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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려면 멀리 보라" 코미디의 거장, 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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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30. 18:00





앙증맞은 중산모, 크고 헐렁한 바지, 낡아빠진 구두,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에 지팡이까지. 찰리 채플린하면 떠오르는 모습이에요.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로 알려진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은 이미 그의 상징이 되어버린 지 오래랍니다. 덕분에 그는  20세기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받으며 부와 명성을 한 몸에 누렸어요. 하지만 명성과는 달리 인간 찰리 채플린의 삶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고 해요.






  

영화배우·편집자·감독은 물론이고 첼로와 바이올린 연주자,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그였지만 어린 시절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고 해요. 채플린의 부모는 배우였어요.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을 한 후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어머니마저 성대를 다쳐 배우로써의 삶을 일찍 마감해야 했어요. 당연히 가난이 그들을 따라다녔고, 어머니의 정신병까지 덮쳐 삶은 더욱 어두워졌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있는 동안 채플린은 빈민구호소를 전전해야 했어요. 배고픔이 일상이었고 길거리에서 자는 일도 흔했죠.


다행히 그에게는 부모님이 물려준 배우로서의 재능이 있었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극단에서 활동한 채플린은 자신의 고달픈 삶을 우스꽝스런 표정과 몸짓으로 재연했어요.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무대에 선 그는 평생을 무대 위에서 살았어요. 그의 연기는 다른 사람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는 자신의 삶을 극중 인물에 투영했으며 남들이 만들어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연출했답니다. 그의 웃음 너머에 슬픔이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일 거예요. 고난은 어린 시절로 끝나지 않았어요. 첫 장편영화이자 자신이 감독한 <키드>가 개봉되기 직전의 이야기에요


촬영이 끝나고 편집에 들어갈 무렵 채플린은 영화사와 갈등을 겪게 되었어요. 영화사는 <키드>를 압류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채플린은 영화사의 눈을 피해 몰래 편집을 해야 했답니다. 솔트레이크 시티로 간 채플린은 한 호텔에 자리를 잡고 자체 편집에 들어갔어요. 침실 하나에 120km에 달하는 필름을 쏟아 부으니 방 전체가 필름으로 가득 찼어요. 편집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흰 수건에 필름을 투사해서 보는 방법으로 채플린 일행은 무려 15개월 동안 수작업으로 편집을 했답니다. 첫장편영화 <키드>는 이렇게 완성되었어요.


결혼 생활도 순탄하지 않았어요. <모던 타임즈>에 출연했던 배우 파울레트 고다드와의 결혼을 비롯해서 마지막 배우자인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까지 총 네 번의 결혼을 했고, 열 한 명의 자녀까지 얻었으니 가족관계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이혼의 아픔과 소송에 따른 상처가 뒤를 따랐어요. 엄청난 위자료는 물론이고 언론들의 질타로 뭇매를 맞아야 했죠.


<모던 타임즈>와 <위대한 독재자>로 채플린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할리우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어요. 하지만 매카시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 FBI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웠고, 미국법무부는 끝내 추방령을 내렸어요. 고향인 영국에서 영웅대접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부담스러웠던 그는 정치적 중립국 스위스를 선택해야 했어요.






<영화 'His New Job' 속 찰리 채플린(좌), 영화 'A Dogs Life' 중에서(우)>



힘겨운 삶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연기였어요. 무대 위에서 그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넘어설 수 있었고 삶을 돌파할 힘을 얻었다고 해요.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도와줄 부모도 없었던 그에게 연기는 단 하나뿐인 희망이었답니다.


“나는 연기를 배워서 잘할 수 있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 연기를 못하고 아둔한 사람이 연기를 잘하는 경우가 많다. 연기는 본질적으로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요? 사람들의 그의 연기를 보면서 그의 삶을 느끼는 듯해요. 그가 만들어낸 매력적인 캐릭터 ‘리틀 트램프’가 그것을 잘 말해준답니다. 리틀 트램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어요. 그가 처음 리틀 트램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열여섯 살 때였어요. 주변 사람들에게서 빌린 작은 모자와 꽉 끼는 조끼에 헐렁한 바지, 커다란 구두가 그 시작이었답니다. 그 후 리틀 트램프는 늘 그와 함께였고 공연을 하면서 점점 분명한 색깔이 형성되었어요. 그 과정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리틀 트램프는 채플린을 닮아갔어요.






그는 영화만큼이나 멋진 말들을 많이도 남겼어요. 명언으로 알려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래서 나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가 대표적이이에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처럼 보여요. 하지만 이렇게 힘든 날들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고 재미로 남죠.

힘든 일상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한발 물러나서 현재를 보는 것이에요. 당장이야 힘겹지만 오늘도 곧 추억이 될 거예요. 그러니 더 멀리 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답니다. 그럴 때 고단한 일상도 웃을 수 있는 하루가 된답니다. 채플린은 말해요.


"웃음이 없는 하루는 버린 하루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멀리 보며 살아야 하는 이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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