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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한적한 여행지,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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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30. 19:43

ㅣ돌담길 ㅣ

돌담길은 동네 우물터로 빨래를 하러 가는 엄마의 길이었고, 어스름 저녁 해를 받으며 우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길이었죠. 봄이면 개나리가 피고 산수유가 피어서 돌담이 아예 노래지기도 하고, 가을이면 감이 떨어져 뒹굴기도 했어요. 계절마다 풍경이 다르고 빛깔이 달랐답니다.



 어스름 저녁 만날 수 있는 풍경


“나무를 껴안고 가만히 / 귀 대어보면 / 나무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 행주치마 입은 채로 어느 날 / 어스름이 짙게 깔린 골목까지 나와 / 호승아 밥 먹으러 오너라 하고 소리치던 /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호승 시인의 <그리운 목소리>라는 시에요. 땡땡한 햇볕 아래서 조그마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그 골목길은 돌담이거나 흙담이었죠. 이 시는 우리네 돌담길에서 어스름 저녁이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을 보여줘요.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이랑 놀다 밥 먹으라는 엄마 목소리에 친구들에게 “나 집에 들어갈게.” 하고 돌아서는 순간의 아쉬움. ‘좀 더 놀면 안 되나.’ 하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죠. 하지만 집 앞에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엄마” 하고 달려가 품에 안기던 그날, 엄마는 환하게 웃어주었어요. 내 키가 작아 엄마 허리춤에 얼굴이 닿을 때였으니 그날의 이야기는 아주아주 오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돌담길에서 숨바꼭질하던 기억이 나요. 저녁을 다 먹고 아이들은 다시 돌담길 은행나무 아래서 만나곤 했는데, 가장 흔하게 하던 놀이가 숨바꼭질이었어요. 한밤이라 숨기도 좋은데다가 술래가 겁이 많은 아이라면 술래를 놀라게 하는 재미도 솔찬히 좋았죠. 밤에 하는 숨바꼭질은 술래를 골려먹는 장난으로 대미를 장식했어요. 술래가 눈을 감고 있을 때 작당을 해서 집으로 그냥 들어가 버리는 것이죠. 진태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매번 같은 일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또 당하곤 했어요. 다음 날 학교 가는 길에 만나면 “아무 말 없이 그냥 집에 들어가는 게 어딨냐?”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냥 어깨동무를 하고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금방 호호 깔깔거리며 돌담길 걸어 학교에 가곤 했었죠.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삶의 흔적들


돌담길은 삶의 골목이에요. 겨울밤이면 다 큰 형들이 서리를 하고 키득거리며 어둠 속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죠. 엄마와 이웃 아주머니의 입을 타고 읍내 쌀집 김씨네 아들이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며, 아랫말 송씨네 딸이 집을 나갔는데 결혼 잘해서 자가용을 타고 왔다는 둥 동네의 온갖 소문과 정보가 흘러 다니는 인터넷망이기도 했어요. 돌담의 돌 하나하나마다 소문이 들어 있고, 정보가 들어 있는 앱과 같았죠. 클릭하면 바로바로 이야기가 쏟아지는 그런 앱 말이에요. 돌담길은 직선으로 쫙쫙 뻗어 있는 길이 아니에요. 우리네 고갯길처럼 꾸불꾸불 휘어져서 어느 곳에 서 있든지 마을을 보여주는 모습이 달랐어요. 새로 이사 간 아파트촌에서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아서 자기 집을 찾느라 애를 먹는다는 소리를 가끔 들었어요. 요즘은 건물이나 길이 단순해서 오히려 길 찾기가 어려운 반면, 옛날 돌담길에서의 길 찾기는 복잡해서 오히려 쉬웠어요. 그건 각 집마다, 각 돌담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의 개성이 온유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었죠.





 안과 밖을 표시하는 최소한의 경계


돌이켜보면 돌담 끝에는 항상 감나무나 은행나무의 나뭇가지가 걸려 있었어요. 나뭇가지 사이로 파랑 하늘이 보이고 가끔 흰 구름이 걸려서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도 보이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 하며 빨리 어른이 되기를 기도했답니다. 그때 기도만 하지 않았어도 나는 지금쯤 훨씬 더 나이를 천천히 먹었을 것이에요. 어렸을 때는 몰랐으나 커서 보니 우리네 돌담은 그리 높지 않았어요. 아무리 높아 봐야 까치발 들고 집 안을 들여다보면 다 보일 정도로 낮았죠. 아주 어렸었던 여름날 엄마는 종종 마당에서 나를 홀딱 벗겨 놓고 몸을 씻겨주곤 했는데, 지나가는 동네 어른들이 이 모습을 보곤 “어이쿠 이제 장가가도 되겠다.”는 소리를 할 때면… 죽기보다 싫었었죠. 담장은 그만큼 낮았어요. 개인의 프라이버시? 우리네 담장에서 그건 애당초 바랄 게 아니었어요. 동네 사람이 모두 한 식구인데, 그들에게 내놓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어요. 지금은 사방팔방 벽에 둘러싸여 살고 있죠. 누군가의 시선이 방 안으로 향하면 온갖 법적인 문제까지 들고 나서는 세상이니 이해할 수 없을 이야기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어요. 마당이 훤히 보이는 높이로 도둑을 막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옛날 돌담이에요. 우리네 돌담은 도난 방지용으로 쓰이지 않았던 것이죠. 집을 개방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 돌담은 그저 안과 밖의 경계일 뿐이었어요. 돌담이 경계 역할로 족한 것은 그만큼 옛사람들이 열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해요. 한 가족이 아니라 동네 전체 구성원이 공동체였던 것이죠.





 돌 하나하나에 사랑과 추억이


요즘은 돌담길을 잘 찾아볼 수 없어요. 산골에 가도 돌담보다는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담장이 많죠. 오랜 세월 돌이 한자리에 있어서 이끼가 끼고, 호박이나 수세미 덩굴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기가 참 어려워요. 그나마 낙안읍성이나 외암리 같은 민속마을에서나마 소박한 시골 돌담길을 볼 수 있어요.

큰형이 고등학교 다닐 때 사랑을 했던 모양이에요. 큰형과 누나가 오십 줄이 넘어서 어쩌다 큰형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나왔어요.

“오빠 어렸을 때 아랫말 감나무집 그 여자 좋아했잖아. 그 여자애 이름이 뭐였지?”

“내가 누굴 좋아했다고 그러니? 참 나… 정례?”

“좋아했으면서 뭘.”

“히히. 좋아했지. 내가 고2 때 1년 동안 정례네 돌담의 돌 하나 밑에 편지를 써놨는데… 연애편지지…. 하지만 답장 하나 받지 못했어. 이상한 건 내가 돌담에 놔둔 편지가 그 다음 날 보면 어김없이 없어졌어. 그 애는 내 편지를 보고도 답장을 하지 않은 거야. 그렇게 1년을 했는데도 안 넘어오더라. 그 앤 지금 뭐 하고 있을까?”

큰형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낙안읍성의 돌담보다, 관광지의 돌담보다 큰형의 돌담이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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