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을 캐는 것은 우리의 봄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봄이 채 오기도 전에 꽃보다, 나무 이파리보다 먼저 피었던 것은,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아스팔트 도롯가 옆 잡초같이 초라하게 나 있는 쑥이었다. 날이 풀리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 땀에 젖은 두꺼운 옷이 차가운 한기와 만나 꿉꿉한 기분을 느낄 때가 되면 그제야 겨울이 끝나감을 알았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유림아, 아까 보니까 쑥이 많이 나 있더라. 캐러 갈까?”하고 말할 때가 되면, 그때부터가 진정 나에겐 봄이었다.

아직은 겨울옷을 장롱 안에 고이 모셔두지 못할 날씨였기만 엄마와 나는 대충 얇은 옷을 두세 장 걸치고, 바지 주머니 한편에는 검정 비닐봉지를 구겨 넣고, 한 손에는 쑥을 캘 커터 칼을 꼭 쥐고 집을 나섰다.

엉성한 옷 사이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좁은 구멍을 관통해 들어왔다. 저 멀리서 자동차들이 고개를 가로 지으며 달리는 게 보이는 도로 옆 자그마한 들을 끼고, 어설프게 허리를 구부정해 굽히며 서투른 실력으로 쑥을 캤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위아래로 흔들어 공기를 먹이고 내가 캔 쑥도 거기다 담았다. 쑥은 한 곳에 나 있지 않아서 고개를 땅에 처박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만 했다. 집중하느라 입은 삐죽하니 튀어나왔고, 걸음은 어기적댔다. 오랫동안 쑥을 캐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장시간 펴지 못했던 허리를 펴면 그 이후로는 더는 차갑지 않은,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 내 머리칼을 장난스레 헝클고 도망갔다. 행복한 바람은 내 눈을 감기고 온전히 봄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었다. 그것이 바로 이번 해 봄이 방금 막 시작됐음을 알게 해주는, 나에겐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때 그 봄바람을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하늘색과 연분홍이 교묘히 섞여 있는 색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저 멀리 손톱만 해진, 쑥을 캐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신난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 쑥으로 한가득인 비닐봉지를 자랑하듯 엄마에게 내밀면, 잘했다고 싱그럽게 웃으며 칭찬하는 엄마에게서 산뜻한 쑥 향이 났다. 나는 엄마의 싱그러움도 조금 떼어 비닐봉지 안에 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봄을 이만큼 담아왔다.

우리가 한가득 캐온 쑥을 엄마가 정성스럽게 씻어 전도 부치고, 무침도 버무리고, 국도 끓였다. 식탁이 온통 쑥으로 가득해졌다. 퇴근하고 온 아버지, 학원에 갔다 온 언니,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모여 저녁밥을 먹을 때면 그때야 아버지와 언니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그렇게 몇 번의 봄이 왔다가 다시 갔지만, 이제는 더 쑥을 캐지 않았다. 네 명의 식탁일 때보다 세 명의 식탁은 훨씬 더 조용하고, 초라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10살의 나이에 아버지가 근무 중 세상을 떠나 세상 속 작은 가루 한 줌만이 아버지의 전부로 남았다. 한동안 집안은 어수선했고, 후에 매우 힘들게 제 자리를 되찾은 듯한 식탁은 그대로 세 명이 되어 빈자리가 외롭고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그 빈자리엔 내가 그 당시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죽음이, 사람들의 눈물이, 그리고 이젠 없는 아버지가 존재했다.

뒤늦게 장례식장에 도착한 우리를 엄마가 끌어안으며 눈물지을 때, 나는 ‘그럼 이제 내 공책에 이름은 누가 써주나.’ 하는 생각들을 할 만큼 어렸다.

우리는 차차 그 조용함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정적 속에서 홀로 천천히 무너져내려 가는 엄마를 보고도 몰래 외면했다. 나는 아직 누군가를 위로할만한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어둠과 눈물, 흐느낌이 적당히 섞인 밤, 그 밤이 이불 속 나를 실컷 괴롭히며 머물다 간 후, 드디어 빛으로 가득한 아침이 돌아오면 그땐 다시 세상 어느 것보다도 밝고 강한 엄마로 돌아와 있을 테니까, 하고. 엄마는 같이 쑥을 캐러 가자고 했지만, 이제는 쑥을 캐는 것보다 현장체험학습이라거나, 친구들과 벚꽃 구경을 간다거나, 5교시에 밀려오는 춘곤증으로 봄을 맞이했다. 

나에게 더 이상 쑥은 봄을 알리지 못했다.

