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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대첩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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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6. 16:00

1592년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릅니다. 바로 한산도대첩인데요.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리는 위대한 승전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은 한산도대첩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

한산도는 경남 통영 앞바다의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는 섬입니다. 지금부터 약 426년 전 7월의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이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남겼죠. 바로 한산도대첩입니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진 전투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철저한 사전준비를 거친 일본군의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승리로 전개되고 있었는데요. 육지에서의 계속된 패전 속에서 이긴 한산도대첩은 약해진 조선군의 사기를 높이고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조선 수군이 남해안 지역의 통제권을 갖게 됨으로써 그때까지 아주 불리하게 전개되었던 전세를 조선 쪽으로 유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배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것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학익진(鶴翼陣)’도 바로 한산도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펼친 전술입니다. 


위험에 대비한 준비가 소홀했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이이의 ‘10만 양병설’에 대해 배운 기억, 다들 있으실 텐데요. 역사학자 간의 의견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된 내용은 미리 10만명의 군사를 길러 국방에 만전을 기하고 전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이가 10만양병설을 주장한 시기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이라고 하니,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가 이이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일본의 수장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조정에서 보낸 김성길과 황윤길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김성길은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고, 황윤길은 침략할 것이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예견했죠).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갔고, 우리 민족사에 큰 아픔을 남긴 임진왜란이라는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확실한 대비가 가능하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 해전을 앞두고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셨을 것입니다. 적들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적들이 펼칠 수 있는 전술들에 대해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셨겠죠. 만에 하나 계획대로 작전이 진행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비상수단도 준비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또 하셨겠죠. 이런 철저한 준비를 통해 적들의 위험을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에 대해서는 미리 대비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더운 여름, 인생에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가꿈사 사내필진 12기 전인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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