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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자연 세계를 보는 눈 ≪박물지≫ V S ≪산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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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4. 15:15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동서양에 차이가 있을까요? 표본적인 비교는 아니지만 인문고전으로 다시 나온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박물지≫와 중국의 신화집 ≪산해경≫은 그러한 차이를 엿보게 해요. 혹은 동서양의 차이와 무관하게 실제로 눈에 보이는 동물들에 대한 묘사와 상상의 동물들에 대한 기록으로 대비시켜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차라리 한 개인의 관찰기와 집단적 상상력의 집적으로 비교해야 할까요?






 



잠자리- 그녀는 안질(眼疾)을 치료하고 있다. 강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부어오른 눈을 찬물에 찜질만 한다. 그리고 부르륵부르륵 소리를 내며 마치 전기장치로 나는 것 같다.”


- ≪박물지≫ 중에서


  


≪박물지≫의 원제는 ‘자연사(自然史)’랍니다. ‘자연의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한데, 과거 ‘자연학’을 ‘박물학’이라고 부른 것처럼 ‘박물지’란 이름으로 소개되었어요. 1896년에 초판이 간행되고 1904년에 결정판이 나온 이 책은 ≪홍당무≫란 소설로 유명한 작가가 전원이나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동식물에 대해서 쓴 일종의 관찰기랍니다.


작가 자신은 ‘영상(映像)의 사냥꾼’을 자임하는데, 그가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으로 나갈 때 사냥총은 놔두고 가는 대신에 크게 뜬 두 눈을 챙기기 때문이에요. 눈이 일종의 그물이어서 그는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을 포획한답니다. 움직이는 밀밭과 식욕을 돋우는 개자리풀, 지나는 길의 종달새와 방울새가 포획물들이에요. 집으로 돌아와서 그런 영상들을 되새겨보면 다시금 선명하게 떠오르는 영상들을 글로 옮겼어요. ≪박물지≫의 탄생인 셈이죠.


≪박물지≫라고 해서 파브르의 ≪곤충기≫나 시튼의 ≪동물기≫처럼 정밀한 관찰과 끈질긴 묘사를 앞세우지 않는답니다. 르나르는 주로 동물인 대상을 묘사하면서 한편으론 자신이 받은 인상을 부각시켰어요. 당나귀를 ‘어른이 된 토끼’에 비유한다거나 뱀에 대해서는 그 묘사를 ‘너무나 길구나’라는 한 줄로 압축하고 있답니다.


비유와 시정(詩情)이 그의 보조적인 ‘사냥 도구’인 셈이죠. 그의 이미지 사냥은 주로 간단한 에피소드를 낳지만 짧게 응축될 때 더 흥미롭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밤 9시인데 아직 그 집에 불빛이 보이네”는 개똥벌레에 대한 심상이고, “꾸아(Quoi 뭐야)? 꾸아? 꾸아? -아무것도 아니야”는 까마귀에 대한 기술이랍니다.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더라도 아주 정확하죠. 이게 바로 ≪박물지≫를 읽는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다시 서쪽으로 350리를 가면 내산이 있다. 박달나무와 닥나무가 많으며 새로는 라라가 많은데 이 새는 사람을 잡아먹는다. ≪서차이경≫의 첫머리 검산에서 내산까지는 모두 17산으로 그 거리는 4,140리에 달한다. 그곳의 10신은 모두 사람의 얼굴에 말의 몸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 7신은 모두 사람의 얼굴에 소의 몸을 하고 있는데 네 개의 발에 외팔이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데 이들을 비수신이라고 부른다.”


- ≪산해경≫ 중에서


  


≪산해경≫은 중국 최고(最古)의 대표 신화집이랍니다. 산경(山徑)과 해경(海經)을 합해서 ‘산해경’이라고 부른 것이니 얼핏 지리서의 모양새를 갖추었어요. 즉 신화집이면서 지리서인 셈인데, 가령 첫머리를 장식하는 ‘남산경’은 작산을 출발점으로 하여 다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당정산이 있고, 다시 동쪽으로 380리를 가면 원익산이 있으며,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370리를 가면 유양산이란 곳이 나온다는 식으로 서술된답니다. 그런데 초점은 이러한 지리의 소개와 설명보다는 그 지역 특유의 동식물에 대한 묘사에 두어지고 있어요. 곧 산천의 형세를 말한 다음에 그곳에서 산출되는 광물 및 동식물, 특이한 괴물이나 신령에 대해서 언급하고 제례(祭禮)를 덧붙인 것이죠.


문제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갖가지 괴물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황당무계하고 허망할 정도로 신비롭다는 점이에요. 사마천이 “감히 말할 수 없다”고 평한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의 기서(奇書)가 ≪산해경≫이랍니다.


가령 소요산에 사는 어떤 짐승에 대해서 “생김새가 긴꼬리원숭이 같은데 귀가 희고 기어 다니다가 사람같이 달리기도 한다. 이름을 성성(狌狌)이라고 하고 이것을 먹으면 달음박질을 잘하게 된다”고 서술하며, 저산에 사는 어떤 물고기에 대해서는 “생김새가 소 같은데 높은 언덕에 살고 있다. 뱀꼬리에 날개가 있으며 그 깃은 겨드랑이 밑에 있는데 소리는 유우(留牛)와 같다. 이름을 육(鯥)이라고 하며 겨울이면 죽었다가 여름이면 살아나고 이것을 먹으면 종기가 없어진다”고 소개하기도 한답니다. 


이렇듯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의 퍼레이드가 ≪산해경≫이니 오늘의 기준으로는 신화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답니다. 혹은 상상동물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요? 언제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불분명하지만 ≪산해경≫은 대체로 기원전 3~4세기경에 무당들에 의해 쓰였고 무당들의 지침서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해요.


물론 오늘날 그런 지침서로는 유효하지 않답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적인 상상력의 뿌리이자 보고(寶庫)라는 평가는 ≪산해경≫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동기가 된답니다. 우리 곁에는 눈에 보이는 동식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끔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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