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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광화문글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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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5. 16:04

 

 


 

 

 

2008년 봄편, 파블로 네루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루가 지나면 우린 만날 것이다

그러다 하루 동안 사물들은 자라고,
거리에선 포도가 팔리며, 토마토 껍질이 변한다.
또 네가 좋아하던 소녀는 다시는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갑자기 우체부를 바꿔버렸다.
이제 편지는 예전의 그 편지가 아니다.

몇 개의 황금빛 잎사귀, 다른 나무다.
이 나무는 이제 넉넉한 나무다.

옛 껍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대지가
그토록 변한다고 누가 우리에게 말해주랴?
대지는 어제부터 더 많은 화산을 가졌고,
하늘은 새로운 구름들을 가지고 있다.
도 강물은 어제와 다르게 흐른다.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건설되는 가!
나는 도로와 건물들,
배나 바이올린처럼
맑고 긴 교량의 낙성식에 수없이 참석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인사를 하고
화사한 네 입에 입 맞출 때
우리의 입맞춤은 또 다른 입맞춤이요
우리의 입은 또 다른 (띄우고) 입니다.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어제를 위해 그리고 오늘을 위한 건배.
그저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을 위해 건배.

빵과 돌을 위해 건배.
불꽃과 비를 위해 건배.

변하고,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되었다가 다시 입맞춤이 되는 것들을 위해.
우리가 숨쉬고 있다는 것과
이 땅에 살고 있음에 대해 건배.

우리의 삶이 사위어가면
그땐 우리에게 뿌리만 남고
바람은 증오처럼 차겠지.
그땐 우리 껍데기를,
손톱을, 피를, 눈길을 바꾸자꾸나.
네가 내게 입맞추면 난 밖으로 나가
거리에서 빛을 팔리라.

밤과 낮을 위해
그리고 영원의 사계절을 위해 건배.

 

파블로 네루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2008년 여름편, 김용택 <사랑>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 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 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이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대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개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김용택, <사랑>

 

 

2008년 가을편, 조향미 <국화차>


 

찬 가을 한 자락이
여기 환한 유리잔
뜨거운 물 속에서 몸을 푼다
인적 드믄 산길에 짧은 햇살
청아한 풀벌레 소리도 함께 녹아든다
언젠가 어느 별에서 만나
정결하고 선한 영혼이
오랜 세월 제 마음을 여며두었다가
고적한 밤 등불 아래
은은히 내 안으로 스며든다
고마운 일이다

 

조향미, <국화차>

 

 

2008년 겨울편, 정현종 <아침>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른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정현종,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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