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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최우수상 - 우리 지금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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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24. 14:56


   “앞에 계단 있어.”

   “거기 사람 있어.”

   “11시 방향에 김치, 12시 방향은 잡채.”

   내 삶은 낯선 문장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위의 세 문장이 어느 상황에 쓰일 만한 내용이냐고 묻는다면 다소 곤란해 할 것이다.

   어느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마주해야만 비로소 발화되는 문장이 있다. 고정된 단일의 세계에 머물러서는 절대로 발화될 수 없는 문장. 서로에 대한 기꺼운 마음과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문장. 앞에서 소개한 세 개의 문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글은, 그렇게 탄생한 문장에 관한 기록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불과 일주일 만에 모든 시력을 잃었다. 이후 특수학교에 진학하여 고등학교 때까지 시각장애인의 세계에 머물렀다. 한 학급의 학생수가 10명 안팎으로 많진 않았지만 나와 같은 경험과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락하고 감사했다.

   그러나 대학교에 입학하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당시 학교에는 시각장애학생이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고, 그마저도 한 명은 비장애인에 비하면 시력이 좋지 않은 ‘저시력’이라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독수리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비장애학생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대학생활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도움을 어디까지 요청해도 괜찮은지, 장애학생을 동기나 친구가 아닌 ‘장애인’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지. 요컨대,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저시력이었던 선배는 확대경을 사용해야 하는 것 외에는 시력으로 인한 불편함이 없고, 따라서 동기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본 일이 전무하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상대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동정을 하지도 않고, 도움을 줘야 한다는 도덕감정을 갖고 있지도 않는데, 어린 나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인지 입학이 기대되는 한편 너무 두려웠다. 나는 또래의 비장애학생을 만나는 것이 거의 처음이었고, 동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교생활을 끈질기게 이어가며 첫 학기에 느낀 것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거였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미처 다 외우지 못해 허덕이는 나와 달리 동기들은 서로의 옷차림, 얼굴과 같이 외적인 부분을 통해 서로를 알아봤고, 식당에 찾아가 주문을 하거나 음식을 받아오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동기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억울하고 외로웠다. “젊음이 너에게 주는 상이 아니듯, 늙음도 너에게 주는 벌이 아니다.” 라는 말처럼, 장애는 나에 대한 형벌이 아니니까 이로 인해 고통 받고 싶지 않았다. 비장애학생들의 생활양식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면서도 나 혼자만 손해보고 있다고 느꼈다. 마치 전혀 다른 문화권에 내던져진 사람처럼 관계를 맺고,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은 늘 나의 몫인 것만 같았다.
 
   “11시 방향에 김치, 12시 방향은 잡채.”

   그러던 어느 날, 동기가 식사자리에서 내게 불쑥 말을 건넸다.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스쳤다. 본능적으로 나만 노력하는 건 아니었구나 싶어 먹먹해졌다. 이를테면 나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문장으로 말을 걸어온 셈이었다. 그 후로 한동안 동기나 선/후배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했다. 그곳에는 예상보다 많은 문장과 몸짓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길을 갈 때면 자연스럽게 다가와 팔을 내밀었고, 목소리로 자신을 알아채지 못할까봐 “안녕, 나 아무개야.” 라고 이름을 먼저 밝혔으며, 주변 상황을 설명해주거나 영상의 내용을 알려주는 등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내 방식을 습득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급적 감추고 싶어했던 내 세계를 열기 시작했다. 두 세계가 마주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언어는 철저히 인식을 반영하고, 거기서 끝이 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세계가 맞닿는 곳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친구들과의 추억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점자투표'다. 당시 학과 및 단과대 학생회를 했던 친구들은 총학생회 선거에서 점자투표용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국내 최초로 힘을 합쳐 점자투표용지를 학내에 도입했다. 누군가는 대신 도장을 찍어주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고, 2만여 명 중 고작 한 명을 위해 예산을 편성해 투표용지를 만드는 것이 과하다는 의견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두 세계가 맞닿는 순간에 벌어질 수많은 변화 중 하나라고 믿는다. 내가 사용하는 문장을 존중하고 익히듯, 세계를 공유하고 함께 또 다른 세계를 개척하는 것. 친구들이 만들어준 점자투표용지에 찍은 도장은 사실 어느 후보에 대한 지지의 표시가 아닌, 세계에 대한 내 존재의 족적이었다. 분명하게 이 사회에 속하고 있다는 감각,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된다는 느낌. 그 감각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동기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느낀 것은 모순적이게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각자가 구사하는 문장이나 영위하는 생활양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결국 ‘사람’이고, 우리를 망설이게 한 것은 서로의 ‘존재’가 아니라 낯섦이었다는 것.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사라진 후 남은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이제 나는 나로 인해 변화된 그들의 세계와 그들로 인해 변화된 나의 세계가 앞으로 바꾸어나갈 수많은 세계를 꿈꾼다. 무엇보다 갓 대학에 입학하거나 이미 입학해 다른 세계를 마주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그대는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낯섦일 뿐 그대의 존재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우리 지금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지금 만나.”

*본 게시물은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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