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9. 11:15
ㅣ텃밭가꾸기ㅣ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공간이라도 해도 흙이 보이는 곳엔 누군가 무엇을 심어놓은 광경이 우리 눈엔 익숙한데요, 또 그 심어놓은 식물의 대부분은 먹을거리가 되는 곡물이나 채소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만큼 우리의 유전자 속 텃밭에 대한 열망은 원초적이죠. 어떻게 보면 ‘우리는 보는 정원은 늘 뒷전이었고, 먹는 것에만 집착했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우리가 어디 텃밭으로 정말 끼니를 해결하자고 심나? 그저 무엇인가를 기르고 그 성장을 지켜보고, 그것이 우리의 먹을거리로까지 연결되는 이중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일텐데요. 전세계가 요즘 관상용 정원보다는 텃밭정원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우리는 수천 년 동안 머리보다 이미 몸이 익숙할 정도로 텃밭의 매력을 잘 즐기고 있답니다.
남의 것을 통해 배울 점도 많은데요, 유럽의 텃밭정원 역시 그 태생은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구성과 디자인에 있어 정원이라는 틀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결론적으로 농업이 아니라 텃밭정원이라는 큰 주제를 잊지 않으면서 다양하고 아름다운 정원의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들은 우선 관상을 목적으로 하는 정원과 텃밭정원의 영역을 분리하는 일을 먼저 했답니다. 우선 텃밭정원의 터가 마련되면 다목적 용도의 높은 담장을 둘렀습니다. 이담장의 용도를 때로는 식물을 키우는 지지대가 되고, 경계가 되고, 텃밭을 보호
하는 울타리가 되고, 그리고 그 안에 식물의 특징별로 나눠서 땅을 나눴습니다.
1. 담장에 기대 심어야 할 과실수(사과·배·자두 등)
2. 지지대가 필요한 덩굴식물류(완두콩·오이·호박 등)
3. 잎채소(상추·치커리·배추 등)
4. 뿌리채소(당근·무·생강·마늘 등)
5. 열매채소류(토마토·가지·고추 등)
6. 콩과식물 등
의 구성이 일반적인 유럽식 텃밭정원의 구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각에 분리된 식물 심은 공간을 영국에서는 ‘베드(Bed)’라고 불렀는데 각 베드마다 한 식물들을 계속 기르지 않고 땅을 돌려주는 방법을 택했는데요, 그 이유는 한 땅에 같은 식물을 계속 심을 경우, 특정 영향소가 고갈될 위험이 있고, 특히 뿌리채소의 경우는 뿌리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땅에 남아 다음해 맹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특히 영양분이 많이 필요한 잎채소나 뿌리채소의 경우는 거름의 양을 줄이기 위해 땅 속에 비옥한 질소를 남기는 콩과 식물 심었던 자리에 심어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텃밭정원의 깔끔하고 아름다운 구획정리는 단순히 관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런 기능성을 염두에 둔 디자인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물론 우리의 텃밭은 이와 조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답니다. 우선 가장 먼저 고려할 점이 우리가 즐겨 찾는 채소와 곡물이 유럽인들과는 다르다는 점인데요, 특히 우리의 경우 김치를 담그기 위해 소비되는 배추·마늘·파·생강의 소비가 연중 꾸준합니다. 게다가 유럽인들은 잘 먹지않는 들깨·참깨의 소비도 매우 크기 때문에 우리의 식생활에 맞는 우리식 텃밭 정원의 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일부에서는 아예 김치정원이라는 주제로 텃밭정원을 따로 구성하는 사례도 참고할 만하죠. 또 우리의 경우는 담장을 높게 치는 문화가 익숙하지가 않다. 이럴 경우 낮은 담장을 이용해 담장 위로 박이나 호박을 올리고, 그 아래 바람과 추위에 약한 잎채소류를 심어주는 등 우리식의 색다른 도전이 분명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흙을 밟지 않고 콘크리트 속의 삶을 삽니다. 그 안에서 내가 가꿀 텃밭을 찾는 일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전원에 사는 사람들에겐 정원을 강조할 일이 없다. 정원은 이미 잘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하답니다. 지금이라도 재활용통을 뒤져볼까요? 스티로폼 상자에 거름을 담고 그 위에 씨앗을 뿌리면 식물은 자신이 담긴 통의 가격을 논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라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두세요!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 즐거움은 딱히 표현할 길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뿌린 씨앗이 어느 날 싹으로 돋아날 때, 비좁은 베란다의 틈 속에서도 꿋꿋이 성장을 하고 부족한 빛과 영양 속에서도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줄 때, 그 기쁨을 말과 글로 표현하기는 정말 어렵죠. 그래서 우리가 식물을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식물이 우리의 정서와 마음을 달래고 키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 부족한 것을 향한 ‘소망’을 품고, 마침내 그것은 꼭 갖고 싶으며, 채워야마음이 편해지는 ‘열망’으로 확대됩니다. 하지만 소박한 소망이든, 뜨거운 열망이든 그 원천은 ‘결핍’에서 출발하며, 그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개인과 사회, 나라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죠. 텃밭 이야기라는 풀냄새 솔솔 나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서두 같지만 평생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텃밭은 말 그대로 ‘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입니다. 한 마디로 별 볼일 없이 놓인 땅 한 귀퉁입니다. 게다가 예로부터 텃밭작물은 경제성면에서 다른 농작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하찮은 그러나 없으면 무언가 서운한 정도의 작물이지만, 이제 도시인들에게 텃밭(흙)과 그에서 생산되는 작물들(생명)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서 현대인들의 무절제한 생활 리듬과 각박한 여러 종류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해준답니다.
