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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품 안의 명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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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25. 16:00



   전에 사놓은 오리털 점퍼는 품이 넓었다. 체격보다 두 단계는 더 큰 엉뚱한 사이즈인지라 입으면 앞섶이 축 내려앉았다. 가끔 이런 터무니없는 걸 입고 거울 앞에라도 서는 날은 새삼 착잡하다. 사정 모르는 누가 보면 의뭉스런 낯으로저 청년은 커다란 옷 속에 무 숨겼나경계할 듯 하다. 생각건대, 사람 행색에 경()하고 중()함이 없다는 말은 좀 실속 없는 격언 같다. 보라. 거울 안에서 사내가 간절한 낯으로 청하고 있지 않은가. 빈 꽃대궁 같은 외투, 그거 아무라도 줘버리자고. 품에 맞춰 제대로 된 한 벌을 다시 사자고.


   행색의 우스꽝스러움보다 더 심각한 건 오한(惡寒)이었다. 패딩 앞섶이 워낙 넓다 보니 된바람이라도 불었다 하면 겨울 외풍이 안감 속을 내외했다. 뱃전에 얄궂고 해로운 것이 닿으니 겨울나기는 훨씬 곤욕이다. 무어든 심부(深部)가 허해지면 될 일도 안 되는 법. 살갗에 치미는 추위는 사람의 자신감을 무너뜨린다. 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지만, 한편으로 이십 대 내내 기운 없고 숙맥이었던 연유에는 이런 옷차림의 사정도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하여간 가엽던 시절 얘기다.


    이래저래 내 요동 벌판 같은 점퍼 덕에 스물두 해째 겨울은 꽤 울적했다. 때마침 우연한 사정으로 교우가 키우던 새끼 개 한 마리를 억지 분양 받는 일이 생기기까지. 자취방에 갑작스러운 동거인이 던져진 것이다. 이때부터 내 엉뚱한 점퍼는 갑자기 실속 있는 육아 소품이 되었다. 점퍼 앞섶을 열면 거기 보슬보슬한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가 똬리 품기 딱 좋은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생각건대, 이 시절 나는 꽤 흥이 올라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자췻집 계단을 뛰어올랐는데 개는 건물을 울리는 계단 소리에도 반가워 발을 동동 굴렀다. 내 주먹만 한 개 선생께옵서 점퍼 앞섶에 쏙 하고 뛰어들어가 동네 구경을 나갈 시간인 것이다.


   골목에 싸락눈이 내려앉은 새해 아침, 점퍼 안을 웅크린 이 개 선생께옵서 가슴팍 너머 빼꼼히 얼굴 내밀고는우리 동거남은 지금 어딜 향하시나말똥말똥하는 풍경. 이런 건 다시 떠올려봐도 그립고 따듯하다. 보슬보슬하였던 털북숭이. 볼에 비비면 따사로운 식빵 냄새 같은 것이 오르내리던.


   ‘명수’라고 이름을 지어줬다니 교우들은 배꼽을 잡았다. 개그맨 이름이란다. 이는 어느 존재에게든 내가 이름을 지어준 최초이며 유일한 기억이다. 나는뽀삐’, ‘까망이등 전형적 성명이 왠지 인형 같고 물화(物化)된 내음이 벤 듯해 마뜩잖았다. 어느 생명에든 독자적으로 호칭을 부여할 권능이 내게 있지 않으나, 개 선생은 기꺼이 나의명수가 되어주었다. 고마운 노릇이다. ‘우리 명수가 오늘 왜 이리 발발 떠노.’ 편의점 아주머니도 그를 명수라 불렀다. 학과 동기들은 나를 ‘명수 아빠라고 불렀는데, 나는아빠라는 단어의 묵직함에 상기되었고 솔직히 싫지 않았다. 수줍고 어딘가 힘이 빠진 청년이었지만, 명수 앞에서만큼은 따듯한 볕이 드는 기분을 느꼈다. 젊음은 마치 바람벽에 선 풍란(風蘭)처럼 아슬아슬 펄럭였으나, 명수라는 동거인이 함께 동숙해주니 일상은 뜨거운 힘이 돈다. 나는 꽤 든든하였다.


   봄날 고무줄놀이처럼 팽팽 날뛰던 명수 씨가 앓기 시작한 건 한 달 만이었다. 그가 거칠게 설사를 하다 고꾸라진 것이다. 동물병원에서는 치사율이 칠 할이나 되는 바이러스성 장염이라며 즉시 그를 입원용 폐쇄 구역에 밀어 넣었다. 케이지에 실려가는 명수 씨 목덜미에 실 가닥 같은 가여운 숨결이 고여 있었다. 나는 기도를 드렸다.


