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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대학생동북아대장정! "가자! 고구려의 기상이 숨 쉬는 대륙으로"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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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5. 10:24

 





안녕하세요, 가꿈사 가족 여러분~! 프론티어 기자단 한승은입니다. 얼마 전 제 첫 번째 기사로 2014 교보생명 대학생동북아대장정(이하 동북아대장정) 현장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본격적인 대장정이 시작되는 2일차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해요. 2일차 일정은 고구려의 첫 도읍인 졸본성(오녀산성)을 시작으로 지안 박물관과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의 환도산성, 그리고 산성하고분군을 둘러보는 것인데요,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그 생생한 현장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첫눈을 뜬 이튿날






먼 타국에 와 있어서인지, 아니면 본격적으로 대장정이 시작될 생각에 설레어 그런지 새벽녘이 밝아오자 저도 모르게 번쩍 눈이 떠졌답니다. 머리는 굉장히 맑고 또렷했지만, 전날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몸에 쌓여있던 피로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거운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가벼운 체조와 구보를 하며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했답니다.






이른 아침부터 산성 답사를 가야 하므로, 든든히 식사하기 위해 모두 식당으로 향했어요. 첫 번째 날 저녁은 최대한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조리된 음식이라 대원들 대부분이 맛있게 먹었지만, 이날 아침에 맛본 요리들은 중국 특유의 향이 가미된 음식들로 가득해 많은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잘 먹지 못하는 대원들이 많았답니다. 




졸본성, 고구려의 첫 도읍지



현재 ‘혼강’이라 불리는 비류수를 따라 주몽이 환인 지방에 건국한 고구려. 주몽은 비류수 강가의 졸본에 정착했고 서쪽 산 위에 흘승골성을 쌓아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고 해요. 첫 도읍지로 선정된 졸본성(오녀산성)은 해발 820m에 위치해 있답니다. 졸본성(오녀산성)은 높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랍니다. 산꼭대기에는 길이 1km, 너비 300m나 되는 평탄한 탕이 펼쳐지고, 천지라는 샘도 있답니다. 

이러한 졸본성(오녀산성)에 1990년대 이전에는 송신탑이나 모노레일이 운행되는 삭도가 한복판을 지나다녔지만, 2000년부터 2002년의 2년이란 시간 동안 유네스코에 등재를 위해 원형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저희는 버스로 약 500m를 올라 서문 입구에 도착했답니다. 이제 이곳을 시작으로 약 990개로 이뤄진 계단을 따라 졸본성(오녀산성)의 터와 주춧돌이 발견된 1호 대형건축기지, 천지, 3호 대형건축기지, 거주건축분지 순으로 둘러보게 될 예정이에요.






무더운 여름날, 가파른 경사에 놓인 계단을 열심히 오르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어요. 비록 이곳이 졸본성(오녀산성) 정상은 아니지만 전경이 탁 트여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절로 시원해졌어요!






경치를 감상하고 포토 타임을 잠시 즐긴 뒤 대원들은 다시 서문으로 이동해 졸본성(오녀산성)의 역사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졸본성(오녀산성)의 전체 둘레는 약 4,754m이며 그 중 천연성벽이 4,189m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인위적으로 축조한 성벽은 565m로 12%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요. 

이렇게 높고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축조한 졸본성(오녀산성)이 ‘최고의 방어성’이라 불릴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천지에 있답니다. 쉽사리 오르기 힘들 정도로 험준한 환경을 지닌 졸본성(오녀산성)은 아래로부터의 식수 조달이 어렵지만, 이렇게 천지가 있어 물 공급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고 해요.





 



드디어 졸본성(오녀산성) 정상에 도달했어요! 이곳은 아까 잠시 쉬었던 쉼터보다 훨씬 아름답고 멋있었답니다. 2014 대학생동북아대장정 포스터에서만 봤던 이곳을 현장을 찾아 직접 바라보는 감회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13기 대원들 모두 감격에 잠겨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답니다.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프론티어 기자단의 이야기로만 소개해드리는 것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깜짝 인터뷰를 진행해보았는데요, 다른 대원들은 이 광경을 바라보며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함께 살펴보아요. ^0^






지안박물관, 고구려 역사를 한눈에 담다.






지안박물관으로 이동하기 전, 길었던 산행에 대한 보답으로 13기 대원들은 모두 맛있는 중식을 먹으러 이동했답니다. 아침보다는 반찬 수가 적었지만, 아침 식사보다 입맛에 맞는지 식사를 못 하는 대원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어요.





지안박물관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구려 관련 유물들을 보유한 박물관이랍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래 중국에서 발굴된 고구려 유물의 대부분이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데요, 서관에는 신석기 시대 고구려 건국 전후의 각종 공구와 병기,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답니다. 동관에는 고구려 시대 각종 고분 및 채색 벽화의 모사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공개하지 않은 고분의 벽화 모사본까지 있답니다. 중앙관에는 광개토대왕비탁본를 포함하여 관련 전시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지안박물관에서는 이렇게 고구려가 이룩한 찬란한 문물과 고구려가 동북아시아 지역에 미친 영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답니다. 


이곳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었는데요, 아쉽지만 이렇게 박물관의 외관이라도 카메라에 담았답니다. 하지만 안에 어떤 유물들이 있는지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내용을 꼼꼼히 메모해두었는데요, 무수히 많은 유물들이 있었지만 프론티어 기자단이 가장 인상적으로 본 유물들을 소개해드릴게요. 그것은 바로 제2의 광개토대왕릉비로 불리는 <지안고구려비(集安高句麗碑)>랍니다.



