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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삶, 그 치열한 혼재(混在) 속에 서 있는 작가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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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23. 16:36

1995년 신춘문예 『이중주』로 등단, 이듬해 『새의 선물』로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대중 앞에 나선 그녀는 ‘혜성 같이 등장하다’라는 수식어가 참 잘 어울렸던 소설가였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며, 시대를 움직이는 길잡이로서 변함없이 문학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죠.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혼자 있어야만 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남은 시간을 잘게 쪼개 쓰느라 바지런한 소설가 은희경을 만나보았습니다.



소설을 사랑하다, 꿈꾸다

소녀는 독서광이었습니다. 한 번 책을 들면 그 다음이 궁금하고 또 궁금해서 도무지 책을 놓지 못했어요. 책을 많이 사주셨던 어머니는 밥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책에 몰두하는 딸내미를 보다 못해 책 읽기를 금지시켰지만 자는 척, 이불 속에까지 전등을 끌고 들어가 몰래 책을 읽어대는 딸을 끝내 말리지는 못했습니다. ‘네가 눈이 나빠진 건 그 때문’이라고 지금도 종종 타박하시는 어머니의 고집 센 그 딸이 바로 오늘 만난 소설가 은희경이예요. 예리한 통찰력과 냉소, 독설 등과 같은 단어로 대표되는 은희경 작품의 특징은 혹여 작가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긴장을 살짝 갖게도 했지만 따스한 겨울날, 정동에서 만난 은희경 작가는 굉장히 다른 느낌의 인물이었습니다. 12권의 책을 쓴 그 긴 세월 의 겹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맑고 고아한 느낌이 책을 그토록 사랑했던 소녀의 그것과 어딘가 여전히 연결돼 있는 듯합니다. 신간이 나오지 않으면 으레 사람들이 하는, “요즘도 뭐 써?” 라는 질문은 은희경 작가가 가장 억울해하는 물음이지만 답은 늘 정해져 있어요. 소설가에겐 늘 다음 소설을 위한 고민과 준비 만이 있을 뿐, 결코 쉼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늘 최고의 관심사는 소설이에요. 소재와 아이디어가 제 삶에서 나오는 거니까 소설과 삶을 구분하지 않는 거죠. 어 떤 일을 겪으면 이게 어떻게 소설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늘 생각해요.” 그래서 그녀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그 어떤 일용할 양식보다 귀합니다. 일 때문에 외국을 가도, 강연 때문에 지방을 가도, 혼자서 오롯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을 꼭 만드는 이유예요. 가장 최근에 다녀왔던 싱가포르의 인공미가 주는 효용성과 완전히 깃들 수 없는 우수, 4월에 다녀왔던 아일랜드의 어느 삭막하지 않으면서도 황량했던 시골…. 모두 자신이 상상하지 않았던, 못 했던 것들을 겪는다는 의미에서 소중합니다.




좋은 습관이 좋은 작가를, 좋은 삶을 만든다

은희경 작가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에요. 소설가의 일상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밤새 원고를 쓰고 아침에 밤잠을 자는’ 이미지로 귀결되지만, 그래서 종종 오전에 전화를 하는 기자들로부터 조심스럽다라는 말을 듣지만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에요. 작가 생활과 주부 역할을 오래도록 함께 해왔던 그녀에게 이른 아침의 기상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혼자 책임져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규칙이 없으면 유지하기 힘들다”라는 은 작가의 말에서 얼핏 자유로워 보이는 ‘작가’ 안에 감춰진, 묵직한 엄격함이 느껴집니다. “습관은 정말 중요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 나는, 좋은 습관을 갖고 있어요. 의식하지 않아도, 내 노력 없이도 몸에 밴 습관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일찍 일어나 오전에 집중을 하면 저녁에 술을 마실 수 있는 자유도 있고요.(웃음)” 작가로서, 개인으로서의 삶이 혼재돼 있는 그녀에게는 일상의 습관 역시 구분돼 있지 않아요. 어떤 일이 생겨나면 ‘왜 그렇 지? 왜 그럴까?’ 끝까지 질문하고 생각하는 집요함, 세상만사에 대한 호기심,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내고자 하는 해결의지 까지도 모두 소설가의 습관이자, 개인의 습관으로서 2015년 12월에 이른 은희경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을 갖는다는 건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과 비슷해요. 길을 내면서 가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포장도로를 달리면 굉장히 빨리 갈 수 있잖아요. 사람은 습관을 통해 잘 닦인 포 장도로로 들어설 수 있는 거죠.” 




