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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일하며 꿈꾸라! 멕시코 국민화가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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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6. 18:10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이는 멕시코 출신의 여성화가로 부서진 육체의 고통과 싸우며 평생을 지낸 프리다 칼로가 죽기 직전 자신의 일기에 남긴 마지막 말이에요.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삶을 괴롭혔기에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을까요? 오늘은 평생을 예술과 사랑에 바치며 치열한 삶을 보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프리다 칼로의 아버지가 찍은 그녀의 사진>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태어났어요. 그녀는 어린 시절 사진 기사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사진을 인화하고 색을 입히는 법을 배우며 지냈답니다. 하지만 여섯 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왜소한 다리로 절룩거리며 걸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음은 물론, 그녀는 다리를 가리기 위해 평생 바지를 입거나 주름 많은 긴 치마를 입고 다녀야 했어요.


그녀가 성장하던 시기는 멕시코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혁명이 한창인 때였는데요, 프리다 역시 당연히 새로움이 넘치는 생명력 강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답니다. 생물학과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소녀는 의사의 꿈을 키우게 되는데 그녀가 열여덟 살이 되는 해에 거대한 사건에 직면하고 말아요.


꽃 같은 나이,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아요. 그녀가 탄 버스가 기차와 충돌한 것이에요. 그 결과 버스의 금속 난간이 그녀의 옆구리를 꿰뚫고 허벅지로 빠져 나왔고, 그 뒤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답니다. 서른 번이 넘는 수술이 뒤따랐고, 평생을 쇠와 가죽 등으로 만든 정형외과용 보호대를 붙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부서진' 것이에요.






프리다의 부서진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어요. 하지만 그 부서진 삶을 견디는데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온몸에 깁스를 한 채 누워있어야만 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유로운 두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어요. 병실에 누워있기만 했기에 마땅히 그릴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자신이었어요.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관찰하며 자신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에요.


그녀의 그림에 유독 자화상이 많은 이유가 이것 때문이랍니다. 그녀의 그림은 자기 안에 있는 고통, 악마와의 싸움의 기록이고 그 상처에 대한 경배에 다름 아니에요. 사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고 어떻게 세상을 보았으며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볼 수 있답니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이렇게 그림을 시작한 그녀는 그림 공부를 제대로 해보지 않았기에 그림을 평가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리하여 만나게 된 사람이 벽화 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였어요. 멕시코의 국민적인 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는 예상을 허락하지 않는 그녀의 표현법과 에너지에 감탄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곧 결혼하게 돼요.


우리가 걱정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쉽지 않았답니다. 디에고는 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프리다는 그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어요. 한번 이혼을 하고 다시 재결합을했죠. 두 사람 사이의 이런 애증은 프리다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해요. 특히 프리다는 자신의 소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말하기도 했어요.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이었답니다. 그녀 자신이 ‘절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랍니다. 그래도 나는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살고 싶게 만든 것이 남편과 그림과 혁명가였어요. 그녀가 혁명가로서의 꿈을 가지게 된 것은 트로츠키라는 거물을 만나면서였지만 실제 그녀가 꿈꾼 것은 고통스러운 자신의 삶을 극복하는 혁명이었는지도 몰라요.






“나는 강하게 살아왔지만, 수건을 던지고 패배를 인정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프리다 칼로의 삶은 고통이 극단에 달한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구에 게나 삶은 힘겹답니다. 프리다 칼로의 세 가지 소원은 남편과 그림과 혁명가였어요. 남편은 사랑이고, 그림은 일이며, 혁명가는 꿈이다. 우리 삶도 이 셋은 꼭 필요할 듯해요. 사랑은 삶을 아름답게 만든답니다. 일은 일상을 채워주며, 꿈은 도전하고 밀어붙이는 에너지를 줘요. 사랑하고 일하고 꿈꾸는 사람은 아무리 힘겨운 현실도 이겨낼 수 있어요. 이것이 프리다 칼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삶을 견디는 방법이에요.


1950년 프리다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어요. 9개월간 병원에 입원을 했고 발가락 네 개를 잘라냈으며 오른발을 절단했답니다. ‘날기 위한 날개가 있는데, 다리가 무슨 소용이냐’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희망 대신 고통이 삶의 시간을 채울 뿐이었죠. 그녀는 죽고 싶었지만 디에고를 보며 견뎠답니다. 하지만 결국 1954년 여름 밤,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세상을 떠났어요. 외출을 나온 나비는 번데기처럼 제한된 삶을 살다가 귀환했지만 그 고통이 헛된 것만은 아닐 것이에요. 우리에게 귀중한 삶의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며 일하고 꿈꾸라! 이것이 그녀가 남긴 삶의 메시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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