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7. 18:23
경북 청송(靑松). 이곳은 이름으로 삼은 글자의 뜻이 그대로 풍경이 된 곳이랍니다. ‘푸를 청(靑)’에 ‘소나무 송(松)’. 청송 땅은 어디든 ‘푸른 소나무’처럼 푸르고 청정해요. 주왕산의 계곡이 흘려보내는 수많은 물굽이마다 힘차게 둥치를 세운 소나무들이 맑고 청량한 기운을 뿜어내는 곳. 청송이야말로 일찍 당도하는 초가을의 맑고 찬 기운을 마중하기에 맞춤이 아닐까 싶네요.
<인적이 드문 주왕산의 절골계곡. 탐방로는 내내 물소리를 곁에 두고 이어져요.>
계절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금강산처럼 주왕산도 이름이 여럿이 있답다. 암석이 병풍을 펼친 것 같다고 해서 석병산(石屛山)이라고 했고, 난리가 날 때마다 숨어든 사람들이 많아 대둔산(大屯山)이라고도 했어요.
지금의 주왕산이란 이름은 중국 당나라에 망해서 쫓겨온 진나라의 장관급 벼슬아치 8대 손인 ‘주왕’이 숨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랍니다. 하지만 그건 구전일 뿐 남은 기록도 없고, 등장인물들의 연대도 아귀가 잘 맞지 않아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꾸며진 이야기인지는 알 도리가 없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군가 몸을 피하려 했다면 주왕산이야말로 딱 알맞은 자리라는 것이에요.
지금이야 시멘트를 발라 유모차도 드나드는 순한 탐방로가 됐지만, 길을 놓기 전까지만 해도 주왕산은 감히 접근이 어려운 산이었을 거예요. 까마득한 석벽이 수직으로 서고, 암릉 계곡의 물길이 협곡 사이의 아슬아슬한 길을 끊었어요. 주왕산으로 몸을 피한 이가 있다면 거친 협곡 너머 경관에서 이상향을 보았을 것이에요. 그렇다면 ‘급박한 피신’은 곧 ‘물러나 앉은 ‘은거’가 됐을 거예요.
주왕산을 오르는 두 개의 길. 그중 대표적인 것이 주왕산 아래 절집 대전사에서 주방천을 따라 계곡을 오르는 길이랍니다. 이 길이 사람을 불러모으는 건 폭포와 어우러지는 빼어난 경관 때문이에요. 누구나 주왕산을 처음 찾은 이들은 이 길을 택한답니다. 이쪽 길에서 만나는 절정의 풍경은 용추폭포에요. 대전사에서 폭포까지는 느긋한 걸음으로 30분쯤. 유모차를 끌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순하답니다. 용추폭포는 문처럼 열린 협곡의 바위 너머에 있어요. 사방을 석벽으로 둘러친 공간 안쪽으로 삼단 폭포가 흘러내린답니다. 1단 폭포 아래 선녀탕이 있고, 2단 폭포 아래는 구룡소가 있어요. 폭포와 주변 풍경은 다른 비슷한 곳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해요. 수묵 풍경화로 그려진 상상 속의 풍경이 구현된 듯한 느낌이랄까요?
<녹음이 가득한 주산지와 물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왕버드나무>
또 다른 코스인 절골코스는 주왕산의 동쪽 능선의 협곡으로 이어진답니다. 이 길은 계곡 물길이 끝나는 대문다리까지 3.5㎞ 구간의 모든 코스가 물길과 바짝 붙어서 가요. 길을 내기 어려운 깎아지른 협곡에는 나무데크를 놓아두었어요. 이 길 위에서는 단 한 번도 계곡의 물소리가 끊기는 법이 없답니다. 소나무와 활엽수 우거진 협곡을 물소리와 새소리만 데리고 걷는 맛이 그만이에요. 더러 ‘지루하다’는 이들도 있지만, 오감을 열고 걷는다면 지루할 틈이란 없어요.
대문다리를 지나 가메봉에 올랐다가 내원마을을 거쳐 주방천 길을 따라 대전사로 내려서는 6시간짜리 코스가 있지만 그냥 대문다리까지만 가서 길을 되짚어 내려온대도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요. 절골 입구에서 대문다리까지는 왕복 3시간이 조금 더 걸려요. 주왕산에 갔다면 절골 부근의 주산지를 빼놓을 수 없답니다. 아랫도리를 물에 담근 150년 수령의 왕버들과 능수버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곳이랍니다.
