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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역사책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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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19. 15:34

ㅣ우표ㅣ

한 장의 우표에는 광화문 교보빌딩 앞 기념비전의 내력이 담겨 있고, 초상화가 생략된 고종황제의 원유관이 보여요. <아리랑>이 흘러나오고, 베토벤의 '합창'이 들릴 뿐만 아니라 시성 괴테와 다산 선생, 두보의 시도 볼 수 있어요. 이처럼 우표는 한 시대의 역사와 인물, 예술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정서를 심는 씨앗



우취(郵趣)라 불리는 우표 수집은 창작 분야에선 독자적인 장르에요. 1864년 프랑스의 M. 엘팽이라는 수집가가 필라테리(philately)라는 새 낱말을 만들었는데, 이웃 나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이를 우취로 번역했죠. 사진 예술, 홀로그램(비디오 아트), 애니메이션과 함께 필라테리는 1960년대 이후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했어요. 올림픽 경기가 치러질 때마다 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스포츠 우표가 전시되는데, 이 사실만으로도 필라테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죠.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도 유명한 우표 수집가였어요. 그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우표 수집에서 얻은 지식이 더 많다.”고 말했을 정도랍니다.

우리나라의 우표 수집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1백만 명에 가까웠지만, 이른바 아날로그 시대가 마감되다시피 하고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디지로그'에 묻혀 버렸죠. 그렇지만 우취가(philatelist)는 여전히 살아 있어요. 그 까닭은 우표 수집은 '정서를 심는 씨앗'과도 같아서, '회상의 늪'에서 잠깐 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마치 잊힌 계절이 돌아오듯이 말이에요.

우표 수집의 열기는 식었지만, 얼마 전에 나왔던 '뽀로로' 우표는 발행되던 날 모두 팔려버렸고, 이번에 나온 제18대 대통령 취임기념우표도 우체국 마감 시간 이전에 몽땅 판매되어 뉴스거리가 됐어요. 지난날 역대 대통령 우표들이 천덕꾸러기가 되다시피 한 것은 지나치게 많은 양을 발행한 탓도 있는데, 이번에는 218만 장을 내어 놓은 것이 희소성을 부채질한 듯해요.



 터키 우표 속 소녀를 만나다



우표에 얽힌 실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하는데요. 6.25전쟁과 관련된 우표 가운데 1952년에 터키에서 나온 4종 우표에 관한 이야기에요. 당시 이 우표는 상당히 화젯거리였어요. 4종 우표 중 한 종에 터키 병사가 우리나라 어린이를 어깨에 올려놓은 모습이 디자인됐기 때문이죠. 이 우표는 이미 희귀 우표가 되어 전문 수집가(우취가)들도 손에 넣기가 쉽지 않아요. 우표 속의 소녀는 그 무렵 아홉 살 난 전쟁 미아였는데요. 알다시피 서울 시민은 6.25전쟁이 터지고 한강철교가 폭파된 뒤에야 피란길에 올라야 했어요. 끊어진 철교에 어설피 매어 놓았던 드럼통을 간신히 밟아가며 건너야 했던 피란민 소녀 가운데 '최민자'가 있었죠. 소녀가 부모님 손을 놓친 것은 어쩔 수 없는 전황 속의 운명이었는지도 몰라요. 피란민들에 떠밀려 걷고 있던 소녀는 몇 날 며칠 밤이 지난 후 허기에 지쳐 길가 어딘가에 쓰러져 버렸어요.

마침 철수하던 터키 병사 가운데 쉬리만 프랫 대위가 이 소녀를 발견하고 부대로 데리고 갔어요. 다행히 기운을 차린 소녀에게 군용 담요로 옷을 만들어 입히고 병영 생활을 함께했죠. 이 소녀는 이곳에서 8개월을 지내면서 터키말까지 배웠다고 하니 놀랍기만 한데요. 아래 사진 속의 프랫 대위가 들고 있는 책은 터키 말로 된 만화책에요. 다행히 최민자 소녀는 뒷날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휴전된 뒤 서울로 돌아와 학업에 매진해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고 하네요.


우표 속 인물인 프랫 대위와 최민자 소녀



 보석 못지않은 가치



세계 최초로 우표를 발행한 나라는 영국이에요. 1840년의 일이죠. 우리나라는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1884년에 독자적인 우표를 내놓았는데 일본에서 인쇄해온 것이었어요. 우표에는 환이나 원 등 화폐 단위가 늘 함께하는데, 1884년 당시의 화폐 단위는 문(文)이었어요. 그래서 그때의 우표를 문위우표라 부르죠. 이 문위우표는 5종이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이들 5종의 우표는 쉽게 구매가 가능하고 값도 비싸지 않답니다.

그런데 당시의 소인(도장)이 찍혀 있는 우표라면 얘기는 달라져요. 이 경우 '희귀' 또는 '진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죠. 지금까지 도장이 찍혀 있는 우표는 나라 안팎에 모두 27장이 남아 있는데요. 한 장당 100만 원이 웃돈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우표가 봉투에 붙어있고 적정한 소인까지 찍혀 있다면 이 봉투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형성될 것이에요. 실제로 이런 우표를 얻는 것은 귀한 보석을 얻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1960년대 이후 가끔 한 통씩 발견되어 신문지상에 오르기도 했으나 한결같이 위작으로 판명됐는데요. 이처럼 진품이니 명품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 희소성 때문이에요. 수집의 인기는 희소성이 절대적이죠. 지금도 옛날 유명 인사들이 친필로 쓴 엽서 등은 희귀품에 속해요. 특히 8.15 해방을 전후해서 일본 우표에 조선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은 아주 희귀한 자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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