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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님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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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7. 15:22

ㅣ한강ㅣ

 

안녕하세요. 대학생 프론티어 홍아영, 원지한입니다!

지난 1 17일 금요일 광화문의 랜드마크가 된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의 봄편 문안 선정을 위한 회의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그날 오후 문안선정위원 중 한 분이신 ‘한강’ 작가님과의 만남을 가졌답니다. 최근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 지성사)』 를 출간하시기도 한 작가님과의 인터뷰! 지금부터 눈 여겨 봐 주세요. ^^

 

 

 

 

 

인터뷰는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내에 있는 회의실에서 진행됐는데요, 작가님께서 회의를 마치자마자 저희를 만나러 와주셨답니다. 먼저 간단히 저희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저희가 긴장한 것을 느끼셨는지 작가님께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주셨어요.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면서 홍아영 프론티어가 인터뷰의 운을 뗐답니다.

 

 

 

 

 

 광화문글판 관련 인터뷰

 

 

Q. 평소 광화문글판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떠셨나요?

 

 

A.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켜봤는데 도심에 몇 줄의 문장이 있다는 게 참 신선했어요. 상업적인 언어들 밖에 볼 수 없었던 도심 속에서 그렇지 않은 문장들이 있다는 데 신선함을 느꼈죠.

 

그리고 계속 진화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몇 줄의 간략한 문장이었다가 점점 문학적으로 변해간다는 느낌을 받아서 ‘참 보기 좋다.’라고 생각했죠.

 

역사도 오래됐고, 교보생명 건물을 생각하면 딱 광화문글판이 생각나잖아요? 광화문이라는 서울의 중심에 그런 글판이 있다는 게 참 좋았는데, 마침 저에게 문안선정위원 권유가 왔을 때는 반갑기도 했고, 좋은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Q. 어떻게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이 되셨나요?

 

A. 시인이자 교보생명 산하의 대산문화재단에 몸담고 계신 곽효환 선생님께서 어느 날 저에게 추천해 주셔서 선정위원을 하게 됐어요. 문안선정위원은 2년씩 돌아가면서 하게 되는데 제 앞에 하시던 은희경 작가님의 임기가 끝나셔서 제가 이어받게 됐죠.

 

 

 

 

 

 

Q. 그러셨군요. 곽효환 사무국장님은 저희와 동북아대장정의 여정을 이끌어주신 분이기도 하세요. ^^ 그렇다면 2014년 봄편 광화문글판 선정 과정 중의 에피소드라거나, 선정과정에서의 어려움, 특별함 같은 것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A. 아무래도 봄의 느낌이 충만하게 선정을 하려고 했는데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어요. 두 개의 문안을 골라놓고, 시민 여러분의 추첨을 통해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회의가 마무리되었어요.

 

 

어려움이라면 제가 이번에 낸 시집 중 하나의 시가 그 두 개의 문안 중 하나로 올라갔어요. 강하게 막으려고 애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제가 바라는 건 제 시를 시민들이 떨어뜨려주시는 거예요.(웃음)

다른 더 좋은 시가 있었는데 그 시가 선정됐으면 좋겠어요.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관련 인터뷰

 

 


 

 

Q. 계속해서 시집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최근 그동안 틈틈이 쓰고 발표하셨던 시를 모아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 지성사)’ 를 출간하셨는데요, 첫 시집을 내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A. 언젠가는 시집을 내겠다는 마음을 늘 가져왔었어요. 등단할 때도 시로 조금 먼저 등단을 했었고, 1년 동안 최소한 두세 편은 썼으니 저에게는 시집을 낸다는 것이 뜻밖의 일은 아니었죠.

 

언젠가는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내고 나니 “뜻밖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빨리 시집을 내게 된 이유는 시가 많이 쌓여 있는 상태였는데 시인이신 ‘이원’ 선배한테 “집에 시가 많이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선배가 “시집으로 묶어보면 느낌이 많이 다를 거라고, 너무 오래 갖고 있다 보면 자꾸 버리게 되는 시가 생기니까.”라고 격려를 해주셨어요.

