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요, 사랑/광화문글판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6이 7보다 큰 이유 2020. 6. 18. 15:48

“전교생 13명? 진짜? 대박!”

전교생 13명이라는 이 숫자가 적은 숫자라는 건 대학에 들어와서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대학 친구들은 이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또 오래 잘 아는 친구들이 있어서 부럽다고 했다. 맞다. 우리는 서로 아주 속속들이 잘 알아서 서로 의지가 된다. 각자 다른 곳에서 살아도 울고 싶을 때, 웃고 싶을 때의 순간을 함께 한다. 장점은 이것뿐만 아니다. 당시에는 숫자가 적어 교실 절반이 거의 빈 곳이기에 놀기 편했다. 또, 새로 반 편성되어 새 친구를 사귀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높고 파란 하늘과 바람에 흩날리는 초록 잎의 나무들, 그리고 그 바람에서 오는 여름 냄새가 생각난다. 그만큼 내 중학생 시절은 고맙고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딱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바로 전교생이 13명, 아니 여자가 ‘6명’, 남자가 ‘7명’이라는 점이다. 음, 고작 한 명 차이일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물론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반장선거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반장선거에서 한 명의 차이는 아주 큰 힘을 발휘한다. 이상하게도 매년 우리는 후보가 여자, 남자 각각 한 명씩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여자를 뽑고, 남자는 남자를 뽑았다. 우리만의 암묵적인 규칙 같은 거였다. 

당연히 결과는 6:7. 6표와 7표. ‘남자애들’의 승리였다. 그리고 이 결과는 2년 동안 이어졌다. 물론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자애들’이랑 남자애들만 반장이 되는 것에 대해서 욕도 좀 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당연히 남자가 한 명 더 많기 때문이다. 

남자가 한 명 더 많다고 해서 남자만 반장이 되는 게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던 건 삼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경쟁의 교류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누가 더 책을 많이 읽는지 경쟁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읽었다고 말하면 뽐내기에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치 해치우듯이 책을 읽어 제겼다. 그리고 나는 ‘데미안’으로부터 약간의 충격을 받을 수 있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래, 지금까지 내 세계는 오로지 13명으로 둘러싸인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도 이 세계의 밖으로 나가려고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의 세계는 무엇인가. 불현듯 반장선거가 떠올랐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하나의 세계. 이 세계부터 파괴해보자. 냉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새 학기에는 반장선거에 나갈 것이다.’

3학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 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 이번에는 여자, 남자 상관없이 뽑는 거 어때?”

한 번도 13명이 있는 자리에서 모두에게 꺼내 본 적이 없는 주제였다. 장난기가 많은 재원이와 지성이, 성환이는 낄낄거리면서 싫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어디서 났는지 모를 나무 막대기를 가져와서 장난을 쳐댔다. 원래의 나였으면 ‘아, 너희 진짜 짜증 나’라고 웃으며 한 대 때렸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제발, 우리 한 번만 달라져 보자. 우리 너무 우물 안 개구리 같지 않아? 남자 7명이라서 남자가 계속 반장을 하는 거 진짜 바보같이 보여. 인기투표가 아니라 누가 잘할 것 같은지를 보고 뽑자. 제발. 이제 우리 고등학교도 가잖아.”

그제야 친구들은 나를 쳐다봤다. 친구들이 내가 장난기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이렇게 강한 어조로 말한 것이 처음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친구들은 계속 이런저런 말장난을 했지만, 확실히 친구들의 눈빛이 바뀌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반장선거 날이었다. 예상대로 재원이가 나왔다. 2년 연속 반장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까지 총 두 명의 후보였다. 공약을 설명하고, 투표 시간이 되었다. 한 표, 한 표 내 이름과 재원이 이름 옆에 바를 정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6표와 7표. 또 재원이가 이긴 것이다. 결국, 우리만의 관습의 세계를 파괴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한 순간 재원이가 이렇게 말하면서 뛰어갔다.

“야, 길지선. 사실 나는 너 뽑았어. 이거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다. 그러나 곧바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게 느껴졌다. 처음이었다. 알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거기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희망하면, 설사 결과는 바뀌지 않았더라도 작은 변화의 씨앗이 자라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받은 6표는 반장의 7표와 같은 가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것이다. 

아빠가 간 경화로 쓰러졌을 때, 그래서 내가 아빠의 기저귀를 갈아야 했을 때, 아빠의 병원 침대 옆 간이침대에서 자야 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않았다. 내게 작은 희망의 싹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10년이 흘렀다. ‘헤르만 헤세의 문학세계’ 강의 시간. ‘데미안’의 ‘알과 세계’에 대해 각자 해석을 하는 과제를 받았다. 나는 곧바로 이렇게 적었다.

‘알을 깨기 위해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존재한다면 이 알과 나를 감싸고 있는 작은 세계는 부서지고 나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희망이 있기에. 6이 7보다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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