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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란히 스며드는 ‘우리 그림’ 작가 전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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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29. 16:00

그는 ‘밝히는’ 화가입니다. 은은한 달빛과 잔잔한 햇빛을 화폭 가득 담아, 컴컴한 세상 속 먹먹한 마음들을 밝고 환하게 만들어줘요. 그의 고운 그림들은 깊은 그리움과 오랜 기다림으로 완성된 것들이에요. 한지 위에 켜켜이 색을 쌓아 올려, 가슴 안에 층층이 포개진 그리움을 자기만의 속도로 표현합니다. ‘느림’이란 이름의 그림들이, ‘빠름’이란 이름의 시름들을 거짓말처럼 거둬갑니다.



받아들임이 아름다움이다

그는 벌써 ‘다음 세상’을 생각해요. 자신은 백년을 살지 못해도, 자신의 그림은 그보다 오래 남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가 고집하는 건 장인들이 땀 흘려 만든 전통한지. ‘숨 쉬는’ 종이 위에, 색을 켜켜이 쌓아 올려 그림을 완성합니다. 눕히고, 적시고, 말리고, 뒤집고, 적시고, 말리고… 그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두세 달이 후딱 가요. 그림은 ‘기다림’의 줄임말이라는 그의 표현이 단숨에 와 닿습니다.  

“한지에는 미세한 숨구멍이 있어요. 색칠로 그 위를 덮어버리는 대신, 천천히 색을 쌓아 올리는 건 그래서예요. 올리고 말리기를 반복한 그 색들을 한지는 고스란히 받아들여요. 정성을 얼마나 들였는지 그대로 드러나죠. 저 역시 종이의 결을 받아들여요. 바람이 들면 바람이 든 대로, 색이 안 올라가면 안 올라가는 대로… 덕분에 늘 새로워요.”

한지로 작업하니 해외에서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과 프랑스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어온 그는 ‘한지 그림’에 대한 그들의 열광을 눈으로 지켜봤어요. 자연스레 사명감이 생겼다고 해요. 그의 ‘초심’이 변치 않는 이유입니다.


(아직 듣지 못한 우주-아홉 개의 달)


(달가림)

‘기다림’이 작업방식이라면 ‘그리움’은 작품소재다. 오래 전부터 그는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어디에도 없는 풍경’을 주로 표현해왔어요. 해와 달이 있는 풍경화로 ‘정착’한 건 2014년부터에요. 해와 달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죠. 누구에게나 공평해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는, 친근하고 신비롭고 따사로운 존재들. 곁에 있어도 그리운 그것들을 화폭에 담으면서, 자신의 그림이 누군가의 삶에 한 줌 위로가 되기를 소망해왔습니다. 그는 매일 달을 본다고 해요. 하루하루 변해가는 달을 지켜보면서, 그리운 것 들을 그리워하고 서러운 것들을 떠나보냅니다. 

“저는 한국화란 말 대신 ‘우리 그림’이란 말을 사용해요. 우리라는 말, 참 정겹잖아요.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동네… 우리 종이와 우리 재료로, 우리 고유의 정서를 계속 표현하고 싶어요.”



그림은 그리움의 다른 말 

그리움의 샘은 어린 날의 섬에 있습니다. 경남 통영 사량도. 바다가 그 자체로 ‘마당’인 작은 집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유년시절이 그에겐 있는데요. 배 들어오는 시간이 오후 3시 15분이었다는 걸 그는 여태 기억합니다. 혹여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을까, 매일 간절히 기다렸기 때문이에요. 기다림은 서글펐지만 즐거움이 도처에 가득했다고 해요. 그 이유는 자연 덕분이었는데요. 바다에서 난 굴이며 조개는 질리지 않는 간식이었고, 흙으로 된 마당은 ‘마르지 않는’ 도화지였어요. 햇빛 반짝이던 바다와 옷을 바꿔 입던 뒷산이 저절로 그림공부를 시켜줬다고 해요. 달에게 기도하는 외할머니를 보며 우리 정서의 아름다움도 자연스레 터득했고요. 

“기다리는 법도 배웠어요.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걸, 그때까진 그냥 기다려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그 시절의 모든 것이 고맙고 그리워요.”


(백밤의 물레)



(이토록 그리운)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한 건 서른 살 때부터에요. 집안형편 때문이었는데요. 이십대엔 전문대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출판사며 법무사사무소, 영어학원 등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어느 날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려고 동네 미술학원에 갔는데 그곳 선생님이 미대에 갈 것을 권유했고, 입시미술을 준비한 지 열흘 만에 국립창원대 미대 3학년에 편입했어요. 온 우주가 그를 도와줬습니다 

“찜질방에서 먹고 자면서 학비를 벌었어요. 제가 타로점을 볼 줄 알거든요. 학교 앞 카페에 무작정 찾아가, 손님들에게 타로점을 봐주고 수익을 나누면 어떻겠느냐고 주인을 설득했죠. 결국 그 일을 했어요. ‘처녀도사’로 소문이 나긴 했지만,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2008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벌써 열 번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SNS 후원펀딩을 비롯해, 자신에게 도움을 준 누군가들이 그때마다 있었어요. 받은 것을 돌려주는 일. 그가 전시회가 끝날 때마다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는 것은 그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환원은 기부에 그치지 않아요. 한 달에 두 번 부산의 시각장애인 시설에 가서 청소며 벽화작업, 미술지도 등을 해온 지 올해로 7년이 됐다고 해요. 그의 그림은 ‘나눔’의 다른 말이에요. 그림을 ‘그리움’의 다른 말이라 부르는 그에게, 또 다른 말 하나 얼른 알려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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