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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대상 - 고요한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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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4. 11:24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첫 마디를 떼자마자, 언제나 돌아오는 되물음. 내가 외국인이냐 하면, 아니다. 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나는 봄이면 새싹 돋아나고, 여름이면 녹음 우거지고, 가을이면 단풍 물들고, 겨울이면 눈꽃 피어나는 이 대지 위에서 태어났고, 자라 왔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아주 긴 대답을 해 보려 한다. 내가 온 나라에 대해.


      언제부터였을까, 소리의 색이 옅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 태어날 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희미하기만 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니 그림 같기만 하다. 장면만이 스치듯 떠오를 뿐, 그 장면에 삽입되어야 할 소리 같은 것들은 모두 빠져 있어서, 그래서 그림 같은 기억들.


      너는 잘 안 들려서 좋겠다, 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듣기 싫은 건 듣지 않아도 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지 않냐는 어린아이의 순진한 망상에서 기인한 말임을 안다. 지금은 그렇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고, 그런 말 하나하나가 모두 상처가 되곤 했다. 말해주고 싶었다. 


      듣고 싶은 것조차도 들리지 않는 이 끝 모를 고립을 너는 아냐고. 네가 듣기 싫어하는 그 소리마저 나에게는 간절한 것이라고. 아예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그 모든 말들을 들을 수 없었다면?


      찰나의 소리조차 놓치고 싶지 않아 단 한 순간도 보청기를 빼 본 적이 없었다. 일종의 강박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자는 순간까지도 보청기를 끼고 잘 때가 많았다. 뭐라고 말했는지 되물어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보청기를 끼고 있어도, 거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그 막연함이란. 그 시절의 어린 나는, 그렇게 불안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그런 불안의 연속이었다. 내 작은 마음 하나 머물 곳조차 없구나, 외로웠다. 그런 불안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생각 끝에 고등학교에는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무언가를 더 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웠고, 지쳤던 것 같다.


      그렇게 결심하고, 원래라면 고등학교에 입학했어야 할 때 나는 인공와우 수술을 했다. 보청기보다 훨씬 잘 들을 수 있다는 말에 더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장점만 있으랴. 인공와우는 보청기 같은 소리 증폭식이 아니라, 귀 뒤 머리뼈에 달팽이관 역할을 대신하는 기계를 이식하고, 보청기와 비슷한 형태의 외부기계를 내부기계와 연결해 외부기계에 들어오는 소리를 전기자극으로 변환해서 뇌로 보내는 원리이다. 그렇기에 자연 그대로의 소리는 수술을 하고 나면 다시는 들을 수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어쩌면 수술을 하겠다는 핑계로 삶에서 도망친 것 같기도 하다. 머리에 칼을 댄다는 것은 무서웠지만, 망설이기에는 평생을 안고 온 고립이 더 무서웠다. 들리지 않는 세상은 지겨웠고, 매 순간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나날들은 생에 대한 의지를 수없이 꺾게 했으니까.


      수술 전날 병실에서, ‘바리깡’에 내 머리카락 절반이 밀려 나가는 걸 보며 엄마는 몰래 울었다. 마음 아플까 봐 입원하기 전에 길었던 머리를 일부러 짧게 잘랐는데도, 두피가 훤히 보일 만큼 빡빡 밀린 딸의 머리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미어졌을 것이다. 마음의 무게에 비하여 언어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 순간으로 흩어질 덧없음이었기에,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쪽은 나였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고 싶은 만큼이나 사는 것이 고단했다. 잘 살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렇질 못하기에 놓고 싶은 마음, 그 두 마음이 공존하던 날. 바닥에 흩어지는 머리카락들을 보며 밀려오던 허무를 잊지 못한다. 엄마의 눈물과 내 허무가 뒤섞이던 날, 그 봄날의 병실에서. 


      수술이 끝나고, 긴 재활의 시간을 거쳐, 이전보다 훨씬 선명해진 소리의 색을 갖게 되었다. 구분할 수 없었던 단어들과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목소리가 형체를 띄게 되었다.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와 할머니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던 날, 나는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고요를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 그토록 속하고 싶어 했던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그리도 간절히 듣고 싶었던 소리를 듣게 되자, 비로소 고요를 사랑할 수 있었다. 그 적막이 너무나 두려워 발버둥치던 나날들이 마치 연기처럼 흩어지는 것 같았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정말로,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이제 다시는 자연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 기계를 거치지 않은 진짜 자연의 소리는 모른다. 아마 평생 동안 알지 못하리라.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잃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나를 부르는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순간들을 얻었으니까. 이런 내 변화에 대해 누군가는 비현실적 긍정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역에서는 구음과 구양에 대한 개념이 나온다.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이런 내 비현실적 긍정성 뒤에는 한없이 부정적인 마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늘 괴로웠다. 이런 육신의 제약을 가지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런 걸까. 남들과는 다른 걸까. 평범했다면 좋았을 텐데. 남들에겐 그저 평범할 나날들이 내겐 힘들었고, 들리지 않는 답답함에 숨이 막혔다. 내 부정적인 마음에 스스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지독한 허무에 허덕이던 시절, 도무지 그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고통은 언제쯤 끝이 날까.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 고요 또한 내게 주어진 어떤 선물이 아닐까. 언제든지 고요의 순간으로 침잠할 수 있음은. 그래, 내게 이 허무를 가져다 준 고요를 차라리 사랑해 버리자. 그토록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었기에 고요를 저주했던 나날들, 그러나 오히려 들리게 되자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던 나의 고요. 부정의 끝에 가 닿고서야 깨닫는다. 절망이 어떻게 생의 희망이 되는지, 그 삶의 역설을. 어둠이 있어야 빛이 존재하는 것처럼, 내 어둠을 인식하고서야 빛이 보였다.


      이제 지독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는 평온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리도 벗어나고 싶어 했던 고요에서 온다. 이제는 내 마음이 쉴 곳, 나만의 고요. 그곳은 한없이 평화롭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녹림과 그 앞을 한가로이 흐르는 호수, 그런 정경과 같이. 소란스러운 일상 속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도 소리를 끄면 나는 내 나라의 주인이 된다. 그 속에 가만히 침잠해 있자면, 어떤 위로보다도 와 닿는 위안이 된다. 


      삶의 무게가 버겁던 어린 소녀는 비로소 평온을 찾았다. 저주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축복이 되었다. 마침내 살아온 모든 세월, 마음 속에 가득했던 자기혐오를 비로소 보낼 수 있었다. 


      나의 생에, 내 영혼에 깃드는 지금의 이 평온에 감사한다. 사람들은 고요에 잠기기 위해, 평온을 찾기 위해 더러 여행을 떠나곤 하지만, 나는 어디서든 고요를 꺼내 쓸 수 있다. 세상의 소요에 지칠 때 고요에 잠겨 눈을 감고 있자면, 슬며시 평온이 찾아온다. 내 영혼이 충전되는 시간이다.


연극 햄릿에서, 햄릿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호두알 속에 갇혀 있어도, 나는 무한한 공간의 왕이라 여길 수 있다네.”


      그래, 나는 내 세계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이 평온한 세계에서, 이 무한한 고요에서, 나는 왕인 것을. 내 영혼이 머무는 곳, 내 지친 마음을 내려놓는 곳, 내가 자유로울 수 있게 되는 나의 나라, 고요한 나라에서.


“ 저는, 고요한 나라에서 왔습니다. ”


*본 게시물은 2019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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