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9. 18:20
큰아빠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나를 잡아다가 영정사진 앞에다 세웠다. 보라고, 네 아비 얼굴을 잘 들여다보라고.
아마 모를 것이다. 부모와 남으로 지내본 경험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거울 속 내 얼굴이 말을 거는 것만큼 생경하다. 닮은 얼굴이 액자 하나에 갇혀있는 걸 보는 일. 그게 엄청나게 슬프다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것. 모든 게 스물하나 먹은 내게는 버거웠다.
울지 않았다. 혼자 나를 키워낸 엄마의 노고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죽고 나서야 나타난 나는 그야말로 돌아온 탕아였고, 나는 몹시도 비정해 보이고 싶었다. 그를 기억하는 두 언니가 우는 동안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눈앞에서 뼈가 가루가 됐다. 사람이 죽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파렴치한 순간이다. 거대하고 무겁고 뜨거운 그것을 큰언니가 받아 들었다.
장지로 가는 버스에 타기 전, 내가 안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품에 안은 그것이 너무 딱딱하고 뜨거워 금방 돌려주고 말았다. 보잘것없는 나무상자가 이제 사람보다는 단단한 불덩이가 가깝다는 걸 알고 나자 마음속 무언가가 무너졌다. 와중에 나는 ‘비정한 막내딸’ 역할에 집착해서 아무도 몰래 짧고 뜨겁게 울었다. 그의 온도처럼, 아주 뜨거운 울음이었다.
고장 난 기계에 더러운 오물들이 역류하는 것처럼 나는 이따금 견딜 수 없는 감정들에 삼켜져야만 했다. 외로움, 그리움, 상실감, 원망 혹은 그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다만 어떻게 할 수 없는 바윗덩이가 가슴을 짓눌렀다.
한 번은 자면서 울었다. 아빠라곤 있었던 적도 없으면서 가족들에게 위로받는 게 죄스러워 참았던 게 터진 것이다. 감정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가면 그렇게도 터진다는 걸 그때 알았다. 꿈도 꾸지 않았다. 그저 암흑이었고, 가슴 중앙이 칼로 벅벅 긁는 것처럼 아팠다. 목구멍이 너무 아파 눈을 떴더니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가 몽롱하고 베개가 축축했다.
중학교 때, 한창 사춘기였던 나는 아빠를 많이 미워했다. 실제로 가정에 못난 사람이었고 나를 한 번 찾아오지도 않았으니 그럴 만했다. 나를 기억이나 하느냐고. 부모라면 듣고 상처받을 질문을 하고 싶어 혀에 삼킨 칼날을 벼르고 또 별렀다.
그리고 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인연은 질긴 듯하면서 무르다. 마치 결이 나 있는 비단처럼, 맞는 방향으로만 날을 세우면 손쉽게 잘려버리는 거다. 시간이 가면 젊음은 사라지고, 추억이 더 기억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미화되듯이. 이미 지나간 것에 말해봤자 대답이 없다. 무를 대로 물러 사그라진 인연에는 약이 없기 때문이다.
여름에 장례식을 치르고 겨울이 되고 나서야 집 밖을 나섰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엄마에게 용돈을 좀 주고 싶었다. 어쩌면 멀리 여행을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이 좀 특별했다. 나를 기다려온 것처럼, 그렇게 느껴질 만큼, 특별한 밤이었다.
그날은 허무맹랑할 만큼, 어이가 없을 정도로 예쁜 날이었다. 세상이 밤이 그토록 빛나는지 몰랐다. 사람들은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먹고 마시고 웃으면서, 멈추면 꼭 죽어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들이 너무 아름다워 나는 오랜만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남들 다 가는 시간 속에 나만 멈춰있던 초침이 툭, 속삭이는 소리로 다시 돌아갔다.
바로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사람을 잃고 세상을 잃고, 죽어가고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원래부터 그랬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게 언제나 그랬을 거였다. 우리는 언제나, 아주 오래전부터 ‘그럼에도’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한자리에 고여있었다. 모든 게 시작과 끝을 반복하며 돌아가는 것인데 다음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거리는 교향곡처럼 빠르고 웅장했다. 이제 악장이 끝났으니 이어받으라는 것처럼, 난데없이 고요해지고 내가 홀로 중얼대던 처량한 독주를 들어주었다.
‘나를 기억이나 하느냐고.’
생각해보면 그 질문에는 단지 악의만 담겨있지는 않았다. 사춘기 특유의 배짱이 묻었을 뿐이지, 오히려 진심만 그득했다.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모르는 사람, 고작 그 정도 거리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어떻게 한 번을, 한 번을 날 보러 오겠다 고집 피우지 않느냐고. 채 말하지 못한 말을 서툴게 눌러 담은 거였다.
아니다. 사람 인연은 고작 비단 같은 게 아니다. 우리는 실타래였다. 가위 없는 실타래. 꼬이고 얽혀 내다
버리는 수가 있더라도 뚝 끊겨버릴 수는 없는 실타래. 내가 그를 원망하고 그리워하는데 그 인연이 어떻게 하면 쉬이 없어질까.
요란한 소리로 버스가 멈춰 섰다. 주황색 불빛들이 도로를 물들이고 낡은 가로등이 깜빡대던 것을 기억한다. 간단한 인사로 버스에 올라타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나는 그만 다음 정류장으로 가겠다. 결국 멀어져 흐릿해질 전 정거장을 너무 오래도록 쳐다보고 서 있지는 않겠다.
우리 이다음 버스에서 만나자. 그때까지 밥 잘 먹고, 아프지 않고 곰곰이 생각도 하고 신나게 웃기도 하다가 문득, ‘이제 다시 끝이며 시작이구나.’라는 예감이 들 즈음에 나를 마중하러 와 주라. 결혼식 들어가는 여느 아빠와 딸처럼 손을 잡고, 그렇게 다음 버스에 같이 올라 타고나면,
그날 밤도 이렇게 아름답겠지. 세상이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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