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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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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9. 10:30


기계가 작은 소음과 함께 표를 뱉어냈다. 행선지는 여수. 그곳에 가면 89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두 정거장 전의 시골 마을에 내려 왼쪽에 나 있는 골목으로 쭉 올라갈 것이 다. 은근한 오르막길에 숨이 조금 밭아질 즈음 나타날 붉은 벽돌집. 어떤 연유인지 문짝이 없는 대문 옆에는 21년째 이름을 모르는 줄기 굵직한 나무가 자리해 있을 것이다. 그 밑에 는 철물점에서 파는 흔한 플라스틱 재질의 개집 하나가 놓여있을 거고, 분명 나름 안락한 집 따위는 내버려두고 거친 나무 뿌리 사이에 누운 채 스스로 홈리스의 길을 택하고 있을 집주인이 선연하다. 그 녀석 때문에 나는 방학 전까지는 굳이 내려가지 않으려 했던 고향으 로 향하는 것이다. 
  어제 저녁,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달갑지는 않았지만 받았다. 좋은 소식일 수도 있 으니까. 흰자위가 누렇고 잘 먹지 못하는 건 어쩌면 개들한테는 흔한 질병의 증세일지도 모 르니까.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이라도 뭐 어때. 수술비는 내가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수술만 시켜달라고 울며불며 빌었으니, 아무리 짐승한테는 돈 쓰는 거 아니라는 주의의 아빠 같은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의 아량은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간경화랜다.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대. 얼마 못 살 거라 그러더라.' 

늙은 개가 괴상한 소리와 함께 먹은 걸 게워냈다. 피부가 축 늘어지고 털이 푸석하다. 그 렇게 들어가기 싫어했던 개집 안에서 병색이 완연한 채 퍼져있는 녀석은 내가 아는 하양이 가 아닌 것 같았다. 10년은 들은 발소리라고 녀석은 나를 알아보고는 쳐진 몸을 이끌고 집 밖으로 나왔다. 살랑거리는 꼬리의 움직임이 형편없다. 저도 그걸 아는지 넘어가지 않을 사 료를 굳이 몇 알 씹어 보이다가 이 사단이 난 거다. 처음 보는 모습에 기겁을 해서 녀석 앞 에 쪼그려 앉아 어쩔 줄 모르고 허우적대다가 이내 그쳤다. 토악질을 멈추고 힘겹게 집으로 들어가 누운 녀석의 목줄이 눈에 밟혔다. 마음만 먹으면 뺄 수 있는 허술한 것임을 꽤 똘똘 한 녀석이 모를 리 없었다. 알고서도 용케 여태까지 차고 있구나. 조심스레 목줄을 풀었다. 이미 헐렁한 채였지만, 조금이라도 답답한 게 나아졌기를 바랐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현실에 다시금 목이 멘다. 손에 쥔 낡은 목줄이 다음 숙주로 나를 택한 듯했다. 

녀석은 그날 저녁을 넘기지 못했다. 갑자기 눈에 띄게 기력이 좋아진 녀석은 새로 담아 놓은 사료를 소량이지만 먹기 시작했다. 집 밖으로 나서는 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게 내 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하양이의 모습이라는 걸 알아채기에는 난 죽음이라는 개념에 면 역이 없었다. 금방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데 묘한 괴리감이 감돈다. 유생물이 누워 있다기 보다는 무생물이 놓여 있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 같았다. 녀석의 한쪽 발에 손을 가져갔다. 예상했듯이 딱딱하고 뻣뻣하다. 그리고 차갑다. 너 보고 가려고 이때까지 버텼나 보다. 아빠의 한마디는 예상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흘렸던 눈물들이 무색하게도 눈시울은 금세 붉어져버린다. 

열한 살 때였나. 45도로 지상에 시선을 내리꽂은 채 터덜터덜 마당으로 들어서던 초등학 생의 시야 가장자리에 흰 물체가 포착됐다가 사라졌다. 자연스레 걸음이 멈췄다. 찰나 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귀신일까? 도깨비? 유령일지도? 뭐가 됐든 두려운 건 공통이 다. 폐부가 싸해지려는 참에 두 종아리의 틈새를 무언가가 관통한다. 생소한 감각에 꽥 소리 를 지르고 주저앉았다. 내 비명에 엄마가 버선발로 현관을 열어젖혔다. 엄마! 귀신, 귀신! 내 목소리는 꽤나 다급했는데, 들려오는 건 엄마의 웃음소리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바 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든 내 앞에 있던 건 몽실몽실한 강아지 한 마리. 무늬 하나 없이 하얬다. 통설적으로 하얀 강아지를 일컫는 '흰둥이'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으나, 자기 할머니네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 흰둥이니 다른 이름을 붙이라 는 아는 동생의 고집으로 '하양이'라고 지었다. '하얀이'도 아니고, 나름 희소성 있는 이름이 라 여기니 마음에 드는 것도 같다. 하양이, 너도 마음에 들지? 묻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 릴 뿐이다.  

