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2번, 472번, 172번 버스가 곧 도착합니다.”

귀에 딱지가 지도록 4년 내내 들어온 소리다.

내 통학 길은 편도 1시간 반, 왕복으로 약 3시간에 육박하는 긴 길이다. 4년 동안 월, 화, 수, 목, 금요일 주 5일을 통학한다고 치면 960시간에 이르는 긴 시간이기도 하다. 통학하는 시간은 학교생활 중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훗날 내가 대학생활을 기억한다면 절대 빠뜨릴 수 없을 시간 역시 통학 길이다.

버스는 언제나 노선도를 따라 같은 길을 달린다. 자연히 나 역시 언제나 같은 풍경을 본다. 흘러가는 물결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옆으론 차들이 쌩쌩 스쳐 지나가고, 건물들은 크고 작은 창문을 눈처럼 멀뚱거리고 서서 그 광경을 내려다본다. 

처음 대학에 합격해 버스를 타고 대학교에 찾아갈 때 나는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기쁨과 설렘은 3월의 햇살에 눈 녹듯 무참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집은 서울의 북동쪽 끝에 간신히 걸쳐 있고, 강을 건너가진 않았지만, 서대문구에 자리한 우리 학교까지 가기 위해서는 꼬박 1시간 또는 1시간 반 동안 버스 안에 몸을 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전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출근 시간과 등교 시간이 겹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버스는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채로도 정류장마다 마음 급한 사람들을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그도 모자라 차로 가득한 도로 때문에 버스는 달리지도 못하고 30㎝에 한 번씩을 멈추어 섰다. 버스가 순간 멈추어 서면서 숨 쉴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사람들의 무게가 내게도 와락 쏠려올 때는 (다소 과장된 표현인지는 몰라도) 생사의 갈림길마저 느껴야 했다. 

정류장마다 서는 버스 앞문에 달린 손잡이를 간신히 부여잡고, 사이드미러 안 보인다고 조금만 비키라는 버스 기사님 손짓에 곡예라도 하듯 허리를 꺾어가며, 나는 매주 평일마다 덜컹거리는 아침을 보내야 했다. 나는 그 통학 길의 시간이 내게 주는 괴로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기 위해 이어폰을 눌러 꽂고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한 채 나를 주변에서 고립시키곤 했다.

그렇게 늘 가는 따분한 길, 늘 같은 풍경이기에 나는 대학을 다니는 4년 내내 눈을 감고 잠으로 시간을 채우거나,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게 통학 길은 내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자 신선한 영감을 얻는 시간이 되었다. 

그 변화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늘 시선을 묻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의 상대를 맞닥뜨리듯,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작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바라본 창밖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붉게 지는 노을이 들쭉날쭉 선 건물 뒤로 번져가고 있었다. 건물의 머리 위로 뜬 작고 한가로운 구름 사이에는 얇은 비행기구름이 하늘을 길게 가로질렀다. 따뜻하고 짙게 타오르는 태양이 건물들의 창문을 반짝이는 붉은 빛으로 채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서서히, 그리고 생각보다 순식간에 짙푸른 어둠이 거리에 가라앉았다. 창문 밖 풍경에 깔린 저녁 어둠 가운데에서 도시의 불빛들이 끔벅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도로를 따라서 난 밝은 불빛들은 반딧불처럼 작고 길게 늘어서서 내 시야 밖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바닥으로 쏟아지는 불빛들에, 길 너머로 작은 장난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곳을 보고 바삐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어폰 하나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한 곡만 있어도 세상은 한 편의 영화, 한 편의 생생한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늘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갔던 같은 풍경이 내 귀로 흐르는 음악과 내가 가진 감정에 따라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눈을 두고 보면 늘 같아 보이는 풍경도 날마다 조금씩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버스에 타면 앉든 서든 작은 스마트폰 화면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계절마다 버스 밖의 길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흰 눈이 덮였다 녹은 자리에 꽃이 핀다. 수수한 녹색 머리를 하고 있던 나무들이 어느 순간 슬금슬금 노랗고 붉게 멋을 부린다. 무채색 장막을 뒤집어쓰고 있던 건물이 어느 날부터는 색색으로 반짝이는 창문을 드러낸다. 사람들의 표정은 계절마다 시간마다 요일마다 다르게 피어 흔들리고, 숨어 있는 간판이 갑자기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새로운 간판들도 종종 수줍게 제 얼굴을 내민다.

그렇게 나와 어떤 상관 관계없이 어깨를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창문 너머 찰나의 장면들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젊은 연인들과 여행객들은 고궁을 배경으로 미소 지은 채 걸어가고,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은 도로 한 구석에 서서 붉은 봉을 이리저리 흔든다. 자주색 원피스와 감색 정장을 차려입은 멋쟁이 노부부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주차장 옆을 비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바쁜 일개미처럼 걸음을 옮기는 직장인들의 굳은 표정에도 종종 사소한 일들로 미소가 깃든다.

이미 닳도록 지나다닌 길이다. 버스나 지하철 안내 멘트 같은 것은 술술 따라 외울 수도 있을 만큼 말이다. 누가 내게 정류장 순서를 외우라면 아마 내가 오가는 길만큼은 눈 감고도 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당장 내게 그 길이 어떤 의미냐고 물어 온다면 딱 한 마디로 단정 지을 길이 없다. 사시사철 늘 지나쳐가는 이 길은 내 일상의 일부이자,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으로 이루어진 내 삶과 닮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유행하는 말 중에 ‘낭만’이라는 말이 있다. 드라마 제목에도 들어가고, 가게 간판에도 향신료처럼 들어가곤 하는 단어다. 사람들은 낭만을 두고 옛날엔 존재해 살아 숨 쉬던 것이 지금은 멸종해 버린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쉬워하며, 부러 낭만이라는 단어를 첨가한 것들을 찾아다니곤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낭만이라는 건 ‘낭만’이라고 쓰인 것을 찾아다니거나 돈을 주고 산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낭만은 이마를 간질이며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 것이라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나 발견할 수는 없다. 그저 머리카락을 흩뜨리는 귀찮은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지치고 힘든 길을 고개를 떨군 채 터덜터덜 걷다가, 언제 불어온 줄도 모르고 무심코 보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원하게 닿아 와 머리를 식히고 고개를 들게 하는 산들바람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늘 마주하던 바람이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지루하고 특별할 것 없던 일상이 갑자기 멋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낭만은 그렇게 질소나 산소처럼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한 번 모습을 드러내면 물에 떨어뜨린 물감처럼 빠르게 퍼져나간다. 

나는 통학 길 버스 안에서 깨달았다. 버스는 부초처럼 한데 머무르지 않고 정류장에서 정류장으로 바삐 달리고, 나는 늘 걸음을 서둘러 시간에서 시간으로 바삐 움직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지나쳐 가는 건 사실 내가 담겨 있는 길인 동시에 삶이다. 지루하고 지치는 그 시간이 내 삶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따분하고 의미 없는 시간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나 자신을 고립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복되는 길을 따분한 것이 아닌 친근한 것으로 바라볼 때, 그 길을 가는 시간 역시 내 삶의 일부가 된다. 의미 없이 비어 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 길이, 사실은 공들여 쓴 소설의 문장처럼 마디마디 촘촘하게 이어져 내 삶을 빛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내게 새롭고도 아름다운 길, 내 삶을 이루며 반짝이는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좋은 구두나 좋은 기름만이 아니라, 좋은 길은 언제나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

*본 게시물은 2016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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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교보생명 교보생명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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