식탁 위 빈자리 하나가 익숙해진지 벌써 십 년이 지났다. 나는 주변의 평화로운 풍경이 좋은 한 대학에 입학했다. 엄청 길다고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두 시간 가량의 애매한 통학시간으로 인해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왔다. 언니는 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진작 서울에 있는 모두가 알만한 대학에 들어가 하숙을 했다. 집에는 엄마만 홀로 남게 되었다. 넷이었던 집에 이제는 혼자서, 홀로, 외로이, 우리를 그리면서.

갓 성인이 된 나를 에워쌌던 엄마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민망해질 정도로 나는 대학 생활에 적응을 잘해냈다. 주변이 논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런지 공기도 쾌적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며칠 전, 어둠이 차분히 가라앉은, 수십 개의 불빛만이 일렬로 내려앉은 저녁에 근처 지하철 옆길을 친구들과 나란히 걷다 한 친구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야, 그러고 보니깐 여기 꼭 바다 같지 않냐. 깜깜해서 논은 안 보이고 지평선 너머로 불빛들만 보이잖아. 예쁘다.” 

처음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정말 바다였다. 산과 논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바다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너비는 호수에 더 가까웠지만, 분명히 언젠가 한 번은 본 적 있는 여름밤의 바다였다. 그대로 낚싯줄을 담그면 작은 물고기라도 한 마리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여름의 시원한 밤바다, 냄새나는 가을의 은행, 뼈가 끊어질 것만 같았던 겨울의 바람. 

그리고 봄의…. 봄을 알리던 우리의 쑥이 생각났다.

다음날 낮에 보니 정리 안 된 도보 옆 논밭에 드문드문 쑥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길에서 어린 시절 맡았던 쑥 향이 향수처럼 강하게 났다. 엄마와 함께 쑥을 캤던 그곳에는 지금쯤 쑥이 났을까? 쑥은 어떻게 캐는 거였더라. 그 후로 엄마는 한 번도 쑥을 안 캤던 걸까….

언젠가 꿈에서 언뜻 보고 바로 잊어버렸던 같은 쑥이 한번 생각나고 나니 쑥과 관련된 나의 옛날 기억들, 봄의 기억들이 다시 생각의 수면 위로 잔잔히 떠올랐다.

십 년 동안 엄마는 봄을 어떻게 맞이했던 걸까. 나와 쑥을 캐러 다니기 전에는 아버지와 둘이서 설렘의 시작으로 봄을 맞이했을까? 어쩌면 내가 캐러 가기 귀찮다고 거부했을 때부터 엄마에게는 봄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 시작을 가르쳐주었던 엄마를 나는 무참히도 뿌리쳤던 것이다. 이번 봄은 꼭 놓치지 말고 엄마와 함께 맞이해야지. 아, 엄마가 보고 싶다. 과거의 그리움과 뉘우침이 동시에 찾아왔다.

봄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스치듯이 한번 지나간다. 한번, 두 번의 스침이 연결돼 시간이 된다. 그리고 시간은 너무도 순식간이라 바람에 날린 먼지 때문에 눈을 비비는 그 찰나에 휙, 하고 지나가 버릴 수도 있다. 이제는 저 멀리 있지 않아도, 바로 옆에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내 손톱만큼이나 작아 보이는 엄마가 있다. 그리고 쑥을 캐고 있지 않은데도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잔뜩 웅크린 엄마가 보인다. 어쩌면 나중에는 그런 엄마조차 내 눈에 안 보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없는 봄이란 어떤 것일지 정말로 모르겠다. 이제는 허리를 아주 잠깐 굽히기만 해도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는 엄마인데, 나와 같이 쑥을 캐러 갈 수 있을까?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동안 엄마에게 봄은 무엇이었냐고. 

하지만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심연 속에 가라앉아버린 엄마를 붙잡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다음, 그대로 그때처럼 침전하는 것을 지켜볼 용기가 없다. 

내가 입 밖으로 봄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뱉지 않는 한 엄마는 절대로 모를 거야. 그렇지만 엄마는 어렴풋이 알고 있겠지. 내 인생은 봄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시작 앞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으니까. 엄마가 내 봄이야. 그리고 그 봄은 항상 나를 시작할 수 있게 했어. 봄에서 봄으로, 시작과 시작으로 우리는 연결된다. 

봄의 길 위에는 여전히 쑥이 나 있고 엄마에게선 여전히 쑥 향이 난다. 길 위에 쑥이 나 있는 이상 내 봄의 시작은 여전히 쑥일 것이다. 나의 시작이었던 봄. 영원한 나의 봄, 나의 엄마 김성옥. 

스무 번째 봄이 등 뒤로 쑥 한 다발을 숨기고서 사뿐히 내게로 걸어온다.

*본 게시물은 2016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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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교보생명 교보생명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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