 

그게 벌써 2년 전 일이거든요? 시집으로 묶을 생각을 하니까 또 조금씩 쓰게 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백 여 편이 있었는데 그것을 반 정도를 추려서 시집을 내게 됐어요.

소감이라면 ‘20년 동안 써온 시들이 이렇게 얇은 책으로 정리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Q. 등단하시고 20년 후에 시집을 내셨는데, 다시 20년 후에 한강 선생님의 시집을 볼 수 있는 건가요?

 

A. 아마도 최소한 20년일 것 같아요. 어쩌면 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번 시집 5부에 있는 시들은 마지막 시만 빼고 다 20대 때 쓴 시거든요? 시기별로 묶여있는 셈이죠.

 

다시 시집을 낸다면 그런 느낌이 반복될 수도 있는 거라서 한 권을 내는 게 깔끔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요. 혹시 모르죠. 어느 해에 (시가) 잘 써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이게 유일한 시집이 될 것 같아요.

 

 


Q. (아영)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시를 쓰실 때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으시나요?

 

 

A. 시와 소설을 동시에 쓰기도 해요.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소설과 연결되는 시들도 있고, 그냥 이 이야기를 시로도 쓰고, 소설로도 써요.

 

 

Q. 아버지와 오빠가 모두 소설가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어릴 적 그리고 지금까지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특별히 다른 점이 있으신가요?

 

 

A. 다른 것보다도 아버지께서 글을 쓰시니까 어릴 때 집에 책이 많았어요. 노는 게 책을 보는 것이었죠.(웃음) 이사도 많이 다녔거든요. 총 다섯 개의 학교를 다녔었어요. 적응할만하면 이사를 갔죠.

 

친구들을 사귈 때 까지는 집에서 책을 보며 놀고, 사귀면 밖에서 놀고 그랬어요. 그래서 집에서 많은 책들을 볼 시간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사교육을 하지 않았을 때니까 그런 점이 저한테는 굉장히 행운이었던 것도 같고, 가장 좋은 점은 어릴 때 책 읽는 기쁨을 발견한 것이죠.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문예지를 봤는데, 뭘 알아서 본 게 아니고 재미가 있어서 작가들 사진도 보고, 산문도 보고… 그냥 놀이였던 거죠. 재미있었어요.(웃음)

 

 

 

Q. 2005년에 몽고반점으로 <이상 문학상>을 받으셨을 때 수상 소감으로 "언젠가부터 글쓰기는 나에게 밥 같은 것 이었다." 라고 하시며, 자유와 위안, 충일로 몸을 덥혀주는 밥 한 그릇 같은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문학이라는 것, 글쓰기 그 자체가 여전히 작가님에게 그런 존재인가요?

 

 

A. 늘 다른 것 같아요. 그때는 그렇게 생각 했나봐요.(웃음) 그때는 글을 오래 못쓰던 시기라서, 글을 너무 쓰고 싶어서 그렇게 썼던 거 같은데…. 요즘은 그런 생각보다는 음…. 되게 어려운 부분이거든요?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라는 질문이 굉장히 어렵네요.(웃음)

 

 

글을 쓰는 게 저한테는 중요한 일이고, 늘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거든요. 항상 생각하고 있고, 항상 어렵고, 항상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싶고…. 그런 마음으로 늘 나하고 같이 가는 그런 존재랄까? 저한텐 오히려 서성거리는 행위 자체가 글쓰기인 것 같아요.

 

 

지금 저의 생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 왔다갔다 하면서 질문을 품고 서성거리는 것?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움직이고 있는 것? 그런 행위가 글쓰기인 것 같아요. 앞에서처럼 ‘나를 채워주는 밥이다.’ 이런 생각은 요즘에는 안해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나봐요. (웃음)

 

 

 

Q. (지한) 이제부터는 제가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슬럼프가 있으셨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오셨는지 여쭙고 싶어요.