<지안 고구려비 (출처 : http://news.chosun.com/)>



지안고구려비는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서 발견된 고구려 비석이에요. 화강암 재질의 지안고구려비는 높이 173cm, 너비 60.6~66.5cm, 두께 12.5~21cm, 무게 464.5kg의 규모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소실된 상태로 발견되었어요. 전체적인 외형이 사각석 주형인 광개토대왕릉비와 달리 지안고구려비는 비수가 규형이고 비신을 장방형 판상 형태로 다듬어 비석 아랫부분의 돌출된 부분을 좌대에 끼워 세울 수 있게 했답니다. 

비문의 내용은 광개토대왕릉비와 같이 주몽의 건국설화와 수묘인에 관한 내용을 같이하고 있어요. 하지만 비문 중 출현하는 사시제사, 연호두 등의 글자는 광개토대왕릉비에서는 발견되지도 기록되지도 않았던 고구려 사료이기 때문에 왕릉제사와 수묘 제도 등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랍니다. 때문에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건립시기를 놓고 광개토대왕 시기인지 장수왕 시기인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유물이기도 해요.



지안박물관에서 평소에 직접 만나보기 힘든 선조들의 유물을 살펴보면서 가슴이 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아쉬움이 남았답니다. 이토록 찬란하게 번영을 이루었던 선조들의 흔적을 머나먼 타국에서나 접할 수 있다니,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직접 보고 느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답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 국내성의 방어성 '환도산성'을 가다



지안박물관을 나온 뒤 13기 대원들은 차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해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인 국내성으로 향했답니다. 수도를 천도하는 것은 매우 막중한 중대사였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역사상으로도 수도 천도는 왕조가 바뀌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 기록을 찾기 힘든데요, 우리 선조들은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졸본성(오녀산성)을 두고 국내성으로 천도했던 것일까요?








삼국사기에 따르면 졸본에서 국내로 도읍을 옮긴 것은 유리왕 22년 때라고 해요. 천도의 이유는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확실히 알려져 있지는 않답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천도의 이유를 유리왕의 왕권 강화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 신진세력의 발탁을 꾀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해요. 

환인은 기름진 땅이었지만 국가 경제 발달에 있어서는 좁은 지형이었기에 물자 운송에 어려움이 있었답니다. 또, 졸본의 위협으로부터 고구려를 지키기에 졸본성보다는 국내성의 여건이 훨씬 좋다고 파악했다는 해석도 있어요. 또한 국내성으로 천도함으로써 고구려 서쪽 현도군(玄菟郡)의 공격에 유용하게 방어하여 안전을 확보할 수 있고 동쪽 함경도 지방으로 국가 영토를 넓히고자 하는 이유도 컸답니다.

확실한 것은 유리명왕 시기를 넘어가면서 고구려는 졸본 땅의 자그마한 나라를 벗어나 만주와 한반도의 패권국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국내성과 환도산성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평지성과 배후산성으로 파악된답니다. 평지성인 국내성은 왕궁과 관청이 있고 귀족들과 일부 평민들이 거주하는 도성이었으며 환도산성은 위급할 때 피난하는 방어성으로 활용되었답니다. 고구려는 이 지역을 수도로 하였던 당시 적군이 침입하면 환도산성으로 이동해 방어했다고 해요.

환도산성은 국내성의 북쪽 2.5km 지점의 해발 676m 산성자산에 있어 '산성자산성'이라고도 불린답니다. 환도산성의 동, 서, 북 3면은 암반으로 이뤄진 험준한 지형을 자랑해 자연 성벽으로 삼고, 산마루의 평탄한 곳에 군데군데 석축 성벽을 쌓았다고 해요. 때문에 저희는 산성의 정문인 남문으로 환도산성에 들어갔답니다. 






환도산성은 산 능선의 자연 지세를 이용해 성벽을 구축했기 때문에 평면이 매우 불규칙한 형태였답니다. 





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산성하고분군'이랍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산 아래에 위치한 이 고분군은 이곳은 환도산성과 통구하 사이의 넓은 들판에 자리 잡고 있답니다. 산성하고분군은 현재 남아 있는 무덤만 1582로 이뤄진 세계 최대의 무덤군이랍니다. 태왕릉과 같은 초대형 고분은 없지만 꽤나 거대한 규모를 갖춘 고분들이 즐비해 있었답니다. 이곳 무덤의 형태는 적석묘와 절천장묘 등이고 몇몇 무덤에서는 벽화도 발견되었다고 해요. 때문에 산성하고분군의 무덤 주인들은 어느 정도 계급이 있던 사람들은 아닐까 생각돼요.



이렇게 산성하고분군까지 둘러보며 이날의 답사가 마무리되었답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현장을 마주하는 여운이 사라질까 아쉬워 프론티어 기자단은 13기 대원을 한 명 더 인터뷰해보았어요.








중국에서의 본격적인 대장정을 시작한 이튿날 맛본 저녁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답니다. 다소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늦은 저녁까지, 긴 시간이었지만 체감하기에는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 이날의 기억을 가슴 깊이 새기고 돌아왔는데요, 이렇게 기사를 작성하다 보니 새록새록 그때의 기억과 느낌이 또다시 떠오르네요. 다음 이야기는 이은주 프론티어 기자가 바통을 이어받아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예정인데요, 고구려의 찬란한 번영을 일궈낸 국내성터와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일궈낸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흔적을 쫓을 예정이랍니다. 다음 이야기도 모두 기대해주시기 바라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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