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5. 15:48
“너는 시골에서 살았으니까, 더 와닿았겠다. 그렇지?”
최근 본 영화에 관해 얘기하던 중 대뜸 친구가 물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가 자급자족하며 활기를 찾는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고향에 대한 질문은 습관처럼 긴장을 유발했다. 시골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특별할 것 없는 어린 시절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뛰놀며 친환경적인 삶의 태도를 배웠습니다’, ‘조부모님 밑에서 성장하며 예의 바르게 컸습니다’와 같은 구식 자기소개서 서문처럼. 하지만 내 고향은 친환경적인 곳과는 거리가 멀었고, 솔직히 (아쉽지만) 나 또한 그렇게 예의 바르게 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괜히 장황해질 것 같아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조금은 모호하게.
“글쎄… 그런가?”
외국인에게 “Where are you from?” 하고 묻듯, 대학 입학 후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어디에서 왔어?”였다. 그럴 때마다 찔리는 마음이 들어 은연중에 사투리를 썼는지 돌아보곤 했다. 계속되는 질문을 피하고자 부연 설명도 늘 덧붙여야 했다.
“봉동에서 왔어. 전북 전주시 옆에.”
나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 읍내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소위 촌구석에서 자랐다. ‘성인이 되면 이 촌구석을 꼭 탈출할 거야.’했던 내 소망은 대학 입학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경 후 초반, 학교와 거리에서, 그 수많은 낯선 이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부유하고 있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을 떠난 후에도. 그곳을 떠난 지 5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고향으로부터 멀어지는 중이다. 여전히 고향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자주 떠올리고, 틈만 나면 도시의 소음과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이것이 일종의 향수병 증세라는 것을 곧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가 가장 먼저 파악하는 내 정체성이 ‘시골 출신’이라는 생각에 괜히 주눅이 들곤 했다. 어느새 봉동은 버리고 그냥 전주에서 왔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전주 여행 가봤냐는 뻔한 질문도 잊지 않았다. 공감대를 형성해 무리에 끼기 위해 낯설면서 익숙한 척, 신기하면서 무심한 척 무리를 했다. 자잘한 거짓됨에 점점 스스로가 지쳤고, 결국 더욱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쓸데없고 얄팍한 자존심이 되려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출신지에 대한 은근한 자격지심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누적된 서러움의 기억때문인지도 몰랐다. 초등학교가 끝나고 친구들이 손을 잡고 읍내 아파트 단지 놀이터로 향할 때면, 나는 두 살 터울 동생 손을 잡고 읍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또래가 없는 동네에서 우리는 밭에 난 잡초를 뽑아 약초꾼 행세를 하는 둘만의 소꿉놀이를 하며 퇴근하시는 부모님을 기다렸다. 전주에 있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시골에 산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사소하고 유치한기억투성이가 뭉치고 뭉쳐 마음 한구석에 콕 박혀 있었다.
어릴 적 나는 고모와 또래 사촌들이 큰 집인 우리 집을 방문하는 명절날을 가장 기다렸다. 현관에 신발이 많아지면, 조용하고 따분했던 집에 활기가 돌고 밖에서도 집 안에서 새는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떠들썩한 명절의 끝, 항상 같은 자리에서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고 나면 마을의 분위기는 한층 더 썰렁해졌고, 토라진 표정의 나는 곧 풀이 죽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평생을 용암리에서 살았거나, 곧 용암리를 떠날 사람들. 대학 입학 전까지 나는 전자의 입장에서 늘 후자의 안녕을 빌어주는 위치에 있었다. 늘 누군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익숙했다.
한편, 용암리의 풍경은 늘 희한했다. 노을이 질 때 하늘에 번지는 붉은 찬란함이 음산한 마을의 분위기와 부조화를 이룰 때는 특히 그랬다. 집 앞 밭 너머로는 연신 매연을 뿜는 공단의 굴뚝 때가 보였고, 옆 동산은 서로 경쟁하듯 높이 솟은 소나무로 빽빽했다. 뒤편엔 어릴 적 자주 뵀던 이웃집 할머니의 묘도 있었다. 길을 따라 난 도랑에는 내 키만 한 잡초가 무성했고, 밭에는 제때 수확하지 않은 작물이 나뒹굴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 집은 왜 배추를 안 뽑아요?”
