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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해 누리는 ‘쉼’, 여행작가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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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7. 16:20

촘촘한 계획표도, 빼곡한 버킷리스트가 없어도 돼요. 많은 일을 해도 좋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행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휴식을 주니까요.



휴식을 찾아 떠나다

여행 계획을 세워 볼까요. 일단 여행지를 정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일’로 가득한 계획표를 짭니다. 어쩌면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은 낯선 땅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수많은 ‘투 두 리스트(To-do list)’ 때문에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김영주 작가의 ‘머무는 여행’ 시리즈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여행을 떠나서까지 남들 하는 건 다해봐야 한다고 여기는 우리들에게, ‘머무는 것도 여행’이라고 일러주었으니까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모든 여행은 숭고하다’고 말합니다. 설령 명소만 골라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관광일지라도,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름의 이유와 상황 그리고 취향은 모두 존중 받아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행의 순간 마주하는 ‘휴식’의 순간을 사랑합니다. 올해로 여행작가의 길로 선회한 지 10년차. 그 시발점이 된 첫 책 ≪캘리포니아≫에는 분주한 삶에서 한걸음 물러나 쉼을 갈망했을 때 느꼈던 일상의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10년 전, 캘리포니아로 갈 때는 정말 휴식이 필요했어요. 20년간 기자생활을 하며 뇌의 가동능력은 이미 바닥을 쳤고, 가이드북을 볼 상황도 안 됐죠. 그렇게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하고 떠났습니다.”




바쁘게 다니지 않아도 괜찮아

머무는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이 있어요. ‘이동범위가 넓지 않을 것’, ‘반드시 봐야 할 목록은 최소화할 것’, ‘주방이 있는 숙소를 잡을 것’ 등이다. 약간의 이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지역 안에서 움직였고, 남이 아닌 자신의 주관적 취향과 관심에 따라 볼 것을 정했습니다. 끼니 문제로 식당을 찾느라 체력을 소진하는 문제를 없애고자 주방이 있는 숙소에 머물렀어요. 

반드시 ‘머무는 여행’만 했던 것도 아니에요. ≪캘리포니아≫ 이후 ≪토스카나≫•≪뉴욕≫•≪프로방스≫•≪지리산≫ 등 다섯 권의 ‘머무는 여행’ 시리즈를 낸 후에는 작정하고 ‘길 위의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머무는 여행을 다섯 번 하고 나니 조금 바빠지고 싶었어요. 어떤 점에선 이동하면서 느끼는 게 더 많을 수 있죠. 미국 서부 횡단을 하면서는 하루에 300km를 운전하기도 했는데, 오고 가는 차도 없는 황무지를 운전하다 보면 시각적으로 다양한 것을 볼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길 위에도 또 다른 휴식이 있다는 걸 느꼈죠.”

길 위의 여행을 하면서도 그녀는 이동 사이의 휴식도 놓치지 않았어요. 여행 중간 2~3일간 머무는 숙소에서 아무런 계획 없이 밀린 빨래를 하고 동네 산책을 했습니다. 언뜻 서울에서의 일상과 다를 게 없지만, 다른 환경이 주는 미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공존하는 시간입니다. 




여행,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가끔은 무모하게 짐을 싸서 낯선 땅으로 떠나는 여행이 싫어지기도 했어요. 그러나 불편했던 기억마저 추억으로 떠오르는 여행이 결국 그리워졌습니다. 팔딱팔딱 살아 있는 자극을 느끼고자 다시 여행을 떠났어요. 각종 유적지와 박물관 입장권을 한 곳도 예약하지 않은 채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무계획은 몸을 불편하게 하지만, 의외의 재미도 줘요. 그렇게 여행 중 문득 마주한 순간들을 79가지 장면으로 기록했습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을 통해 ‘여행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여행기를 쓸 때도 최대한 시야를 열어두려고 해요. 같은 장소에 가더라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일상 속에 자신만의 생각을 가져보길 바라요.”

여행작가인 그녀에게 여행은 여느 사람들과 달리, 일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을 홀로 떠나기도 해요. 카메라도, 노트북도, 심지어 휴대전화 로밍도 하지 않고 리조트에 들어가 실컷 책만 읽다 오는 이른바 재충전 여행입니다. 여행지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지만, 한 번쯤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보라 조언하는 것은 자신에게 집중할 기회를 주라는 말로 들렸어요. 우연히도 그녀의 신간 ≪스페인, 어쩌면 당신도 마주칠 수 있는 순간들 79≫의 37번째 장면은 ‘휴식’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그래도 괜찮다. / 나는 여행 중이니까’라는 단 세 줄의 기록은 알고는 있지만 금세 잊곤 하는 진짜 여행의 의미를 다시금 짚어줍니다. 


김영주 여행작가는... 

20여 년 간 여러 잡지에서 에디터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2006년 캘리포니아 여행 후 쓴 ≪캘리포니아≫를 통해 머무는 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이후 ‘김영주의 머무는 여행’ 시리즈로 다섯 권의 책을 냈고, 두 번째 시리즈인 ‘김영주의 길 위의 여행’으로 세 권의 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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