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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귀 모음, 광화문글판 :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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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3. 15:56





 

 

 



2005년 봄편 :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2005년 여름편 : 김동규 <해는 기울고>  




 



 

 


운명 


기쁨도 

슬픔도

가거라

폭풍이 몰아친다

오, 폭풍이 몰아친다

이 넋의 고요.


인연


사랑이 식기 전에

가야 하는 것을 

낙엽 지면, 찬 서리 내리는 것을 


당부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

 



2005년 가을편 : 마종기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2005년 겨을편 : 정호승 <겨울강에서>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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