<녹음이 가득한 주산지의 모습>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세상에 처음 알려진 이곳의 경관은, 매혹적인 사진으로 명성을 얻었어요. 하지만 사진 속 풍경을 기대하고 주산지를 찾은 이들은 십중팔구 실망하게 마련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수위가 낮은 날이 대부분이라 그런 모습을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여름 끝에 내린 잦은 비로 주산지가 만수위를 기록한다면 그때가 주산지를 찾아갈 최고의 타이밍이이랍니다. 녹음으로 우거진 숲과 주산지의 물빛이 신비롭게 어우러지는, 흔치 않은 모습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에요.
청송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은 차로 달리면서 느낄 수도 있어요. 청송에서는 어디로 길을 잡든 구릉마다 사과밭이 펼쳐진답니다. 가지가 휘어질듯 사과를 달고 있는 과수원 곁을 달리면 차창 안으로 달콤한 사과향이 밀려들어와요. 과수원 옆을 달리다 한창 수확 중인 농부들에게 갓 딴 사과를 구입해 맛 볼수도 있어요.
청송에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을 수 있는 길은 부남면의 병암계곡쯤에서 얼음골과 항리계곡을 지나 영덕의 옥계천 계곡으로 이어지는 932번 지방도로랍니다. 특히 얼음골에서 항리계곡을 지나 군 경계를 넘어 영덕 옥계리까지의 구간이 단연 압권이에요. 옥계리는 청송과 영덕, 포항의 끝자락이 물길로 만나는 곳. 청송의 주왕산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여기서 포항의 동대산과 내연산의 물길과 만난답니다.
옥계천을 끼고 가는 지방도로 바로 곁에 정자 ‘침수정’이 있어요. 조선 광해군 때 선비 손성을이 지었다는 정자인데, 현판에다 ‘베개 침(枕)’에다 ‘양치질할 수(漱)’ 자를 이름으로 얹었어요. 이름을 곱씹어 보면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며 소박한 풍류를 즐겼던 선비의 검박한 삶이 배어 있는 듯해요.
이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물길의 풍경이 가히 선경이랍니다. 정자 건너편 바위 벼랑에는 ‘산수주인 손성을(山水主人 孫星乙)’이란 음각의 글씨가 뚜렷해요. 절묘한 자리에 정자 하나 짓는 것으로 ‘산수의 주인’을 자처한 셈인데, 정자 툇마루에 앉아 주위를 바라보노라면 진짜 ‘산수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답니다.
알아두면 좋은 팁!
청송까지 어떻게 갈까?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서안동 나들목까지 간답니다. 서안동에서 나와 안동을 지나 국도를 타고 청송 방면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가면 돼요. 청송 어디서나 주왕산 방면 이정표가 잘돼 있어요. 주왕산의 절골 탐방로는 비가 내리면 자주 통제된답니다. 비가 내리고 있거나 비 온 뒤라면 미리 통제 여부를 확인해야 해요. 청송 얼음골에서 영덕 침수정으로 이어지는 길은 부남면에서 68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구천삼거리에서 930번 지방도로로 갈아타면 돼요.
청송에서 무엇을 맛볼까?
청송읍 내의 한일식당(054-873-2696)은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의 칼국수로 이름난 곳. 골부리(다슬기)조림을 내는 청송시장 근처의 만보식당(054-873-1243)도 괜찮아요. 진보면 신촌리의 신촌약수탕 부근에는 신촌식당(054-872-2050)을 비롯해 닭불고기로 유명한 식당이 몰려 있답니다.
청송에서 어디에 묵을까?
청송문화관광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한옥체험숙박시설인 ‘민예촌’(054-874-0101)이 추천할 만한 숙소에요. 8동의 한옥 독채 건물을 빌려주는데 화장실과 욕실 등이 딸린 방 두 칸짜리 아담한 한옥을 9만〜10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답니다. 민예촌에는 청송백자 체험관, 심수관 도예 전시관, 수석 박물관 등의 부대시설도 있어요. 주왕산 입구의 주왕산온천관광호텔(054-874-7000)과 청송군청 인근의 힐모텔(054-873-8880)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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