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라이프

본문 제목

백제의 시간 속으로, 전북 익산 여행

본문

2016. 3. 2. 16:00

1,400년의 시간을 넘어 단숨에 여기로 건너온 ‘백제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입니다. 미륵사지전시관에는 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에서 나온 사리장엄 유물들을 모두 볼 수 있어요. 곧 복원하는 석탑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사리 13과를 볼 수도 있어요.

 

 

백제 부흥의 꿈, 미륵사지석탑 

(1993년 복원된 미륵사지동탑. 너무 말끔하게 복원돼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논란이 됐어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탑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미륵사지 석탑은 신라 선화공주와의 로맨스로 알려진 백제의 무왕이 아내의 청으로 세운 거대한 탑이에요. 미륵사지 석탑이 세워진 지 1,370여 년 만인 2009년 1월 탑 해체과정에서 기단을 덮은 돌뚜껑 아래에서 백제시대의 사리가 나왔어요. 지금껏 발견된 사리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금으로 만든 항아리(사리호) 속에 작은 금항아리가 들어 있었고, 그 작은 항아리 속에 또 유리병이 있었습니다. 사리 13과는 유리병 안에 있었어요. 성분 분석 결과 12과는 자수정이었고, 진짜 사리는 딱 하나. 그 하나의 사리를 담기 위해 백제는 거대한 절을 지었고 우람한 석탑을 세웠던 것입니다.

웅장한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부흥의 꿈이었고, 석탑에서 나온 쌀알 크기의 진짜 사리는 그 꿈에 심은 하나의 씨앗이었던 것이죠. 백제는 무왕의 왕위를 이은 의자왕 때 덧없이 망하고 말았지만, 그 씨앗은 발아하지 않은 채 시간을 건너와 지금 여기 눈앞에 실재합니다. 과연 이 사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멀고 먼 서역의 땅에서 건너온 것일까요, 아니면 평생 불법을 닦은 백제의 고승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것일까요. 상상은 꼬리를 뭅니다.

 

 

환하게 빛나는 백제의 유물

 

(사진1. 미륵사지 서탑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사리호와 사리병) 
(사진2.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사리)
(사진3. 미륵사지 석탑에서 쏟아져 나온 금제구슬)

유리 진열장에 코를 대고 사리를 오래도록 바라봤던 건 그것이 건너온 시간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 다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해체된 석탑을 다시 짜 맞추어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면서 백제의 사리는 다시 탑 안의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시 1,000년 후에 세상에 나올 것인지, 아니면 영영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백제의 꿈으로, 무왕의 불국토의 기원으로 남게 될지 모를 일이에요. 사리뿐만이 아니에요. 전시관의 680여 점 유물은 모두 환하게 빛납니다. 사리를 담았던 금항아리의 섬세한 문양과 유려한 곡선에서 지금과 다를 것 없는 미감이 생생합니다. 잘 다듬은 금제 구슬과 은제 장식, 유리구슬들은 그게 지금의 것이었더라도 충분히 매혹적이에요. 하나하나의 유물에서 깎고 다듬으며 정성껏 매만지던 백제 장인들의 지문이 묻어날 것 같습니다. 하나도 다치지 않은 채 시대를 관통하는 아름다움과 막막하고 덧없는 시간! 사리장엄의 유물에서 만나는 건 이런 것들이에요.

미륵사는 스러지고 탑만 남았지만 미륵사지 뒤편의 미륵산 8분 능선에는 무왕 부부가 다녀갔다던 사자사의 자리가 여태 남아 있어요. 내친 김에 그 자리까지 찾아가 봅니다. 미륵사지 석탑 뒤편의 산길을 따라 40분이면 넉넉히 당도하는 자리. 가녀리게 솟은 이대 숲 사이로 누추한 요사채가 있고, 그 위쪽에 숨은 듯 들어선 사자암이 있어요.

 

 

매력적인 자태의 왕궁리 오층석탑

익산의 왕궁리에는 또 하나의 탑이 있어요. 왕궁리 오층석탑인데요.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 만든 것이라는데, 균형과 비례는 물론이거니와 섬세한 선과 간결한 생김새가 한눈에도 ‘잘생겼다’는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눈 밝은 이들이라면 혹 눈치 챌지 모르겠어요. 왕궁리 석탑의 매력적인 자태는 주변을 정갈하게 다듬어낸 정성과 함께 석탑 뒤쪽 저 멀리 구릉에다 몇 그루의 운치 있는 소나무들을 그림처럼 남겨 두어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이건 저절로 만들어진 풍경은 아닙니다. 누군가 일부러 그림을 그리듯 석탑을 놓아 두고, 배경을 생각해 뒤편에 잘생긴 소나무들을 띄엄띄엄 그리 두었을 것입니다. 제법 이름난 명소들도 석탑이면 석탑, 고택이면 고택, 눈앞의 것에만 눈을 두고 관리하게 마련. 그럼에도 흙으로 돋워 놓은 구릉 위에 우뚝 선 오래된 왕궁리의 석탑을 두고 배려 깊고 세심하게 그 뒷배경까지 생각했던 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절로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1965년부터 이듬해까지 보수작업을 하던 왕궁리 석탑에서도 유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사리를 담은 사리함과 사리병을 비롯해 금강경을 금판 위에 눌러 찍은 금강경판 등이 발견됐습니다. 연꽃과 당초 문양을 정밀하게 새긴 사리함도 그렇고, 매끈한 녹색의 기품 있는 사리병의 자태는 그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해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유물들은 죄다 전주박물관에 가 있어요. 올해 설계에 들어간 국립익산박물관이 2019년 완공되면 찾아올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왕궁리 유물을 보려면 전주로 가야해요. 익산에서 전주박물관까지는 번거로운 길이지만, 가서 보면 알게 됩니다. 사리병의 미끈한 자태와 금강경판의 생생한 글씨만으로도 그곳을 다녀간 보람이 열 배쯤 된다는 것을 말이죠.

 

 

익산 미륵사지 여행TIP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익산나들목으로 나와 720번 지방도로를 타고 금마사거리에서 우회전해 722번 지방도로로 바꿔 탑니다. 금마면사무소 앞에서 함열·미륵사지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이내 미륵사지에 닿습니다. 왕궁리 오층석탑은 익산나들목에서 나와 720번 지방도로 금마사거리에서 왕궁면 소재지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돼요. 오층석탑 인근에는 서로 마주 보고 선여윈 돌장승 형상의 고도리 석불이 있습니다.

묵을 곳과 먹을 것

익산시청 남쪽 인화사거리 부근에 모텔들이 몰려 있습니다. 요금은 3만 5,000원〜5만 원. 황등면의 황등비빔밥은 익산의 맛으로 꼽히는 음식입니다. 황등비빔밥은 밥을 살짝 비벼 고기국물에 토렴을 한 뒤 그릇을 데워 수분을 말린 뒤 육회를 얹어 내는 게 특징. 진미식당(063-856-4422), 시장비빔밥 (063-858-6051)이 대표적이다. 금마면의 맛나먹거리촌(063-834-1110)은 얼큰한 황태찜을 맛깔스럽게 나옵니다.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교보생명 웹진 다솜이친구를 다운 받을 수 있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