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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러에서 요리사가 된 ‘안주원’의 행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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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7. 16:41

요리사 안주원 씨는 이쯤 되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이 만약 다른 길을 오래 걸었더라도, 결국엔 요리의 길로 들어섰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해본 그 어떤 ‘딴 짓’도 요리처럼 즐거운 것은 없었기 때문이에요. 구글코리아를 박차고 나온 지 어느덧 6년. 직장의 번듯함과 복지의 안락함을 포기한 것에 대해 그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해요.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주방에서, 타인의 행복을 위해 요리하는 까닭입니다.



딴 짓, 행복으로 가장 좋은 짓

그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요리사라는 꿈을 좇아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몇 년. 휙휙 흐르는 시간 사이로 픽픽 새나간 ‘초심’이, 어느 날 문득 목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요즘 그는 한국인에겐 아직 낯선 요리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어요. 그도 처음 해보는 시도예요.

“매주 일요일마다 각기 다른 장소를 빌려 매주 다른 음식을 선보이려 해요. 프로젝트의 제목이 <제멋대로 일요식당>이에요. 이번 일요일을 시작으로 석 달 동안 진행하려고요. 첫 날은 가족을 비롯해 고맙고 소중한 분들을 초대할 거예요. 열두 번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요리를 시작했던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있을 거라 믿어요.”  

<제멋대로 일요식당>은 진행 중이던 다른 프로젝트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시작된 일이에요. 돌이켜보면 그의 삶은 ‘어떤 일이 바람대로 되지 않을 때’ 새로 문이 열리곤 했어요. 그가 구글에 입사할 수 있었던 건 코넬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의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때 만약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구글코리아와의 인연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리를 시작한 건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끝내면서예요. 이별의 아픔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제빵학원에 다녔고, 그때 느낀 기쁨을 지속하기 위해 한식조리를 잇달아 배웠어요. 구직실패로 인한 절망감도, 연인과의 결별로 인한 상실감도, 그의 삶에 스며 ‘약’이 되었습니다. 

“구글에 입사했을 때 이제 내 삶은 완성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안락한 복지시스템과 주변사람들의 박수소리에 파묻혀 애써 외면했을 뿐, 자리를 잡아갈수록 무료함과 열등감에 시달렸거든요.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알았어요. 요리는 정말 정직해요. 조금이라도 자만하거나 1초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금방 티가 나요. 그 정직함이 정말 좋았지만 곧바로 사표를 내진 못했어요. 1년쯤 고민하다, 미국 출장길에서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죠.”

실리콘밸리로 한 달간 출장을 떠난 그는 토요일마다 호텔 인근 급식소에서 요리보조 자원봉사를 했어요. 그때 노숙자 할아버지들이 나누던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자원봉사자들이 내놓은 스튜를 먹으면서, 음식에 얽힌 각자의 추억을 유쾌하게 꺼내놓던 할아버지들. 그분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해요. 막연했던 ‘음식의 힘’을 그 순간 확실히 믿게 됐던 것입니다.



잊혀가는 맛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사표를 내고 또 한 번 미국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위해서였어요.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레스토랑 인턴까지 마친 뒤엔 미련없이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한식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요리를 통해 내가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한식에 있어요. 증조할머니의 북한식 순대, 엄마의 배추김치…. 잊혀가는 우리의 맛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강남의 유명 한식당과 이태원의 작은 막걸리집에서 일하면서 그 꿈에 한 발씩 다가섰어요. 가장 최근의 일터였던 막걸리집에선 지리산에서 공수해온 콩으로, 손수 장을 담그고 직접 두부를 빚었어요. 좋은 재료로 만든,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음식에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보였습니다. 그 사이 새로운 꿈이 싹텄어요. 방황하는 청소년들이나 삶에 지친 어른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꿈. ‘나눔’이란 이름의 소망이 자꾸만 커져삽니다.   

“요리가 그랬듯, 살아오면서 ‘딴 짓’을 많이 했어요. 대학시절 남들이 전공공부에 매진할 때 나는 ‘버섯 캐기’ 같은 수업을 듣곤 했죠. 맨해튼에서 한 학기 동안 인턴생활을 할 땐 지적장애인들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이벤트기획을 돕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알았어요. 딴 짓처럼 재미있는 건 세상에 없다는 것을요. 한눈을 많이 팔아봐야,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어요.”

‘딴 짓’으로 찾은 이 길에서 또 다른 길들이 그를 기다립니다. 기꺼이 헤매고 쉼 없이 넘어져도, 끝끝내 즐기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겨우 서른두 살에 그는 아주 근사한 ‘뒷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안주원은

1984년생. 코넬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구글코리아에서 2년 반 동안 일했다. 사표를 낸 뒤엔 미국 존슨앤웨일즈에서 요리공부를,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식당 SPQR에서 인턴을 했다. 현재는 우리 맛을 ‘지키는’ 한식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첫 책 ≪구글보다 요리였어≫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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