작가로 산다는 것

은희경은 세속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작가예요. 독자들이 사랑하고 평단이 아껴온 그녀에게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고 굵직한 수상 내역들 역시 훈장처럼 그녀의 이름 앞뒤를 수식하니 그녀의 말대로 ‘운 좋은 작가 생활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나 그 충족감이 작가의 전부는 아니라고 은희경은 말합니다. “모든 작가들은 자기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가끔씩 오해받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라는 그녀의 말은 꽤나 놀랍습니다. 은희경이 꺼내든 타래는 2001에 발표한 『마이너리그』라는 작품인데요. 1990년대 여성작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 기를 하다가 다다른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마이너리그』에서 한국근대사가 국민을 얼마나 후지게 만들었는지, 마이너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썼어요. 그런데 뜻 밖에도 ‘왜 마이너한 인간을 조롱하냐’는 반응이 많았어요. 이 책이 창비에서 나왔는데 창비가 갖는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는다며 상업성만 갖고 책을 내주냐, 라는 비난도 있었죠. 인기작 가라서 내줬다, 라는 오해를 받은 거였어요.” 은희경 작가는 사람들 앞에 나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썼다. “저는 싸움을 못하고 간교해서 질 싸움은 미리 포기한다”고 조금 웃어 보인 작가는 매일매일 소설을 쓰고 1년에 한 번씩 책을 내다시피 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 타래를 더 많이, 멀리 풀어냈다고 말했습니다. “35살에 작가가 돼서 그동안 기만당했던 사회에 대해서 너무 나 할 말이 많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바퀴가 달린 것처럼 막 달렸어요. 오해받은 부분을 해명하는 것보다는 어쨌든 작품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많았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를 빠져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로서의 그녀의 고민은 잠시도 텀이 없는, 지금도 여전한 현재진행형입니다. 



문학은 우리 삶의 중심 추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녹여내기엔 지면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 흔한 질문만큼은 반드시 텍스트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는데요. ’우리 삶에는 왜 문학이 필요할까요?’ 이 뻔한 질문에 은 작가는 온 마음을 다해 긴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문학은 소수의 길을 자꾸 보여줍니다. 사실 문학작품을 보 면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 너무 많아요.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안 벌어?’, ‘이렇게 하면 이 여자가 내게 올 텐데 왜 그렇게 안 하지?’, ‘저대로 가면 성공할 수 있는데 왜 포기해?’ 하는 식으로 다른 선택을 많이 보여주는 거죠. 이는 휩쓸려가는 대중사회에서 나라는 존재에 추를 드리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추를 드리워주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엔 넌 왜 빨리 안 가니, 할 수 있지만 역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문학이 자기라는 중심에 추를 드리우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봐야 할 영화나 갖춰야 할 스펙, 먹어 봐야 할 음식, 가야 할 여행지 등 목표만 자꾸 생기다보면 왜 이걸 하는지, 질문을 전혀 안 하게 돼요. 남들이 생각해 놓은 걸 클리어 해놓으려고 할 뿐이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법조차 잘 모르게 되는 거죠. 남들이 하는 걸 빨리 하지 못해서 초조한 사람일수록 다른 길을 보여주는 문학작품은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희경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두 가지 느낌을 갖는다 고 말했어요. 하나는 아직도 이런 얘기가 유효하구나, 하는 것과 또 하나는 여성의 상황이나 사회적 편견은 소설을 썼던 초기와 비교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즈음 그녀는 또 다른 방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1990년대 이전이 사회참여적인 문학이었다면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문학은 개인의 문제로 돌아갔어요. 하지만 지금 은 또 한국문학이 바뀔 수밖에 없는 지점에 와있는 것 같아요. 그런 고민 때문에 작년, 재작년에 작품을 많이 못 썼고 나는 어떤 지점에 있는 작가인지 계속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문학적 방법론이 있어서 1980년대식으로 쓸 것 같지는 않지만 저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에게도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대를 끌어안고 개인을 위로하며, 동시에 쉬지 않고 질문 하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은희경 작가. 우리가 이토록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도 독자를 잠시도 내버려두지 않는, 깨어있게 하는 그녀만의 힘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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