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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집값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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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6. 15:41

ㅣ집값ㅣ

한국 사회의 ‘부자 열망’의 중심에는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의 집값은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집을 ‘주거 공간’으로서의 의미보다는 ‘투자 대상’으로서의 의미로 여겨왔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에게 부동산은 신화가 아니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이 비관적이라고는 해도,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 신화’는 여전히 견고해 보입니다. 한국·중 국·대만·일본 4개국에서 실시한 부동산 관련 소비자 조사 자료를 보면, 아파트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2011년 하반기에도 한국의 소비자들 중 61.9%는 ‘아파트가 투자 대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는 중국(57.1%), 대만 (39.4%), 일본(22.6%)에 비해 높은 수치였는데요.

그리고 2001년과 2011년의 10년간의 소비자 태도를 추적 조사한 결과에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내 집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73.9%의 소비자들이 긍정적으로 답했습니다(2001년에는 73.3%).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강박’에 가까운 주택 소유에 대한 태도가 실제 주택을 소유할 가능성이 높은 30~40대보다 20대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20대 76.6%, 30대 72.1%, 40대 72.2%).

현실적으로 20대는 주택 구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30~40대에 비해 막연한 기대감이나 가정 내에서 생각하는 집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20대들의 ‘내 집 소유’에 대한 강한 욕망은 부동산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가정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사회화된 결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이런 ‘주택 소유에 대한 강박’을 심어준 부모 세대는 어떤 세대일까? 바로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55~63년생, 700만 명)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 ‘문제적 세대’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요동을 쳤습니다. 이들이 처음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66~68년 사이 처음으로 ‘2부제 수업’이 시작되었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교육 인프라가 부족해 졸업정원제가 실시 되었으며, 이들이 30세 무렵 집이 필요해질 시기인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는 주택의 공급이 부족해 부동산 가격 폭등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중년이 되어 자녀를 위해 좋은 학군과 중대형 아파트를 필요로 할 때 부동산 가격은 통제 불능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부동산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근거 없는 신화’가 아니라 몸으로 체화된 하나의 ‘팩트(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의 비관론은 일시적 견해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믿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이 팩트는 여전히 사실일까요?

 시장은 비관적인데, 내 집은 올라야 한다?  

 

투자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살 사람(매수자)과 팔 사람(매도자)의 입장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2012년에 실시한 부동산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년 이내에 내 집 마련에 대한 의향이 낮았고(17.3%), 10명 중 7명에 가까운(65.9%) 응답자들은 1년 이내에 주택을 구입할 계획이 아예 없었습니다. 시세도 지금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43.1%). 매수자 입장에서 보면 당장 집을 사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죠. 결국 투자 대상으로서의 집의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고, 이런 심리가 전세 가격이 주택 가격을 초월하는 현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구매자의 입장에서 보면 집은 구매 가치보다는 거주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보유자(팔아야 하는 사람들)들은 실제 거래되고 있는 가격과 상관없이 자신이 구매한 가격보다 ‘20%는 오른 가격’에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43.2%), 자신이 아파트는 보유하고 있지만 하우스 푸어라고 응답한 사람들의 50.6%가 당장의 현금 흐름이 좋지 않아도 ‘당분간 (손해를 보면서 까지는) 주택을 매각할 의향이 없다.’ 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부동산 시장 전망은 좋지 않지만 ‘내 집만큼은 반드시 올라야 한다.’ 는 얘기로 보이는데요.

다소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런 주장은 사실 사회 심리학적으로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관찰자와 행위자의 차이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싸움이 일어난 상황에서 다소 거리를 두고 떨어져 관찰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사람은 그 싸움의 옳고 그름이나 혹은 누가 더 피해를 보고 있는지 등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싸움 속에 들어가 있는 당사자(행위자)에게는 그 상황의 옳고 그름 등의 객관적인 상황 인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뿐입니다. 당사자에게 싸움에서의 승리가 절실할수록 상황을 이성적으로 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감정적 불안함을 이해해야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살 사람의 냉정한 시장 판단과 팔 사람의 ‘보상 심리’ 간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는 사실 높은 사회적 불안감이 깔려 있습니다. 지난 2월 엠브레인트렌드 모니터에서 실시한 일상적 불안감&스트레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 10명 중 7~8명가량이 일상적인 불안감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는 실직에 대한 불안과 고용·취업에 대한 불안,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 가계 부채에 대한 불안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집값이나 실직·가계 부채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 주로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세대인 40~50대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경제적 상황에 대한 높은 불안감이 현재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왕 벌어진 그 ‘싸움’에서 이기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지 않는 현실적인 방법이 뭘까? 핵심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면 역설적이게도 감정에 영향을 덜 받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 자신이 놓여 있는 환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다음 현재 내가 가진 총알이 얼마나 있는지, 정말로 이길 수 있는지, 아니면 이 싸움을 유지하는 게 나을지 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최소한 싸움에서 지지 않는 방법입니다. 인구 구조·소득 수준·경기 전망 등 다양한 통계 지표들이 앞으로 긴 시간 동안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들에게 부동산은 투자가 아닌 주거의 대상이라는 것이 새로운 팩트가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문제는 부동산에 관한 과거의 팩트를 이 새로운 팩트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집’에 대한 ‘내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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