마음과 정신마저 치유함은 물론 삶의 또 다른 성취감마저 선물로 줍니다. 이런 혜택은 ‘홀로’보다는 부부, 부모와 자식 사이, 그리고 이웃과 동호회원들처럼 공동체 안에서 행해질 때에 더욱 커지죠.
이런 의미에서 텃밭과 어린이를 어우른 책을 함께 읽는 것은 텃밭으로 가기 전에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텃밭에서 우리가 수확할 수 있는 것은 치즈나 햄이나 피자가 아니랍니다. 아이들이 고개를 흔들며 싫어하는 채소이죠. 일명 채소거부증 아이들이 냠냠 맛있게 채소를 먹을 수 있게 혀의 감각을 바꾸어주며, 스스로 생명과 함께 아파하고, 성장하고, 교감하며 살아가는 ‘흙의 인문학’도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텃밭가꾸기를 먼저 책 속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꼬마농부의 맛있는 텃밭≫(청어람미디어)은 영국 작가의 책이지만 우리네 아이들의 텃발 생활과 연결 짓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답니다. 엄마가 차려주는 식탁에서 자주 보는 채소들. 그러나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잘 먹지않는 채소들. “도대체 어른들은 저런 걸 왜 먹을까?” 하며 미워하기까지 한 채소들.
이 책은 이런 아이들이 말 그대로 ‘스스로 즐겁게 꼬마농부’로 변화되는 사랑스러운 기록들입니다. 아이들은 당근·토마토·호박·딸기·양파·시금치·감자 등 다양한 채소 가꾸기를 시작하는데요.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채소도 생명이므로 온갖 정성과 정보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엔 먹는 채소가 아닌 ‘기르는 채소’라는 점에 흥미를 붙이며 손과 발에 흙을 묻힌답니다. 그러면서 부모와 함께 채소마다 적당한 농기구(도구), 생기는 벌레와 찾아오는 곤충, 알맞은 물주기와 퇴비주기를 배우게 되죠.
아무렇지 않게 보았던 햇빛과 비바람, 낮은 기온 등이 식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깨달아가면서 궂은 날씨일 때에는 저도 모르게 마음을 졸이곤 합니다. 말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에 대한 존중심과 일치감이 저절로 생겨는 것이랍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가슴이 커지고, 단지 한 평의 땅과 돈 되지 않는 채소, 상장 없는 노동이지만 어느 새 저도 모르게 자기의 ‘마음 밭’도 함께 일구었던 것이죠.
≪내가 키운 채소는 맛있어!≫(한림출판사)도 같은 흐름의 책이지만 미덕이 하나 더 있답니다. ‘햇빛이 비치는 곳이면 어디든 재활용품을 이용해 싱싱한 텃밭을 만들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텃밭을 분양 받지 않아도, 드라마 속의 집처럼 정원이 없어도, 그리고 지하방에 살거나 변변한 화분을 구하지 못해도 햇빛이 있는 곳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그 어디든 생명을 키우고,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별 특이한 성향이 아닌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존재입니다. 특히 그 대상이 자신의 사랑으로 아름답고, 건전하게, 그리고 의도한대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줄 때에 우리는 보람을 넘어서 스스로 존재가치를 절감합니다. 이런 지성과 감성의 움직임을 어릴 때부터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체험하며 자라는 것은 어느 교육법보다 안전하고 바람직하답니다.
바로 이 점에 충복한 것 중 하나가 흙의 인문학이라 할 수 있는 ‘텃밭가꾸기’입니다. ‘완제품’의 세상에서, 기다림이 미덕이 아닌 미련한 짓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텃밭가꾸기’는 식성(올바른 먹을거리)과 마음(생명존중과 자연에 대한 감사), 그리고 미래를 위해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성향을 보상처럼 안겨준답니다.
흙의 메시지이자, 채소의 선물이며, 자연의 칭찬을 우리 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에 들려주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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