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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우수상 - 겨울에 피어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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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22. 19:29

   시를 쓰고 싶었다. 

   다른 화려한 문장으로 지나간 열정을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진심에 가장 가까웠던 말은 이토록 소박하다. 나는 시를 쓰고 싶었다. 우연히 마주친 꽃 하나라도 시어로 녹여내고 싶었고, 누군가의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은유로 담고 싶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낭만적인 업이었고 이상적인 삶이었다. 만약에 시인이 된다면, 진심에 몰두하고 굳이 그것을 숨기지 않는, 솔직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나의 시작은 이토록 순수했다.

   하지만 시를 쓰고 싶은 마음과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나는 계속 시를 써냈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시인이 되는 데엔 번번이 실패했다. 어느새 등단이라는 제도가 창작이라는 행위보다 중히 느껴졌다. 그때부터 시를 쓰는 일은 전연 즐겁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쓰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어쨌든 등단이라는 자격만 얻으면, 원래의 내 꿈과 금방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시를 쓰지 못하는 날엔 강박적으로 시상을 떠올리며 밤을 새웠고, 그러다 잠이 들면 어제 하루가 공란으로 남아버렸단 생각에 자괴감을 느꼈다. 시를 쓰지 못하는 날은 내가 실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포기’라는 단어가, 그때만큼 구체적으로 두려웠던 때가 없었다. 
하지만 이쪽 방면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기에, 결국 내가 먼저 문학을 외면해버릴 만한 핑곗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시인이 되고 싶다는, 조심스럽게 흘린 진심에 매몰차게 돌아왔던 물음을 떠올렸다.

   “근데 요즘 누가 시를 읽어?”

   막상 시를 쓸 땐 전혀 신경도 안 쓰던 말이었다. 하지만 펜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만큼 이 말이 갖는 위력 또한 거세졌다. 매번 혁신을 거듭하는 전자기기와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러있는 책, 그 둘을 두고 책을 고르는 일이란 대다수에게 힘든 선택임이 분명했다. 그래, 열심히 써봤자 사람들이 읽어주지도 않을 거, 그냥 놓아버리자. 이런 한심한 생각을 진지하게도 했다. 
이외에도 갖은 핑계로 시 쓰는 일을 점점 멀리하자, 소위 말하는 ‘스펙 경쟁’에서 한참 뒤처진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에 몰두한 기간이 어떤 결과로도 환산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명확한 대상이 없는 분노의 감정이 밀려들어 왔다.

   “진작에 자격증이나 따자고 했잖아.”

   문학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 내가 매일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자,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구들은 내가 시인이 될 가능성을, 동시에 문학을 향한 나의 신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본 적조차 없어 보였다. 시를 포기함으로써, 나는 그들의 예상에 들어맞는 인간상이 되어버렸다. 슬프게도 그런 시선에 반기를 들 힘조차 들지 않았다. 다만 더 낭만적으로 굴지 말자는 다짐을 하며 문제집을 들고 매일 같이 열람실을 향했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열람실이 포함된 건물은 구에서 지은 것으로, 똑같은 건물의 지하에선 도서를 대여할 수 있었다. 그곳엔 책은 가득하지만 자리는 매우 협소하여 보통은 위층의 열람실에서 책을 읽어야 했다. 예전이라면 내 몸은 지하층부터 향했겠지만, 이제 내 발걸음은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만을 올랐다.
고시생들과 학기 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한 공간엔 언제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들 사이에서 시집을 잡고 있으면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었다. 시인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해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니었음에도, 난 왜 그리 홀로 진심인 척, 현실에 굴복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던 걸까. 

   그날 밤, 책장을 가득 채운, 나의 전부와도 같이 여겨졌던 시집들은 두꺼운 문제집들에 자리를 밀려 결국 작은 박스들에 꾸역꾸역 담기게 되었다. 박스에 담긴 꿈들이 유독 초라해 보였다.

   시간은 흘러 시를 닮은 어떤 계절이 지나갔고 바람은 꽤 차가워졌다. 기온도 꽤 낮게 떨어지면서 바깥은 한기로 가득했다. 그날은 앞으로 더 추워질 날씨를 걱정하며 열람실을 향하고 있었다. 
익숙한 건물에 들어서자, 어떤 노인분이 계단 손잡이를 꽉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한 손에는 책 두 권이 들려 있었는데, 그중 한 권은 내가 시인을 꿈꾸기 시작한 해에 닳도록 읽었던 책이었다. 표지가 시뻘건, 시집치곤 매우 강렬한 모습인 탓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이야 내지가 새하얀 그 책이 내 방 박스 안에 있지만, 나 역시 처음엔 그것을 지하의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봤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유명한 시인인 줄 알았는데,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신 노인 분의 손에 그 사람의 시집이 들려있는 걸 보니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반가운 동시에 어딘가 씁쓸한 느낌을 동시에 안고, 나는 한 층을 더 올라갔다. 독서실 데스크에 있는 직원분에게 500원을 건네고 자리표를 받아봤다. 다음 날 내가 모르는 시험이라도 예정돼있는 것인지, 바로 문 앞에 위치한 자리를 제외하고는 자리가 전부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문 앞의 자리를 펜으로 체크하고 몸을 돌리자, 아까 계단을 올라오시던 할아버지 역시 데스크를 향해 올라오고 계셨다.

