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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길, 내가 딛는, 내딛는 발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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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22. 18:00


돌아보니 그랬다. 그저 방학일 뿐이었던 여느 때의 1월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한 친구들은 “방학이라 좋겠네, 늦잠도 자고.”라는 말을 쉽게도 했다. 그 애들은 정오쯤 일어나 씻지도 않고 집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 먹는 내가 부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애들은 몰랐을 것이다. 밥솥을 열 때 나는 ‘삐리릭!’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그건 방 안에서 티브이를 보고 계시는 할머니를 나오게 하기에 충분한 소리라는 사실도. “밥 먹게?”하며 반찬을 꺼내오시는 할머니 앞에서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그 누구도 내게 ‘밥만 먹는 식충이’ 식으로 눈치 주지는 않았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랬다.

그러나 사실은 합격한다고 해도 걱정이었다. “너 요즘 뭐하냐?” 묻는 친척 어른들께 “대학원 생각 중입니다.”라고 말하면 응원은 고사하고 한숨, 쯧쯧 소리를 듣기가 십상이었다. 취업률이 낮은 과들이 한둘씩 통·폐합되는 상황에서 ‘철학과 대학원 진학’은 다소 무모한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나라고 이 길에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학부 내내 이 공부가 좋았고, 더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겁이 났다. 인문학계 상황이 좋지만은 않은 현실에서 공부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것, 사실은 정말 막막했다. 무엇보다 ‘공부가 정말 내 적성에 맞나? 이 일이 과연 돈은 될까?’ 하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딱히 다른 마땅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졸업과 동시에 취직에 성공한 친구들의 길이 탄탄한 고속대로라면, 내 눈앞에 있는 건 황무지 같았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길이 아닌지를 구분할 수도 없었다. 며칠 전엔 첫 월급을 받은 직장인 친구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나 월급 받은 날 바로 은행가서 10년 적금 통장 만들었잖아. 이제 쭉 돈 들어갈 일뿐이야! 결혼이며, 내 집 마련이며, 육아며…. 그렇지?”

“응, 그러게….”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 이야기, 일 못 하는 직장 상사 이야기 같은 것을 들으면서 나는 ‘아, 정말? 아, 진짜?’ 라는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속으로는 ‘지금 연속극 할 시간인데….’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대화의 주된 화두는 새로 생긴 카페나 음식점, 좋다고 입소문 난 화장품, 서로의 남자친구 이야기, 뭐 그런 정도였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다른 길을 걸어왔구나. 앞으로 걸어갈 길 또한 지금과는 훨씬 다른 차원으로 달라질 것이었다.

“넌 아직 학생이니까, 내가 계산할게.” 하며 지갑을 꺼내는 친구의 모습에서 만기가 된 적금을 찾아 제 자리에서 무언가를 이루었을 그 애의 10년 후가 보이는 듯했다. 그 애의 계획대로라면 10년 후쯤 그 애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을 테고 아이도 몇 명쯤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10년 후 우리의 나이는,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이기도 하다. 

무거운 어깨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오는 길, 지하철역 근처의 꽃집이 막 문을 닫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빨간색 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화분 하나를 골라 들었다.

“이거 얼마예요?”

“3,000원이에요.”

“기르기 쉬운가요?”

“딱히 기르기가 쉽다기보다는…. 다 똑같아요. 햇빛 많이 보여주고, 제때 물 주고. 그러는 거죠. 기르기 쉬운 건 없어요.”

기르기 쉬운 건 없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나는 들었던 화분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마당에 ‘화분은 무슨 화분!’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벌써 주무시고 계셨다. 자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니 언젠가 엄마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바다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병원선을 타고 싶었어. 물길 따라 온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거, 얼마나 보람차고 멋진 일이니?”

엄마는 병원선에 오를 수 없었다. 그 무렵의 엄마에게 내가 생겼기 때문이다.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도 되었고, 기르기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지 않아도 되었다. 화분은 그랬다. 하지만 엄마에게 나는 어땠을까? 나는 예쁜 딸도 아니었고, 기르기(?) 쉬웠을 만큼 무난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사지도 않은’ 나를 위해 ‘온 바다’ 를 포기해야 했다. 

그 날부터 나는 엄마의 새로운 항로가 되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말했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존재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힘들고 답답한 건, 우리의 눈앞에 길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길이 너무도 많고, 그중에 어떤 길을 선택하고 걸어갈 힘이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최선의 길만을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어떤 한 길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선택한 하나의 것 이외의 무수한 선택지가 남아있으며 가지 않은 길이 어떠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최선의 길인지를 단정 짓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가려는 길이 어떤 길인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딛는, 내딛는 발걸음 발걸음을 따라 길은 자연스레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황무지 같은 땅에 이정표를 꽂을 최후의 생존자도, 바닷길을 가르며 물살을 일으킬 일등 항해사도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엄마가 생각한 엄마의 길도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엄마는 걸어가는 중에, 계획에 없던 나를 만났다. 우리가 걸어갈 길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러하다. 변수의 변수를 꼼꼼하게 고려해 보아도, 하나였던 길은 갈라지고 두 개였던 길은 하나로 모인다. 그렇게 수많은 길이 나뉘고 합쳐지는 과정에서 체처럼 곱게 걸릴 내가, 시나브로, 고운 사람으로 거듭나리라는 것을 믿는다.

*본 게시물은 2016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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