성과 소멸을 익살스러우면서도 가혹하게 보여줍니다.

 

 

유일한 정신적 피난처, 친구


'벗'의 의미는 모든 인간관계를 수직적인 체제로 파악했던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거의 유일한 수평적 관계를 구축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남자들의 영역이긴 했지만, 인간이 가족의 범주를 벗어나 최초로 일구게 되는 사회적 관계망이기도 합니다.

친구를 소재로 삼은 많은 노래들 중 가장 큰 울림을 지닌 두 노래를 꼽는다면 그것은 김민기씨의 '친구'와 조용필씨의 '친구여'가 될 것 입니다. 한국전쟁 시기에 태어난 동년배인 이 두 거장의 노래는 7080 세대들이 품고 있었던 친구라는 일상적인 신화에 대한 서정적인 감수성을 아름답게 승화 시켰습니다.

이 두 노래는 공통적으로 상실을 노래 합니다. 김민기씨가 고등학교 재학 중에 만들었다는 '친구'는 실제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를 담담하게 그렸으며, 조용필씨의 '친구여'는 어린 시절 친구들이 공유했던 꿈과 이상의 점진적인 상실을 드라마틱하게 묘사 했습니다. 이 두 노래가 각각 70년대와 80년대 세대에게 분명하게 각인 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이 시기에 이르러 우정의 전통적인 가치가 무한경쟁의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 비극적으로 붕괴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소년 시절 통기타를 퉁기며 '친구'를 읊었던 김민기씨는 가혹한 유신시대를 통과하며 동시대의 동료들과의 강력한 연대를 표명하는 '상록수'를 70년대 후반에 완성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애창곡이기도 한 이 노래는 통상적인 '친구'에 대한 노래는 아닙니다. 김민기씨가 부천의 봉제 공장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난한 공장 후배의 결혼식 축가로 만들었던 이 노래는 광주의 비극 이후 대학가에서 '동무'를 넘은 '동지'의 결속을 고양시키는 노래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휘버스 (Fevers) 가수

멤버    이명훈(보컬), 문장곤(베이스), 정원찬(키보드), 송용섭(드럼), 김흥수(기타)
데뷔    1978년 제1회 TBC 해변가요제


 

친구의 상실을 노래한 70년대의 또 하나의 고전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캠퍼스 밴드 휘버스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일 것입니다. 친구의 상실에서 기인하는 비극적인 상상력은 7080 세대들에게 가장 익숙한 감정 입니다. 청춘의 열정을 억압했던 4, 5 공화국 시대의 청년들에게 '친구' 라는 개념은 자신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정신적 피난처 였습니다. 이것의 상실은 자신의 존재 기반의 붕괴를 의미 합니다. 이것이 광주라는 역사적 상황과 조우했을때 '님을 위한 행진곡' 이라는 비장한 80년대의 노래가 태어납니다.

80년대의 운동권적 정서의 마지막 완성작인 안치환씨의 '너를 사랑한 이유'는 이러한 7080세대의 내면을 잘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잃지 않고 묵묵히 한 발짝씩 나아가는 친구에 대한 믿음을 그린 이 노래는 바로 자신의 시대가 품었던 이상에 대한 찬가 였습니다. 안치환씨가 2001년에 발표한 '위하여!'는 살아갈 날이 이제 살아온 날보다 짧아진 그 시대의 모든 친구들에게 보내는 절절한 후일담 입니다.

 

'벗'의 의미는 모든 인간관계를 수직적인 체제로 파악했던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거의 유일한 수평적 관계를 구축합니다.

 

바래져가는 우정을 그리워하며


이와 같은 흐름의 반대편에 최백호씨의 '영일만 친구'가 우뚝 서 있습니다. 이 노래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음악적 울림으로 가득합니다. 아마도 친구에 대한 노래들 중 가장 역동적인 남성성이 구현된 노래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을 이 노래는 모든 비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립하는 친구의 의미를 환기 시킵니다. 그가 발표한 또 하나의 명곡 '입영전야' 역시 지금까지도 입대를 앞둔 청년들에게 애창되고 있는 노래입니다.

친구와 관련된 가장 서정적으로 세련된 노래는 아마도 김민우씨의 '휴식 같은 친구'일 것입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황금콤비였던 박주연씨와 하광훈씨에 의해 만들어진 이 노래는 1990년 김민우씨의 데뷔 앨범을 통해 발표되었고, 밀리언 셀링의 히트작이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여성 작사가의 시각에서 본 '우정'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신화를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노랫말처럼 친구는 언제나 휴식이 되어주는 존재이며, 괴로울 땐 해답을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괴로울 떈 해답을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이 노래는 이른바 X세대라고 불리게 되는 당시 신세대층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고, 그 윗세대인 7080 세대 또한 호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십대들은 한국의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 속에서 처절한 입시경쟁으로 몰려가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이제 공생의 파트너도 아니고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굳게 맞잡은 동지도 아니며 살인적인 경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마지막 남은 위안과 동감의 참호이며 구원의 기호 입니다. 2006년 래퍼 조PD가 인순이와 함께 불러 예상밖의 성공을 거둔 '친구여'는 급박한 호흡으로 격렬하게 친구와 우정에 대한 호소문을 작성합니다. 두 번째 절의 다음과 같은 조 PD의 랩은 '출구 업는 세대'의 내면적 불안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조PD - 친구여

....세월에 무감각 해져가네 현실의 삶과 이상속에 아련한 추억이 너무 그립네 친구들과 뛰놀던 그동네 바쁘게 지내온 나날속에 지난날은 돌아보지 못했는데 어느날 잠에서 깨어날때 꿈에서 본듯한 나의동네 찾아 가봤지 친구들과 같이 너무 큰 기쁨으로 가슴이 뛰었지 Dejavu 느끼고 추억의 자리에서 흐느끼고 생각에 생각에 꼬리를 물고 해지면은 소주병 나발을 불고 여기 추억과 바닷바람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네 인생에 뭐가 더 있나 돈 명예 미래 따위야말로 영원할 순 없소....

 

아이돌 그룹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친구 혹은 우정에 대한 화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그저 삼각관계의 조연으로 가끔 출연할 뿐입니다. 친구의 가치가 날로 바래져 갈수록 사람들은 친구에 대한 강박관념에 포박됩니다. 친구가 사라진 시대, 친구의 노래는 더 이상 감동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그럴수록 더욱 더 친구의 노래가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강산에씨와 함께 불렀던 바비킴씨의 '친구여'같은 노래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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