   ‘이런, 남은 자리가 없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직원분은 할아버지가 동전을 건네시기도 전에 “오늘은 자리가 다 차버렸어요. 좀만 더 일찍 오시지.”라는 말을 하였고, 나는 왠지 모를 죄책감에 휩싸여 자리를 양보해드릴까도 했지만, 곧이어 방음이라곤 하나도 되지 않는 나의 좁은 방을 떠올리며 결국 열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몇 분간 찝찝한 기분이 지속하였지만, 나는 분명 ‘더 낭만적으로 굴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결국 매일같이 오가는 열람실의 분위기에 적응된 나는 태연하게 문제집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나의 몰입을 깨뜨린 건, 옆자리 사람의 휴대폰 진동 소리도 작게 속삭이는 소리도 아닌, 다름 아닌 내 배에서 나는 소리였다. 시간 핑계를 대며 아침도 먹지 않고 온 뱃속에서 몇 번 요란한 소리가 들리다가, 꽤 길게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결국 옆의 편의점에서 뭐라도 먹고 와야겠단 생각에 다시 열람실 문을 열고 나왔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샀다. 온수기 옆 구석자리에서 급하게 끼니를 때우고 나오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아까 그 노인분이 도서관 건물 뒤편의 나무 의자에 앉아계셨다. 그사이 더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며, 그곳에서 책을 한쪽 들여다보고 계셨다. 기형적으로 부는 바람이 누워있는 나뭇잎들을 사정없이 쫓아낼 정도로 매서운 추위 속에서였다.
   그런 와중에 노인 분의 손은 눈에 띄게 야위어서 그랬던 걸까, 그 손에 들려있는 책이 한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노인 분은 한창 시에 빠져있을 때의 나보다도 더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 느린 손길로 책을 넘기고 계셨다. 이렇게 차가운 바람을 견디면서까지 읽어야 할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대체 저 작은 시집이 주는 감정이 무엇이길래, 저렇게 귀한 보물을 손에 쥔 듯, 추억이 담긴 사진첩을 넘겨보듯 할 수 있을까? 유독 서늘한 바람과 빠르게 지나다니는 차들 옆으로, 그렇게 홀로 멈춰있는 사람을 나 역시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열람실의 자리로 올라가 짐을 빼 왔다.

   “지금 자리 하나가 비어 있어요. 얼른 올라가 보세요.”

   노인분은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시다가, 자신은 이 자리도 괜찮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급하게 약속이 생겨서 가보는 거라고,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하며 재빠르게 발걸음을 뗐다. 그렇게 횡단보도 앞에서 노인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다시 건물로 들어가 도서를 대여할 수 있는 지하층으로 향했다.

   어떤 결과로도 환산되지 못한 시간을 탓하기엔, 난 아직 찬바람을 견디며 시를 읽을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시집 한 권을 책장에서 꺼냈다. 집으로 돌아가면 오늘 마주한 광경에 관해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심장에 뿌리를 둔 꽃이 입 밖으로 피어오르는 듯했다. 물론 시를 쓰고 싶은 마음과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엄연히 다른 것임을, 지금의 나는 잘 알고 있다. 떠다니는 말들을 사랑할 땐 시를 쓰고 싶었지만, 그 사랑이 집착되었을 땐 시인이 되고 싶었다. 이번엔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쉽게 확신할 수 없었다. 

   아직 나는 완전한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런 건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책에서도 정의하는 게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나는 다시 펜을 잡고 있다. 손을 떨어가며 새하얀 종이 위에 글자들을 나열하고 있다. 일단은 다시 쓰기로 한다. 다가오는 겨울과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심장과 뿌리에 관한 이야기를, 시간에 굴복하지 않는 어떤 존재의 이야기를, 나는 단지 쓰기로 마음먹는다. 여태 내가 해온 사랑처럼 이 마음 또한 변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한텐 어찌할 힘이 없다. 마음이 가는 대로 쓰는 수밖에.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안다. 누군가의 겉모습이 아닌 마음에부터 귀를 기울일 정도로 섬세한 편도 아니다. 이런 내가 지금의 시대에서 시를 쓰는 일을, 누군가는 한심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 모든 걸 인정한다. 나 역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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