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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최우수상 - 탑차를 끄는 사계절의 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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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6. 11:00


아빠의 하루를 훑은 내 손은 항상 더러워져 있었다. 까칠하고 물기 하나 없는 그 하루를 훑고 있노라면 괜히 살갗이 베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의 하루를 훑는 일을 7년 동안이나 계속 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몇 개나 되냐?”

“글쎄, 200개 정도?”

“그렇게 많아?

“응, 어-엄-청 많아.”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아빠는 뿌듯한 웃음을 짓고는 하얗디 하얀 러닝셔츠를 입은 채, 욕실로 사라져 버리곤 했다. 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리고 손으로는 계속해서 아빠의 하루를 훑었다.

내가 만지는 아빠의 하루 속에는 얼굴 모르는 누군가의 이름, 그의 주소, 전화번호 같은 것들이 꽤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 속에서 나는 항상 12자리의 숫자만을 골라 훑었지만 아빠는 받는 이의 주소와 이름만을 봤다. 덕분에 나는 꽤 쉽게 아빠의 하루를 상상할 수 있었다. 상상 속 아빠의 모습은 주소를 머릿속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뒤 그 곳을 향해 뛰거나 운전하는 모습이었다.

“물건이 없어졌다는 거야. 분명 대문 안에 뒀는데.”

“그럼 어떡해?”

“근데 알고 보니까 대문 요 틈 사이에 들어가 있다더라.”

하지만 12자리 숫자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모습만으로 아빠가 내 하루를 모두 알 수 있는게 아니듯, 나 또한 아빠의 모든 하루를 알 수는 없었다. 깨끗하게 씻고 나온 아빠는 늦은 저녁을 드시면서 뜬금없이 하루 일과를 말하고는 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왜 이리도 아빠의 하루를 훑은 손이 더러워지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에 200장이나 되는 운송장 속에 는 그가 뛰고 옮기며 딸려온 하루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내가 아빠의 하루를 직접 본 것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내가 교복을 입던 때의 초여름이었다. 오락가락하던 빗줄기는 내가 아빠의 차에 올라탄 후부터 가지는 않고 계속 오기만 했다. 기분 나쁘게 온 몸에 스며들던 빗방울은 택배를 배송 하기 위해 아빠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계속 되었다.

“아빠, 우산!”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는 분명 내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있으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느냐는 몸짓으로, 그냥 차에서 뛰어 내렸다. 그리고 겨우 얼굴만 가리는 캡이 달린 모자를 쓴 채로 사이드-미러 멀리로 사라졌다.

그 때 내 반응이 어땠는지 딱히 궁금하지는 않다. 하지만 눈물이 많은 나는 아마 그 뒷모습을 보며 조금은 울었을 것이다. 그날따라 아빠는 자꾸만 주소를 잘못 찾았고 그래서 비를 맞으며 몇 번이나 차 주변으로 되돌아왔지만 나는 그 많은 기회 중에 단 한 번도 아빠에게 우산을 건네지 못했다. 행여 두꺼운 박스로 포장된 물건이 젖을까 몸 가까이로 바싹 쥔 아빠의 손. 나는 그 손이 쥐어야 할 것은 당장 비를 가려주는 우산이 아니라 박스라는 걸, 그리고 그게 아빠의 일이라는 걸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 비가 서서히 멈출 때쯤, 아빠는 잃었던 주소를 겨우 찾아 배송을 완료하고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히터를 튼 뒤, 소보로빵 하나를 꺼내 내게 주었다. 아빠의 차에는 항상 빵이 있었다. 빵을 건네는 아빠의 다른 손에는 물건을 배달하고 가져온 아빠의 하루 중 한 조각, 운송장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그 운송장은 빗물에 젖어 더럽다 못해 너덜너덜했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말없이 운송장을 아빠의 손에서 건네 받아 내 교복 재킷 속으로 집어 넣었다. 다행히도 내 교복은 진한 붉은 계열이었으므로 어떤 먼지나 잉크의 번짐, 빗물이 스며들어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준 소보로빵을 먹으며 그렇게 운송장을 내 교복 재킷에 대고 말렸다. 보송보송해지지는 않더라도 힘없이 펄럭거리지 말고 빳빳하고 구김 없이 펴지길. 나는 그렇게 바랐던 것 같다.

“송장 번호 좀 알려주실래요?”

“주소가 어떻게 되시죠?”

이 두 마디로 아빠는 모든 택배물의 상태를 파악했다. 그러니까, 어떤 주소만 말해도 그 집 현관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번호로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으며 집 또한 부재중이기에 우유를 집어넣는 주머니에 대신 물건을 넣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휴대폰은 잘 활용하지 못하는 아빠였지만 그를 대체하는 엄청난 용량의 소프트웨어가 몸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았다.

“아빠,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해?”

나는 경이로운 눈짓으로 물었다. 아빠는 정말로 택배에 관한 거라면 대부분의 것들을 기억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돼. 책임 지고 물건을 전해줘야 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나는 못 할 것 같아. 막상 물어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처음엔 누구나 그렇지. 근데 하다 보면 그걸 깨달아. 아빠는 여러 개 물건을 배달하지만, 이 사람들은 딱 하나만 기다리는구나. 얼마나 각별하겠어.”

“아니야. 그럼 아빠가 더 힘든 거지. 선생님들이 항상 그래. ‘너희는 여러 명이지만 나는 한 명이잖니!’”

“바꿔 생각해보면 물건이라는 건 아빠한테보다 그 사람들한테 더 소중해. 쟤들 봐. 산타 할아버지 때문에 일년 내내 겨울만 기다리는 거.”

아빠의 눈길은 나와는 띠동갑 정도 나이차이가 나고 서로에겐 연년생인 두 동생에게 향해 있었다. 내 동생들은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누구도 그들이 기다린다는 걸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진짜 산타가 나타나 뿅! 하고 좋은 선물을 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빠도 자신과 그 물건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것과 똑같다고 했다.

순간 ‘월요병을 퇴치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금요일 저녁, 배송지를 자신의 회사로 입력한 물건을 주문한다. 끝. 사람들은 ‘택배기사’라는 이름의 산타가 전달하는 선물 덕으로 일주일 중 가장 힘든 하루를 견딘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빠의 매일 매일은 12월 25일이다. 크리스마스는 단 하루이기에 소중하지만 아빠는 매일 산타가 되기에 소중하다. 누군가는 12월 25일이 아닌 8월 15일에 산타가 선물을 전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는 그 소중한 마음을 안고 산타가 되었다. 루돌프 대신 탑차를 타고 그 안에 가득 실은 선물을 벗 삼아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로 부터 온 선물을 전달한다. 운송장은 ‘필체’라는 사람들의 개성이 실린 단 하나뿐인 지도가 되고 아빠는 그것을 머릿속에 그려 넣으며 가장 빠른 길을 찾는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아빠에겐 물건이 가장 소중하다.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시무룩한 표정을 견딜 수 없는 산타처럼. 다만 산타와 아빠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빠는 언제나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빠는 그들의 집 앞에 도착해 꼭 전화를 하고, 이렇게 말한다. 

“집에 아무도 안 계신데, 누가 안 가져가게 잘 넣어 놓을 게요.”

그렇게 아빠는 오늘도 산타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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