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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험의 선구자 신용호 창립자 10주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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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4. 16:00



한국 보험의 선구자 신용호 창립자 10주기 맞아


'국민교육'에 한 평생 바쳐

세계최초 교육보험 창안, 교보문고 설립 등 지식기반 마련

4일 추모의 밤, 사진전 등 추모 행사 열려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10주기를 맞아 오는 4일 추모의 밤, 학술심포지엄 등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립니다.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생명보험 외길 인생을 통해 '보험의 선구자, 보험의 대 스승'으로 불리며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보험업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2003년 9월,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대산의 삶을 관통했던 키워드는 다름 아닌 '국민교육', '교육입국'이었습니다. 이토록 그가 평생 지향했던 '교육'은 학교 교육을 뛰어넘는, 보다 포괄적이고 실전 체험을 통한 '산 교육'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력서의 최종 학력란에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운다'고 썼던 대산은 만나는 모든 사람,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배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자기 계발과 인간성장을 평생 추구하는 것'이 그가 평생에 걸쳐 실현코자 했던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었던 것입니다. '국민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은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을 탄생시켰으며,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교보문고가 들어서게 했고, 대산문화재단 등 3개 사회 공익재단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1917년 전남 영암의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대산은 뜻하지 않은 병마로 초등학교의 문턱도 넘지 못했지만 이를 '천일독서(千日讀書)'로 극복했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독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했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사회와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됐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청년이 된 그는 집안 어른인 신갑범, 시인 이육사 등 여러 애국지사와 교류하고, 중국에 건너가 사업을 하며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됐습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한 인적자원을 키워내고, 민족자본을 형성해 경제자립의 기반을 구축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 개업식에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창립자


1958년 8월 7일, 대산은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이라는 창립이념을 내세운 교보생명은 회사이름부터 달랐습니다. 다른 생명보험사와 달리 '생명보험'이 아닌 '교육보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키우고, 보험을 통해 경제자립의 바탕이 될 자본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입니다. 창립과 동시에 '진학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교육보험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 없는 독창적인 보험상품이었습니다. 교육에 생명보험의 원리를 접목한 교육보험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뜨겁게 피어오른 우리나라의 교육열과 맞아떨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교육보험은 이후 30년간 300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급했으며, 이렇게 교육의 기회를 얻게 된 인재들은 196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대산의 '국민교육'에 대한 신념은 교보문고를 통해서도 잘 나타납니다. 광화문 네거리, 그야말로 금싸라기 땅에 돈도 안 되는 서점을 들이겠다고 했을 때 모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대산은 "사통발달 한국 제일의 목에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자.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 사업이냐"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981년 교보문고가 문을 열었습니다. 단일면적으로 당시 세계 최대규모였고, 서가 길이는 무려 24.7km에 달했습니다. 대산의 이러한 노력이 우리나라 독서인구 저변확대에 이바지한 사실은 말할 것도 없으며, 교보문고는 오늘날 여러 대도시로 뻗어 나가 도심 속의 지식문화공간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92년 5월 교보문고 재개장 기념 테이프 커팅식에서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사진 왼쪽 세번째)


또한, 대산은 대산농촌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등 3개 사회 공익재단을 설립해 선진 농업 연구, 교육과 문학 지원사업, 장학사업 등을 펼치며,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까지 교육과 지식의 뿌리가 내리도록 했습니다.

교보생명은 1960년대 말, 창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오르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종업원퇴직적립보험과 암보험 개발, 계약자 이익배당 시행 등 대산과 교보생명이 이룬 보험업계 최초의 기록들은 보험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며 우리나라 보험산업을 세계 8위권으로 성장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공로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로부터 보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습니다. 1996년에는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며 '보험의 대 스승'으로 추대되는 등 전 세계 보험인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올해 창립 55주년을 맞은 교보생명의 총자산은 70조 원에 달합니다. 지난해에는 5,72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실현했습니다.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04년 이후 줄곧 대형사 중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0년 회장에 취임한 신창재 회장은 선대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IMF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강력한 변화와 혁신으로 극복하고 탄탄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편, 4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는 대산의 기업가정신을 기리는 추모의 밤 행사와 고인의 발자취를 회상해 볼 수 있는 추모 사진전이 열립니다. 추모의 밤 행사는 재계, 학계, 업계, 유관기관 등 각계각층의 주요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의식, 추모 시 낭송, 추모 공연 등으로 진행됩니다. 같은 날 오후에는 한국보험학회 주최로 학술심포지엄도 열립니다. '한국의 보험 산업과 대산 신용호'라는 주제로 5개 교수팀이 연구논문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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