“배춧값이 떨어져서 인건비도 안 나오니껜 그라제…”
할아버지는 저녁 시간이 되면 그날 온 동네에서 채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망친 농사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할아버지 표현에 따르면) 썩을 놈의 날씨가 가장 큰 문제였다. 동네 사람들 흉을 보든, 떨어진 쌀값 얘기를 하든, 이야기는 항상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 같은 결말에 봉착했다.
“인영아. 열심히 공부해서 꼭 판검사 되어라.”
“네, 할아버지.”
“그래. 그래야 훌륭한 사람 되는 거여.”
나는 순간의 꾸지람을 피하고자 할아버지 말씀엔 늘 “네”하고 답했다. 스치듯 반복되는 말엔 어린 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저 멀리 24시간 가동되는 공장 단지와 으스스한 소나무 숲이 우리 집 더 가까이 와 사방을 조이는 것 같았다. 가끔은 밖으로 슬쩍 나와 집 앞에 딱 하나 세워진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늘어졌다가 작아지는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어슬렁거리는 것이 도둑인 줄 알았는지 우리 집 똥개 메리와 크리스마스는 왈왈 짖으며 내 상념을 깨놓곤 했다.
메리와 크리스마스는 평생을 공중감옥에서 살았다. 녹슨 쇠창살로 에워싸인 반 평 남짓한 공간, 발을 디딜 온전한 바닥도 눈비를 막아줄 튼튼한 천장도 없는 그들의 집을 나는 그렇게 불렀다. 고작 앞으로 세 보, 우로 두 보… 그것이 메리와 크리스마스가 내디딜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내가 용암리를 떠날 무렵, 공중감옥에도 별안간 따스한 봄소식이 들려왔다. 크리스마스가 무려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난 것이다. (물론 아빠는 메리였다) 나는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아홉 마리 천사들의 탄생’
아홉 마리 천사들은 보송보송한 솜털과 앙증맞은 발바닥을 가지고 있었다. 어미젖만 물고 있던 천사들은 어느새 좁은 공중감옥을 몇 바퀴씩 뛰어다닐 만큼 금세 성장했다. (너무 작은 발이 쇠창살 구멍에 쏙 빠지기도 했지만) 공중감옥에 천사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지자, 그들은 할아버지의 지인들 댁으로 각각 보내졌다. 작은 상자에 실려 가는 천사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나는 또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들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이제는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고향에는 해마다 내가 모르는 새 건물이 세워져 있고,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하늘로 자취를 감추며 솟구치는 매연이 보이고 바람에 부대끼는 소나무 숲의 마찰음 소리가 들리는 집 앞 풍경은 여전하다. 어린 시절 나를 질식하게 했던 그 풍경은 이제 옛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느끼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고향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길을 가다 우연히 백구를 보거나 잘 가꿔진 화단을 보면, 고향길 어느 집 마당에 있을 아홉 마리의 천사들과 가장 먼저 계절의 변화를 알려왔던 마당에 핀 꽃 무리 - 봄에는 개나리와 앵두꽃, 여름에는 장미와 해바라기, 가을에는 국화와 코스모스, 겨울에는 가지에 내려앉은 눈송이 – 를 떠올린다. 그리고 삶의 순간순간마다 고향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추억한다. 지난 겨울, 할아버지께서는 몸이 찬 내게 차를 끓여 마시라며 봉동에서 재배한 생강을 보내주셨다. 유난히 추웠던 겨우내 나는 생강차를 마시며 꽁꽁 언 손발을 녹이고 하루의 피곤을 달랬다. 혈액을 타고 흘러 내 몸을 덥혀 주는 생강차와 함께,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기억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내 안에 오랫동안 자리할 것임을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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