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9. 11:30
아이들은 항상 왜라고 묻곤 한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어린 시절 종종 나를 데리고 밤 산책을 나가셨다. 내 고향인 강원도는 공기가 맑은 곳이라 밤 산책을 나가는 길에 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가득 떠 있었다. 별은 왜 뜨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이렇게 답하셨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되는 거야. 별이 반짝이는 것은 사람이 세상을 뜨는 날 하늘로 가서 남겨진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거란다.”
그로부터 5년 후인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별이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도 별이 많이 뜨는 날에는 오늘 세상을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별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보곤 한다. 별의 반짝임보단 별을 밝혀주는 어둠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매일 별을 보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이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면 항상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날이 있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에는 감질나게 별이 한두 개만 보이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막대 과자에 박힌 아몬드처럼 수많은 별이 밤의 표면 이곳저곳에 박혀있을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별을 보면서 반짝거린다거나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 생각하거나 다음 날 날씨를 예측한다. 그러나 나는 어린 날 엄마의 말씀을 떠올렸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 그렇게 매일매일 그날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간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우주를 떠올릴 때면 사람이 얼마나 유한하고 자그마한 생물인지 깨닫게 된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저 머나먼 우주는 얼마나 광활하기에 지구가, 그곳에 사는 우리가, 이토록 작아 보이는 것일까. 이곳에서 생명을 다한 사람이 저곳의 별이 되어 깜빡이는 거라면 다른 생명도 별이 되진 않았을까. 지구 밖 저 먼 곳에는 어떤 생명체가 존재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자그마한 우리 은하계가 다인데 왜 우리는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슬퍼할까.
그때부터 유성이 쏟아진다거나 별똥별 쇼가 펼쳐진다거나 하면 그날은 틈날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좀처럼 유성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 사람이 저기 별똥별 떨어진다고 알려줘도 뒤늦게 내가 그곳을 보면 이미 별똥별은 저 멀리 떨어진 후였다. 그러다 별똥별을 보게 된 건 정말 보통의 날이었다. 그날은 우리 반 체험학습이 있었다. 체험학습으로 커피를 직접 만들어보는 활동을 했었는데 커피숍 근처에 친구네 집이 있었다. 마침 부모님께서 출장을 가셨던 때였고 다음날이 주말이라 친구네 집에서 하루 자기로 하고 밤늦게까지 친구와 놀다가 집으로 향했다. 친구의 집은 우리 동네에서도 산골짜기에 있는 집이었는데 어둠이 빨리 그리고 깊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금방 어두워져서 불편하겠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산골짜기의 단점을 투정하기보다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별 보면 되게 예뻐.”
한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던 나는 마당에서 별을 보는 일이 굉장히 멋져 보였다. 그런데 그날 지구에 아무리 많은 별똥별이 쏟아진다 해도 도무지 볼 수 없었던 내 눈에 거짓말처럼 별똥별이 꼬리를 달고 지나갔다. 산골짜기의 어둡고 깊은 밤은 나에게 보통이 아닌 추억을 선물해줬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먼저 떠나간 사람의 인사라면 별똥별은 무엇일까. 이제 남겨진 사람들에게 인사를 다 해서 떠나는 것일까? 그렇다면 별똥별은 기꺼이 자신의 꼬리를 불태울 것이다. 남겨진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했으니 더 먼 곳으로 떠나기 위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인 것 같다. 성인이 되면 꼭 혼자 여행을 가야지 마음먹고 있었으나 막상 대학에 들어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환경에서 바쁘게 살아가면서 어린 시절 나의 다짐에 대해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밤 산책을 나갔었던 그날처럼 적당히 더운 여름날, 문득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바로 러시아행 항공권을 예약하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표도 사버렸다. 기차 안 내 키에 딱 맞는 작은 침대에서 4일을 지냈다. 기차가 달리는 중에는 휴대전화도 불통이 되어버려서 네모 상자에 불과했다.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가져온 책을 읽거나, 창밖을 바라보거나, 옆 칸의 사람들과 간단한 대화를 하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기차 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 생각이나 해도 괜찮은 곳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을 가로지르며 기차는 덜컹거리며 달려간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가장 바쁜 것은 달리고 있는 기차밖에 없다. 낮의 창밖에는 끝없는 들판뿐이었다. 끝없는 들판을 보고 있노라면 상상의 동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모르는 생물이 이곳이라면 존재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신비롭고 아득해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밤에는 달이 차는 것을 보았고 별이 뜨는 것을 보았다. 기차가 20분 정도 정차하고 있던 어느 날 밤이었다. 하도 기차에만 갇혀있기 답답해서 밖으로 나온 나는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봤고 살면서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처음 마주했다. 그렇게 얼어붙을 것 같은 경험이 처음이라 그날의 공기와 바람과 냄새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별이 곧장이라도 쏟아져서 나에게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기차는 묵묵히 그리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뱉어내고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사람의 죽음과 별에 대해 생각했다.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한데 얽히는 기차역 플랫폼이, 꼭 저 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하늘로 가서 남겨진 사람들에게 반짝이며 인사하는 별이, 기차에 오르고 난 후 창밖을 보며 남겨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과 별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기차역이든 지구든 많은 사람과 생명이 왔다가 떠나간다. 너무 많이 커버린 나는 지금도 반짝이는 별을 보며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순간을 생각한다. 모든 생명이 왔다 가는 이곳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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