 

A. 슬럼프는 늘 있어요. 요즘에도 있죠. (웃음) 슬럼프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면 늘 따라오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잘 안될 때 섣불리 넘어가려고 하지 않고, 지금 글이 안 써지는 것은 내가 잘못 가고 있기 때문이니 일단 멈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좀 그런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쓰는 건 정말 아닌 거니까. 멈춰서 지금까지 써온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주 예민한 상태가 되어서 어떤 길이 있을지 더듬어보는 것.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글이라는 것은 우회해서 갈 수가 없잖아요? 문장 하나하나를 쓰면서 끝까지 가야 하는 거니까 도망갈 때도 돌아 갈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결국 그 부분을 통과해야 되는 거니까…. 중요한 것은 무언가 막힐 때, 멈춰서 예민하게 더듬어서 길을 찾는 것 같아요. 슬럼프는 뭐 항상 있었어요. (웃음)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늘 있겠죠.

 

 

Q. 개인적으로 이상이나 꿈, 이상향이 있으신지?

 

 

A. 좋은 작품을 더 많이 썼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좋은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곁다리의 부수적인 계획 같을 것들을 지우게 되더라고요. 최종적으로 남은 건 좋은 작품을 썼으면 하는 거예요.

 

 

Q. 평소 시간이 나실 때 주로 하시는 취미생활이 있으신가요?

 

A. 걷는 것 좋아해요. 특별히 다른 취미는 없어요. 그냥 걷는 것. 글이 막히거나 할 때도 걷고요. 별 재미없게 살고 있어요. 특별한 취미도 없이. (웃음)

 

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가족’, ‘꿈’, ‘사랑’은 무엇인가요?

 

 

A. 요즘 제가 인간의 영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인간은 영혼이 있는 존재이고, 존엄한 존재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점점 사회는 뭔가 영혼이 없는, 영혼을 자꾸 지워가는 사회가 되는 것 같아요.

 

생존해야 한다는 그런 압박감이 너무 크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뒤로 밀어내고 단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불행한 시대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만 같죠.

 

‘꿈’, ‘사랑’ 이런 말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영혼을 잃지 않고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저의 고민이거든요.

 

어쨌든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긍정해야 하는데 이를 어렵게 하는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고, 또 심화되고 있으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존엄을 기억해야 해요. 그래야만 사랑도 할 수 있는 거고.

 

 

꿈이라는 것도 영혼과 존엄 위에서 가능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계속 각성하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뿐만 아니라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기억하고 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신도 사회가 요구하는 논리에 자기 존재 자체를 변형시켜야 된다는 요구를 받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걸 맞춰가려는 모든 것과 싸우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무언가 기억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주제와 잘 안 맞는 것 같지만 잘못하면 ‘가족’, ‘꿈’, ‘사랑’ 이라는 것이 사회가 요구하는 아주 상투적인 이미지의 슬로건이 될 수가 있다는 소리에요. 깊이 들어가면 이것을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생각들이 앞서 말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Q. (아영) 예비 문학인을 꿈꾸는 모든 예비 작가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A. 조언이라는 건 어려운 것 같고요. 제가 좋아하는 ‘보르헤스’가 백발의 나이에 인터뷰어를 만났는데 똑같은 질문을 받아요. 그 기자가 젊은 세대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했을 때 “난 조언으로서 할 말이 없고, 인생을 표류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라고 해요.

 

그 말이 참 좋았어요. 제 자신이 어떤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은 들지 않아요. 아까 "글 쓰는 게 서성거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저도 답은 없고, 아주 많은 질문들만 갖고 있어요.

 

인터뷰를 해보셔서 알겠지만, 대답과 같은 조언을 하는 것은 저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예비문학인이 있다면 묻고 싶어요.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고, 제가 섣불리 조언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한강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긴 인터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께 사소한 도움이 되는 기사였길 바라며, 이상 프론티어 기자단 홍아영, 원지한 이였습니다.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했던 시간과 추억,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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