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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찌우는 교보인문학석강 현장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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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7. 13:33




안녕하세요, 가꿈사 가족 여러분. 프론티어 기자 6기 배성민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좋은 강연을 하나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가꿈사 가족 여러분이라면 한 달에 한 번씩 광화문 읽거느 프로그램 중 하나인 '명강의 빅10' 강연에 대해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강연은 인문학에 초점을 맞춰 보다 전문적이고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보인문학석강'이랍니다. 그렇다면 교보인문학석강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프론티어 기자가 찾아간 현장에서는 어떤 주제로 강연이 열렸는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도록 해요!








교보인문학석강 페이지 바로가기 : http://di.do/QQ9



교보인문학석강은 현대인이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 교보생명이 함께 마련한 고품격 인문 강좌랍니다.

제가 이번에 취재한 강연은 박훈 서울대학교 교수님의 ‘근대 일본의 힘, 메이지 유신’이라는 주제의 두 번째 강연이었는데요, 이날 강연을 맡아주신 박훈 교수님은 서울대 및 동대학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신 분이랍니다.


강연 당일은 평일 저녁 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분들께서 참석해주셨는데요, 강연참석자 분들 또한 역사적 지식이 상당하신 분들이라 깜짝 놀랐답니다. 특히 강연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수준 높은 질문들에 강연을 해주신 교수님께서도 매번 감탄을 하시며 답변을 해주셨어요. 


본격적으로 이번 강연 현장을 소개해드리기 앞서, 지난 첫 번째 강연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해드리는 것이 좋겠죠? 첫 번째 강연에서는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이 열강들이 각국으로 진출하는 세계정세를 중국의 ‘전국시대’에 비유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경고했던 상황과 거기에 인문학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이번에 제가 참석했던 두 번째 강연의 주제는 ‘사대부가 된 사무라이 : 메이지 유신과 유학’이었는데요, 굉장히 흥미롭고 독특한 관점의 강연이었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강연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해요!












<메이지 유신 전 일본의 배경>



일본은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센고쿠 시대(전국시대)를 맞아 경쟁적으로 군사력을 늘리는 것에 집중했는데요,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너무 많은 사무라이와 군사력을 통제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하는 등 나름의 통치방식을 취했어요. 조선과의 전쟁이 끝난 후 오랫동안 일본은 각 지방의 쇼군을 중심으로 평화로운 시기에 접어드는데요, 이로 인해 상인들의 세력은 점점 커지는 반면 사무라이 계급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전락하게 돼요. 


그러던 18세기 말, 장기간의 평화로 전사가 아닌 행정관, 지식인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되며 ‘칼 찬 사대부’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답니다. 여기에는 발달된 상업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온 동아시아 유교서적의 영향이 굉장히 컸다고 해요. 시대에 발맞춰 공부하는 무사들을 위해 ‘미니 과거제’가 시행되며, 점점 사무라이들은 국가대사와 천하대사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시하기 시작하는데요, 19세기에 들어오며 일본사회는 서구화로 이행되는 동시에 중국과 조선의 유학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동아시아화와 서양화가 화합과 변용을 일으키며 메이지 유신의 불씨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칼 찬 사대부>



메이지 유신을 주도했던 당시의 사무라이는 700년 일본의 사무라이 역사상 가장 공부를 많이 했던 사무라이였다고 해요. 더불어 19세기는 일본 역사상 유학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였다고 해요.


우리가 아는 일본의 사무라이는 중세부터 존재해왔으며, 13세기 가마쿠라 막부가 최초의 사무라이 정권이었답니다. 18세기 전까지 사무라이는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공부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해요. 당시 일본은 견고한 신분제사회로써 가문의 세습직이 자신의 직무가 되는 사회구조였어요.


일본의 사회 구조는 얼핏 바라보면 조선과 비슷하지 않나 싶지만, 과거제가 없었던 일본은 신분상승이 조선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해요. 그로 인해 유능한 하급사무라이들은 재능을 썩히며 울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고, 사무라이의 봉급이었던 쌀의 가격에 비해 다른 생활품들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많이 오르면서 경제적으로도 곤궁에 빠지게 된답니다. 그러던 18세기 말에 바다를 건너온 수많은 유학 서적의 영향을 받아 사무라이들은 손에 책을 잡게 되는데요, 당시 일본의 학교였던 ‘번교’의 숫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며 학교와 학적의 네트워크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조선의 당쟁과 비슷한 체제가 생긴 것인데요. 비슷한 시기의 조선은 당쟁이 약화되며 일본과 대조적인 사회 모습을 띄게 된답니다. 이렇게 지방의 번교를 중심으로 유학이 발달하게 되면서 ‘상서’가 정치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상서를 통해 번교의 사무라이들이 조정에 소리를 내며, 정치참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효과적인 상서를 쓰기 위해선 유교고전이나 중국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므로 사무라이들의 학문능력이 정치투쟁의 주요무기가 되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사회 흐름 속에서 사무라이들은 무도와 학문을 병행해가며 내실을 다졌고, 메이지 유신의 중심이 되었답니다. 







<유교, 유학이 동아시아 정치사에 미친 영향>



유교와 유학은 이렇게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사회체제에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 유교와 유학은 20세기 동아시아의 정치전개, 21세기의 정치현황을 이해하는 데 꼭 염두에 둬야 할 정도로 중요성을 지니고 있어요. 유교와 유학은 똑같이 전파되었지만 그 영향을 받은 한중일 세 나라는 현재 비슷한 것 같지만 확연히 다른 정치와 사회 체계를 가지고 있답니다. 따라서 유교적 정치문화가 각 국가의 어느 부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으며, 그 외의 요인들을 비교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1시간 30분의 강연 동안 프론티어 기자는 인문학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회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답니다. 아무리 세상이 첨단화 되고 정신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해도 인류의 의식 배경에는 그 민족 고유의 인문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있으시고, 인문학적 지식을 채우기 원하시는 가꿈사 가족들께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강연인 만큼 여러분도 꼭 참석하셔서 좋은 강연을 들어보시기 바라요! 프론티어 기자도 나중에 또 다른 강연을 들어봐야지 하고 다짐했답니다. ^^ 그럼 마지막으로 다음 강연 일정을 소개해드릴게요!




<다음 강연 일정>


6월 11일-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경희대 정지훈 교수)

6월 18일- 문명의 진화: 우리는 어떻게 침팬지와는 다른 길을 걸었는가? (서울대 장대익 교수)

6월 25일- 뇌과학, 인공지능 그리고 인류 역사의 끝 (KAIST김대식 교수)




인문학이라면 마냥 어렵고 낯설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역사와 철학, 심리학, 미학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심도 있는 고찰을 하다 보니 이를 더욱 어렵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교보생명에서는 '명강의 빅10', '동감콘서트', '교보인문학석강' 등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를 통해 인문학과 친해져 보는 계기를 마련해보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모든 청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도 재미있는 내용으로 강연이 진행되다 보니 다 듣고 나면 '인문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이었나?'라고 반문하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이상 교보인문학석강 현장을 생생하게 안내해드린 배성민 프론티어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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