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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봄, 네가 불어오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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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3. 14:00


희선이는 새빨갛고 샛노란 꽃밭으로 가득 차 그 옆을 지나가는 어느 누구라도 이를 배경 삼아 사진 찍고 싶게 만드는 그런 풍경을 닮은 친구였다. 그런 희선이의 풍경과는 달리 내 자화상에는 무색, 그리고 무취를 지닌 회백색 들꽃만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반응하며 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 아이의 계절이 봄에 있었다면, 내 것은 가을과 겨울 중간 즈음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겨울 한가운데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희선이는 수다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점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따사로운 기운으로 가득했던 그 단어 하나하나, 문장 각각은 보드랍게 나를 감싸 안으며 흩날리는 벚꽃 잎 같았다. 향기로웠다. 그 아이 곁에 있으면 이내 나도 그 향기에 물들었다. 나는 그런 희선이가 좋았다. 

봄이 되면 늘 통과의례로 했던 것이 희선이와 벚꽃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언제나 무표정 혹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나로서도 그 때만큼은 결코 아파 보인다거나 피곤해 보인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온갖 엉뚱하고 익살스러운 표정과 포즈를 요구하던 그 아이와 사진을 찍을 때면 그 순간만큼은 나도 나의 무채색 풍경에 알록달록한 색을 덧칠할 수 있었다. 짐짓 태연한 척 하면서도 나는 그 순간을 몹시 기다리고 기대했으 며 고대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찰칵! 소중한 날에만 사용하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양 손에 사진을 들고 열심히 흔든 채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깔깔 웃어댔다. 이렇게 나 아름다운 순간을 한 장의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 마냥 우쭐해졌다. 

언젠가 그 아이와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극 중 주인공인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그녀 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나무 밑에 묻혔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할머니는 벚꽃나무 근처 혹은 그 아래 묻혔던 것 같다. 벚꽃이 피었다며 소녀처럼 들뜬 채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 던 할머니의 모습이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도 죽으면 나무 아래 묻혔으면 좋겠다.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나무보다는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그런 나무였으면 좋겠어. 물론 봄에는 꽃이 활짝 만개하는 나무로!”
  
이런 말을 했던 희선이는 바람대로 꽃나무 아래 묻히지 못했다. 사고가 났던 어느 봄 그 날에 희선이와 벚꽃 잎이 한데 뒤섞여 흘러내렸다. 희선이는 스무 살을 마치지 못했고 나는 홀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채 스무 살의 계단 위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서러웠다. 

나는 너무나도 서러웠다. 구름 한 점 걸리지 않으며 새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 외로운 나무 같던 내게 수천, 수만 개의 꽃을 피워주던 희선이는 나를 홀로 남겨 두고 가버렸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기 때문이었을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나도 그 아이의 나무로가 한 송이 의 꽃이 되어주었어야 했다. 

내게 남아 있는 우리들의 순간은 벚꽃이 만개한 날 찍은 단 한 장의 사진뿐이었다. 좀 더 많은 순간들을 붙잡아두었어야 했다 자책하면서도 그 후로 다시는 그 사진을 꺼내어 보지 않았다. 

‘이제 내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겠구나.’ 

두려웠다. 내게도 꽃이 피는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일이라고, 그래서 마지막 남은 그 사진 한 장도 잊는 편이 좋겠다며 외면하려 노력했다.
 
나는 벚꽃이 피는 이 계절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날의 사고 후, 하늘에서 내리는 따스한 눈송이 같던 벚꽃 잎이 희선이가 흘리는 눈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집 주변 외진 곳에 한 그루의 벚꽃나무가 홀로 덩그러니 서있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희선이가 떠올랐다. 그 나무는 하룻밤 자고 일어난 사이 많은 꽃잎을 떨구었다. 마치 누가 볼 새라 어두컴컴한 한밤중에만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처럼 보였다. 누군가 그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더라면 마치 후두두 세차게 떨어지는 소나기 소리와 같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침햇살은 그 눈물 자국을 너무나도 선명히 비추고 있었다. 희선이가 내게 가려도 가려질 수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였던 것처럼 그렇게 환하게 말이다. 

희선이의 눈물, 그 흰 분홍 방울방울.
 
그 때 나는 내가 흘려야 할 눈물의 몫까지 희선이가 울어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슬퍼하라고 그 아이가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눈물 흘리고 지나간 자리에 는 초록의 잎사귀가 무성하게 피어날 터였다. 그 후에는 다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겠지. 내 눈물도 그것과 같기를 기도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그래서 다시 초록의 나무를 기다릴 줄 도 아는.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더 이상 흩날리는 벚꽃 잎을 보며 슬퍼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봄을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희선이는 알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희선이는 내 꿈에 단 한 차례도 나타나주지 않았다. 대신 일 년에 한 차례 한 계절인 이 봄 에 밤낮 쉬지 않고 흰 분홍 편지들을 보내주었다. 여전히 희선이는 수다쟁이다. 그래서 내가 끝내 놓치고 마는 소식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번에는 내가 미처 답장할 겨를도 없이 떨어진 꽃잎들을 두 손에 가득 모아 후- 불어줘야지. 희선이에게 답장을 보내야지. 

올해도 어김없이 그 아이의 시간들이 나를 찾아 올 것이다. 몇 번이고 희선이를 향한 내 마음은 정처 없이 헤맬 테지만 나 홀로 서 있더라도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모습으로 내게 올 테니. 여전히 아름다울 너를 위해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나는 마중 나갈 채비를 한다.
 
다시 봄, 먼발치서 네가 불어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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