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9. 18:07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것은 일곱 살 때였다.
구불구불한 곡선, 앙증맞게 달린 검정 기둥들, 튕길 때마다 들려오는 다채로운 소리.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날, 두 살 많은 사촌 언니가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던 그 갈색 물건에 나는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렸다. 언니의 악기를 냅다 뺏어 들고 이건 내가 가지겠다고 빽빽 우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악기를 처음 만난 바로 그다음 날부터, 온종일 바이올린과 함께했다. 먹을 때도, 잠들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바이올린을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연주를 마친 방 안에는 항상 내 열정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해 한겨울에도 부채질하곤 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에는 변화가 생겼다. 손가락은 악기와 활을 잡는 모양으로 조금씩 휘어져 갔고, 열 손가락 끝에는 굳은살이 배겨 딱딱해졌다. 어깨 받침을 대는 왼쪽 턱 밑은 닭살 돋은 것처럼 만지면 까끌까끌한 느낌이 났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했던 것은 왼쪽 쇄골 뼈가 툭 튀어나오고 튀어나온 부분이 눈에 띄게 검어진 것이었다. 목이 파인 옷을 입을 때마다 그 부분이 괜히 신경 쓰였던 나는 오케스트라 악장 언니에게 보기 싫은 게 생겼다고 칭얼거리곤 했었다. 그저 듣고만 있던 언니는 내 말이 끝나자 살짝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영광의 상처야. 어깨 받침이 쇄골에 너무 자주, 너무 오래 닿아 있어서 생긴 상처. 이건 연습을 열심히 한 연주자에게만 생기는 아주 자랑스럽고 멋진 상처라고.”
어린 시절 내 우상이었던 그 언니의 말 한마디에 보기 싫던 상처는 한 순간에 영광의 상처가 되었다.
연습이 덜 된 날에는 매서운 활 끝으로 맞기도 했고, 세 시간을 내리 벽에 붙어 비브라토 한 음만을 연습하기도 했으며, 콩쿠르를 준비할 때는 선생님 집에서 숙박하며 질리기 직전까지 연주곡 하나에만 매달렸다. 어떤 때에는 한 곡을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 방에 홀로 갇힌 채 연습만 하기도 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어린아이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로 참 독하게 연습했던 것 같다. 그렇게 독하게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짙어져 가는 영광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멋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되새기곤 했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바이올린을 놓은 것은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설렘에 들떠있던 그 날. 바이올린 레슨이 끝나고, 선생님과 엄마가 대화를 나누는 방에서 들려온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요즘 악기 전공하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아요. 진짜 천재가 아닌 이상은 정말 힘들 거에요. 수빈이가 공부 쪽도 괜찮나요? …… 그러면 공부를 시키세요.”
장시간의 연습 직후여서 더욱 새빨개진 영광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어깨 받침의 고무 쿠션이 떨어졌던지 평소보다 많이 긁힌 상처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후드득 떨어진 눈물방울이 닿을 때마다 상처는 더욱더 쓰라렸다. 어린 시절 모든 것을 바쳤던 바이올린이 내게 끝내 남긴 것은 눈물에 젖은 상처뿐이었다.
바이올린 없이도 시간은 흘렀다.
먼지가 잔뜩 쌓인 바이올린을 다시 꺼내 들기까지는 꼬박 7년이 걸렸다. 아무렇지 않게 교내 오케스트라 홍보 부스를 지나가던 나는 홀린 듯 멈춰 서서 동아리 신청서에 이름을 적었다. 오랜만에 악기를 잡던 그때, 몸이 부르르 떨렸던 것은 왜였을까? 아니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머리가 아파서였을까? 아니면, 그것도 아니면, 혹시, 설레서는 아니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정기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떨리는 손끝으로 마주한 음표들과 오랜만에 손에 쥔 활과 어정쩡하게 선 내 모습은 어색했다. 하지만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이면 나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연주에 열중하느라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었던, 땀이 눈에 흘러들어와 눈앞의 음표가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연습을 멈추고 땀을 닦아 내던 그때로. 악기를 처음 만나고 온종일 옆에 끼고 다니던 그때로.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더 정확한 음과 더 좋은 하모니와 더 부드러운 소리와 더 빠른 손놀림을 위해 부단히 연습했다. 한 음 한 음 조심스럽게 짚어가며 열정적으로 음악에 빠졌던 그 모든 시간은 또다시 몸에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았다.
드디어 대망의 연주회 날.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의 시작과 끝 그사이에 오직 나와 바이올린이 하나 되어 존재했을 뿐. 앙코르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바이올린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처음 악기를 만난 순간, 잠결에도 악기를 놓을 줄 모르던 순간, 처음 무대에 올랐던 콩쿠르, 악기를 멀리하게 된 순간, 그럼에도 다시 악기를 잡았던 순간, 다시 무대에 오르던 순간, 오랜만에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았던 조금 전의 순간까지. 전부 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박수 소리와 신이 나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귀퉁이가 부러져 나간 세면대 거울 속에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며 연주를 한 탓에 잔뜩 헝클어진 내가 보였다. 풀어진 검정 블라우스 단추 사이로, 꼭 바이올린을 포기하던 그 날만큼 툭 튀어나온 뼈와 더욱더 짙어진 영광의 상처가 보였다. 아직도 떨리고 있는 손가락을 상처 위에 가만히 가져다 놓았다. 꾹꾹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온 감정이 실린 눈물은 흐르고 흘러 상처에 떨어졌다. 충분히 쓰라려서 아픈데, 멈출 줄도 몰랐다. 아, 화장실 빛 때문인가, 눈물이 흐르는 동안 상처는 내내 반짝거리고 있었다.
가끔, 힘이 들 때면 영광의 상처를 가만히 어루만진다. 손끝의 차가움이 상처를 타고 온 몸 구석구석에 전해져 온다. 그 때의 반짝거림이 떠오른다. 사실, 어쩌면 아직도 반짝이고 있는지도.
*본 게시물은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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