   퇴원은 보름쯤 후였다. 기적 같았다. 치사율 칠 할을 뚫고 명수는 벌떡 일어나 병실 밖 내 옷섶으로 뛰어들었는데, 바이러스성 질병의 후유증인지 이후 퇴원한 지금껏 다리를 절었다. 금색 털북숭이 동거인께서 사선을 건너 씩씩하게 돌아온 지 삼 년. 나는 그이와 제법 차지게 잘 살았다. 우리는 작은 자취방에서 각자의 독자적 위상을 지니고 있었고, 내가 비록 지금 그를 의인화하여 글 쓰고 있으나 실지로 우리는 꽤 사이 좋은 동거인 지위였다고 본다. ‘명수가 어디 있는가?’ 책상에 고개를 파묻다가 문득 그를 찾노라면 항시 방 어디선가 진지하게 나를 지켜보는 그와 눈 마주친다. 요컨대 그는 성실한 격려자다. 그를 찾으면 나는 안심하여실례합니다라며 살짝 목례하고 다시 책으로 고개 돌렸다.


   이번엔 내가 등교를 못하고 쓰러졌다. 스물다섯 살 봄이었다. 정확히는 폐렴으로 등굣길에 거꾸러졌다고 해야겠다. 지방의 부모님께서 급히 상경했고, 사십 몇 도를 오르내리던 격한 순간에도 나는 두 분께 개를 좀 챙겨달라 당부했다. 부모님도 기가 막혔을 테지. 보름간은 학교 강의도 빼먹고 병원 침대에서 창밖 구름 숫자나 세며 한가로운 와병을 했다. 나는 부모님 부축을 받으며 귀가했다. 명수 씨는 핼쑥해진 동거인 얼굴 위에 어지러운 혀 놀림으로 반겼고, 그날 저녁 부모님은 개를 다른 이에게 넘기라며 최후 통첩했다.


   몇 주간 수소문하여 결국 제주에 사는 친구의 누이에게 명수 씨를 입양 보내기로 한 밤. 나는 구겨진 종잇장처럼 몸을 돌돌 말고 침대에 누웠다. 가끔 인생이란 내 사정과는 하등 상관없이 이 별로 휘말려 든다. 청춘이 엉키고 파산을 맞은 기분. 나는 그의 보슬보슬한 털을 매만지다 도통 안 흘리던 울음을 쏟았다. 갑자기 명수 씨가 할짝할짝 내 턱 아래 고여 맺힌 눈물을 핥아먹는다. 천진난만한 그의 혀 감촉이 얼굴을 빗질한다. 짭짤한 맛이 조미료라도 되는 양 그는 내 눈물에 되려 신이 났다. 세상 다 잃은 듯 울던 나도 웃음보가 터졌다. 그는 마치 격려의 말을 건네는 듯 보였다. ‘나는 자신 있다네. 친구. 이별이든 뭐든 그리 기죽지 말게.’ 봄볕 아래서 딱지를 내려치는 사내아이처럼, 기지개하듯 잎사귀를 펴는 박력 있는 채소의 줄기처럼, 그는 씩씩했다.


   명수는 지금 제주 게스트하우스에 산다. 서귀포 앞바다가 더할 나위 없이 깨끗이 반짝이는 마을. 새 가족이신 누이께서 말하길, 여행자들이 참으로 사랑하고 어여삐 여긴다고. 그간 나는 스스로 세파의 위협에 맞서 명수를 보호하는 울타리라 여겼는데, 막상 그는 서운할 만치 내 도랑 밖 세계에서도 펄떡펄떡한다. 제 몫의 생명을 힘차게 붓 칠하듯 여기저기 쾌활한 기운을 펴 바르는 이. 그것은 마치 삶 본연의 결연한 뚝심과도 같은, 만물이 힘든 처지에도 불구하고 자기 존재위에 유머를 음각(陰刻)하는 것 같은.


   한동안은 게스트하우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명수 씨 사진을 보며 잠들었다. 추억을 후렴 삼아 곱씹고 버틴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그는 내 청춘의 인격적 형성에 중요한 골격이었으니까. 다시 혼자가 되어보니 나는 역시 따분하고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


   오늘은 바람이 윙윙대는 싸리 숲을 걸었다. 혼자였다. 종일 나는 이 수컷의 안부가 궁금하였다. 이젠 나도 품에 꼭 맞는 새 점퍼를 입고 외출하는, 요컨대 꽤 그럴듯한 사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패딩 속에 셋방살이하는 동물 친구가 없는 일상이란 아쉽고 서운하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고심하다 결국 제주행 비행기 표를 끊고야 만 밤. 이불 안에서 유락한 잠의 늪으로 사르르 미끄러지는 찰나, 창밖 베란다에 걸친 눈썹달을 본다. 명수 씨가 할짝할짝 말끔히 핥아주기라도 한 듯 향그러운 달.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고요한 밤.



*본 게시물은 2018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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