통조림 캔에 인쇄된 하얀 강아지가 녀석을 닮았다. 혹시 이름이 '하양이'는 아니지? 흰색 강아지들을 보면 항상 그래왔듯이 통조림 겉면의 개에게도 속으로 물었다. 세상에 '하양이' 는 우리 강아지 한 마리뿐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그러고 보니 녀석에겐 이런 거 많이 못 사줬지. 최근이라고 해봤자 저번 방학에 사간 닭고기 육포가 전부다. 맛있어하는 게 눈에 보였다. 슬하에 자녀는 없지만, 자식에게 다 해주고 싶은 부모의 심정이 이런 건가 어렴풋이 추측했다. 앞으로 맛있는 거 보따리 째 사오겠다 약속했는데 개강 이후로 집에 들른 역사가 없다. 그렇다고 이 길로 고향으로 직행해서 하양이 밥그릇에 통조림을 부어줄 것도 아니었 는데 덜컥 계산해버렸다. 하양이에게 못 먹인다면 강아지 키우는 친구에게 건네주면 되겠지, 하며 가방에 넣어뒀던 통조림 캔이 캔버스 천 아래로 만져진다. 가지고 온 줄 진작 알았으 면 묻은 자리 앞에라도 놓아주라고 아빠에게 부탁했을 텐데 고속버스는 이미 섬진강을 건넜 다. 이제 녀석과 나 사이에 강이 있다. 내가 그쪽으로 건너가기 전까지는 만날 수 없겠지. 측정 불가한 거리감이 뼈저리다. 

고등학생 때, 반 친구와의 대화에서 강아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다. 어쩌다가 그쪽으로 이야기가 흘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친구가 목줄을 한 채 마당에서 길러지는 하양이더러 불 쌍하다는 표현을 쓴 건 확실했다.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실내에서 금이야 옥이야 곱게 키 우는 애완견들에 비해 녀석이 부족한 대접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나도 줄곧 생각해왔 기 때문이었다. 인정하면서도 약간은 억울함이 치밀었다. 해주는 게 많지 않다고 함부로 대 한 건 아니었으니까. 하양이를 보러온 동네 꼬마들이 개에게 해로운 걸 먹이기라도 할까봐 예의주시하고, 자기를 보고 짖는다는 이유로 하양이에게 돌을 던지려던 동네 어른에게 소심 한 성격에 용케 화를 내고 했던 건 괜한 정의감이 아니었다. 녀석이 밤새 잠 못 들고 낑낑 대는 날에 잠옷바람으로 곁을 지켰던 건 같잖은 선심이 아니었다. 녀석과 함께 키우던 진돗 개를 가족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개장수에게 넘겨버린 아빠에게 하양이까지 팔아버리면 가만 안 있을 거라며 바락바락 대든 건 뭐냔 말이다. 

하기야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증언이라도 바라볼 대상은 이제 없는 것을. 설령 녀석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해도 애초에 변호를 부탁할 의향도 없었다. 어느 누가 그걸 요구할 수 있을까. 잘해준 일은 언제나 못해준 점에 잠식되고 만다. 가슴이 미어지는 기억만 살아남다가 끝내는 후회가 모든 걸 쓸어버리겠지. 

한참을 침대에 누워 뒤척이니 그새 새벽이다. 문득 텔레비전에서 봤던 애니메이션 속 에 피소드가 떠오른다. 십이시 중 축시, 오전 1시에서 3시까지에 혼령들이 그렇게 잘 나다닌다 고. 처음 접했을 당시엔 으스스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굳이 믿고 싶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녀석이 내게 찾아온다면. 

누가 나를 봤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했을 거다. 녀석의 몸집을 어림짐작으로 가늠하고 두 팔을 앞쪽으로 둥글게 말았다, 그러안듯이. 오른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공중을 쓸었다, 쓰 다듬듯이.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듣고 있다는 듯이. 

늘 '하양이'라 이름 붙인 게 마음에 걸렸다. 자라면서 두 귀와 몸 여기저기에 얼룩이 진 탓도 있고, 조금 더 고민해서 조금 더 좋은 이름을 지어줄 걸 내심 신경이 쓰였다. 나도 흔 한 이름이니까,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이름으로 불릴 때의 오묘한 감정을 잘 알면서 그랬 다. 보다 내가 성숙했을 때 만났더라면 유일무이한 이름으로 불렀을 텐데, 못내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개가 흰 바탕에 누런 얼룩무늬를 하고 동일한 이름을 쓴대도 내게 특별한 건 하나 뿐임을 알아줬으면. 수많은 개들 중 유일하게 나를 향해 달려왔을 한 마리는 녀석밖에 없었을 걸 내가 알고 있듯이. 같은 이름, 같은 생김새여도 함께 10년을 지낸 그 녀석이어야 내게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것이 네가 내게 소중한 이유임을. 

축시가 지났다. 품 안에는 아무도 없다. 잘 알아줬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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