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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역사 여행, 당신이 몰랐을 함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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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6. 10:00

최근 여행 다녀온 곳 있으세요? 요즘은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을 더 많이 선호하는데요. 우리나라에도 외국 못지않은 역사와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많아요. 오늘은 경남 함양 역사기행을 하며 우리 땅 한반도의 문화 역사 유적지에 대한 관심을 가져볼까 합니다.

 

 


함양 역사기행, 함양 어디까지 알고 있니?

경상남도에 있는 함양은 유명한 지역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 지역이에요. 함양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리적 경계로 시대를 불문하고 요충지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신라 말에는 저명한 문장가 최치원이 태수로 부임하기도 했고, 조선 시대에는 사림세력의 주요 인물인 김종직과 정여창,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 등이 지방 관리로 부임하여 왔던 곳이에요. 이 분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문화재 역시 함양 곳곳에 남아 있답니다.

 

 

정여창 고택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정여창 고택이에요. 함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로 30~35분 정도 걸리더라고요. 정여창 고택은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정여창의 옛집으로, 중요 민속 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돼 있어요. 정여창의 호가 일두(一蠹)이기 때문에 ‘일두고택’이라고도 불러요. 일두라는 호를 풀이해보자면 ‘한 마리의 좀벌레’라는 뜻인데, 정여창이 자신을 하나의 좀벌레에 비유하여 겸손하게 평생을 살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두 정여창은 한흰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과 함께 우리나라 다섯 명의 뛰어난 현인인 ‘동방오현’으로 꼽힙니다.

 

높은 사랑채 앞에는 각각 문헌세가, 충효절의, 백세청풍 등의 사자성어가 붙어 있었어요. 충효절의라는 문구는 충성과 효도와 절개와 의리를 뜻합니다. 강직한 선비의 인품이 느껴지죠? 마루에는 유교 문화권에서 완전한 인격을 가졌다는 뜻으로 군자에 비유되어 온 난을 볼 수 있었어요.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들어갈 수는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선비의 기운을 받을 수 있었어요.

 

사랑채 오른편에 있는 건물은 손님을 모시는 안 사랑채 입니다. 앞에 있는 큰 나무와 함께 그 자체로 빛나는 배경이 되어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이곳은 고택 아래채에서 본 안채입니다. 남향에 ‘一’자 모양의 큼직한 안채는 경북지방의 폐쇄적인 공간 구성과는 달리 개방적으로 분할되어서 집이 훨씬 밝고 화사해요. 정여창 고택을 다 본 후 남계서원으로 향했습니다. 정여창 고택에서 남계서원까지 차량으로 8분 정도 걸려요.

 

 

남계서원

서원은 학문연구와 선조의 제사를 위하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이에요. 또 동시에 향촌 자치를 운영하는 기구이기도 하죠. 남계서원은 사적 제499호로 지정돼 있어요.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1552년 (명종 7년)에 지었습니다. 남계서원은 사림의 기반이 되었던 영남지방의 많은 서원 가운데서도 오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곳이에요.

 

저 멀리 가장 높은 곳이 서당이에요. 홍살문과 서원의 출입문인 풍영루가 일직선 상에 있는데요, 이러한 배치형식은 ‘전학후묘’(명륜당을 앞에 두고 뒤에 대성전을 배치함)로 남계서원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선보였다고 해요. 이후 조성된 서원은 모두 이 형식을 따랐다고 해요.

 

남계서원은 1566년(명종21년)에 ‘남계(濫溪)’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습니다. 남계라는 이름으로 사액 된 이유는 서원 앞을 흐르는 시내의 이름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즉 ‘남계’였기 때문이에요. 이제 출입문인 풍영루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위 사진 중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강당입니다. 좌우로는 동재, 서재가 있는데요, 학생들의 기숙사로 이용되었다고 해요. 작은 연못도 있었는데요. 당시 학문에 증진하던 학생들은 앞에 작은 연못을 보며 유유자적 쉬었겠죠?

 

사진출처 | 한국학자료센터

사당에는 함양의 대표 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강익, 정온 세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학식과 충절이 높은 선비들을 모신 사당 옆에서 유생들은 마음을 다지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제 마지막 여행지인 학사루로 떠나볼까요? 남계서원에서 학사루까지 차량으로 20분이 소요됩니다.

 


학사루 

학사루는 지방관리가 피로한 마음을 풀기 위하여 이곳에 올라와 시를 짓고 글을 쓰며 몸과 마음을 달래던 곳이에요.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치원이 함양태수를 지낼 때 이곳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는 기록을 보아 통일신라 시대에 처음 지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통일신라 시대라면 상당히 오래된 건축물인 것을 알 수 있죠?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지붕 옆모습이 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올라가서 옛 조상들처럼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시상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저와 함께한 함양 여행, 어떠셨나요? 옛날에는 소위 ‘뼈대 있는’ 고장으로 ‘좌 안동, 우 함양’을 꼽았다고 합니다. 낙동강의 동쪽 안동은 훌륭한 유학자를 많이 배출하고, 낙동강 서쪽인 함양도 안동에 견줄 만큼 걸출한 인물이 많이 태어나고 학문과 문벌이 번성했던 양반의 고장이었기 때문이에요. 고명한 선비들의 삶이 살아 숨 쉬는 함양에 떠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가꿈사 프론티어 8기 신혜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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