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웃음이 참 예뻤다.


   발음이 비슷해 내가 붙여준 ‘J’라는 별명을 너는 좋아했다. 『B사감과 러브레터』 마냥 현대문학에나 등장할 법한 주인공 같다는 해괴한 이유로. J는 독특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지루한 수업 시간에 지우개 가루를 말아 던지며 킥킥댔고, 그로 인해 꽂혀 드는 선생님의 꾸중을 한 귀로 흘리고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었으며, 길게만 느껴지던 45분이 지나간 뒤에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10분을 보낼 줄 아는, 그런 평범한 아이. 단 한 가지 차이라면 뒤로 젖힐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나무 의자가 아닌, 바퀴 달린 철제 의자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는 것뿐.


   J는 어디가 아픈지,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우리에게 일절 언급하지 않았고 우리도 묻지 않았다. 그도 그런 것이 J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은 ‘휠체어 밀어주기’였으니.


 “아이고, 됐네요. 두 손 멀쩡한데 왜?”


   선의의 손길을 허락 없이 내밀었을 때 돌아오는 것은 애정 섞인 핀잔이었다. J에게 아픔이란 그저 ‘조금 불편한 정도’였고 그 녀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까다로운 친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J는 점심시간에 항상 운동장 구석에 있는 농구장 언저리에서 우리가 농구하는 모습을 보는걸 즐겼다. 축구는 아무래도 한눈에 안 들어오기도 하고, 사람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반 대항전은 항상 우리 반이 이기므로 재미없다는 말도 해 주었다. 


 “휠체어 축구보단 휠체어 농구가 더 낫지 않겠냐. ‘리얼’이라는 만화 아냐? ‘슬램덩크’만 보지 말고 그것도 봐봐. 재밌어. 같은 작가야.” 

 “아, 그거 만화방에서 흘긋 봤다. 그래도 ‘슬램덩크’가 최고야.”

 “뭘 모르네. ‘슬램덩크’는 현실성이 없잖아. ‘리얼’은 그 자체로….”

 “아, 아, 그만. 농구나 하자.”


   부대끼며 땀 흘리던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방과 후 수업까지 끝나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즈음이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선생님의 “여러분 내일도”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 나갔다. 나와 J도 예외는 아니어서 총알같이 튀어나와 복도를 미끄러진 후엔 누구보다 빠르게 교문을 빠져 나갔다. 집으로 가는 방향은 또 같아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걸었다. 좁은 이차선 도로 옆 담벼락, 그리고 그 뒤에는 줄지어 키 큰 은행나무들이 서 있는 그 길은 가을이 되면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낙엽과 함께 은행이 떨어졌고 짙은 냄새가 퍼졌다. J의 바퀴에 은행이 걸려 부서지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냄새가 진동했다.


 “왜 하필 여기로 다니냐? 구린내 나. 교복에 냄새 배겠다.”

 “냄새라니? 향기다, 향기. 이게 꽤 중독성이 있다니까? 난 은행 향기가 좋아.”

 “많이 맡으세요. 어휴, 하여간 특이한 놈.”


   J와 함께 걷던 그 가을 길은 온통 노랗고 짙은 냄새, 아니 J식으로 말하자면, 향기로 가득했다.


   그 소식을 접한 건 막 사관학교에 들어와 기본 훈련을 받던 여덟째 밤이었다. 휴대전화 없이 힘든 하루하루의 끝에 지인들이 보내 온 편지를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때, 그날도 고된 훈련을 정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J가 어제 새벽에 먼저 하늘 계단을 올라갔대. 나도 담임 ‘쌤’ 연락받고 처음 알았어. 3년 만에 처음 연락 온 게 이런 내용이어서 당황했다. 내일 쌤 차 타고 빈소 갈 거야. 너 5월까지 못 나오잖냐. 훈련 중이라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착잡해서 그냥 쓴다.”


   멍했다. 문자 그대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버티기 힘든 훈련기간이었음에도 충격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훈련 기간 동안 밖에서 여기저기 쏘다니며 젊음을 즐기고 있을 친구들 생각이 매일 밤 머릿속에 찾아왔고, 지금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다며 괴로워했다. 틀렸다. 어리석은 불평이었다. 내가 “죽을 것 같이 힘들다”는 말을 쉽게 내뱉던 그때, 사선 언저리에서 병마와 싸웠을 그 녀석 생각을 하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졸업 이후 다소 먼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J를 만나지 못했다. 아니, 만나지 않았다. 미안함에 눈가가 젖었다. 당장에라도 검은 상의를 집어 들고 그 녀석에게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참 간사하게도, 나는 금세 잊고 말았다.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처음 접해 보는 분위기와 환경 속 피곤함에 나를 파묻고 매일 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침대에 몸을 누였다. 첫 휴가만을 바라보고 달렸다.


   꿈에도 그리던 첫 휴가, 그 늦은 5월의 봄날. 터미널에서 집까지 걸어서는 꽤 긴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굳이 걸었다. 제복을 입은 모습을 자랑하고도 싶었거니와 정말 오랜만에 온 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추억을 곱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광이 나는 구두를 신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사소한 기억들이 스쳤다. 얼마나 걸었을까? 넓은 도로가 좁은 2차선으로, 그리고 낯익은 담벼락으로, 수많은 나무로. 익숙한 거리, 익숙한 분위기와 냄새. 잠깐, 냄새? 


   다시금 머리가 울렸다. 그 울림은 이내 머리를 지나 콧잔등에 내렸다. 콧방울이 시큼해졌다. 익숙한 그 냄새, 아니 향기. ‘J. 널 잊었던 시간 속에서 묵묵히 바퀴를 굴리며 이 길을 지났겠구나, 너는. 구두를 신은 두 발로 딛고 있는 여기를, 두 손으로 힘껏 미끄러졌겠구나, 너는.’ 담벼락 어디선가 익숙한 향기가 났다. 내가 잊고 있었던, 그 가을날의 기억. 늦은 봄날에 전해 오는 옅은 은행 향기. 가을이 아님에도, 생명이 찬동하는 이 늦은 봄에도 누구보다 활기찼던 너의 기억이 은행 향기로 남아 나를 감쌌다.


   시간을 내어 가족공원을 찾았다. 두 다리 대신 두 손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했던 J는 좁은 상자 안에서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자식, 여전히 웃는 얼굴은 예쁘네. 그 자리에 서서 J에게 그동안의 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인마,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 공부도 하고, 훈련도 받고. 몸이 둘이었으면 좋겠다. 거기는 좋냐? 농구 열심히 하고 있고? 넌 못생겼으니까 웃고 다녀. 웃으면 그나마 낫다.”


   가방을 열어 추억을 꺼냈다. 그 녀석의 사진 옆에 지금은 유리창으로 막힌 J와 나의 사이에 노란 은행잎과 깔끔하게 다듬은 나뭇가지 두어 개를 뒀다. 이제는 향기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다 바람 불면 살며시 내게 밀려오라고.


 “또 올게. 심심해도 조금만 기다려라. 휴가가 그렇게 자주 있는 건 아니니까.”


   못내 아쉬워 돌아봐도, 여전히 J는 밝게 웃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걸어가야지. 그러다 어디선가 익숙한 그 향기가 나면, 멈춰 서야지. 그러면 틀림없이 너와 걷던 담벼락 아래일 테니까. 그게 가을이든 아니든, 그 담벼락 아래, 두 발과 두 바퀴가 딛고 있던 그 위로는 언제나 옅은 은행 향기가 머물기에.



*본 게시물은 2018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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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교보생명 교보생명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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