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6. 10:00
다사로운 봄날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가
꼬옥 팔짱을 끼고
아장아장 걸어간다
광화문글판이 2023년 봄을 맞아 김선태 시인의 <단짝>으로 새 옷을 입었습니다.
오늘은 따스한 봄바람 같은 시구로 광화문 광장을 지나는 시민들의 마음에 꽃잎을 수놓은 주인공, 김선태 시인을 직접 만나봅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핵심 체크
✅ 2023 광화문글판 봄편: 김선태 <단짝> 中
✅ 울림 있는 시가 가진 치유의 힘
✅ 세대와 이념 차이를 넘어 함께 걷기를 희망
김선태 시인이 말하는 광화문글판과 <단짝>
Q. 2023 광화문글판 봄편에 선생님 작품이 올랐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김선태 시인: 참으로 뜻밖의 일이어서 한편으론 놀랍고, 또 한편으론 영광스럽습니다. 주변으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껏 광화문글판에 작품이 올랐던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단한 분들이 많은데, 저 같은 변방 시인의 글도 광화문글판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 두 딸이 서울에 살고 있어서 광화문글판 사진을 찍어 보낸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 글이 오른 걸 보고 “대박!”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광화문글판 덕분에 딸들에게 시인으로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Q. <단짝>은 어떤 시인가요?
김선태 시인: 최근 발간한 저의 시집 『짧다』에 실린 시 중 하나입니다.
아시다시피 ‘단짝’은 가장 가까운 친구를 뜻합니다. 이 시에선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를 단짝으로 내세웠는데요. 아직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손자와 늙을수록 살아온 기억을 털어내는 할아버지는 천진무구하다는 점에서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더욱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이 둘이 서로의 손을 꼭 쥐고 걸어간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말하자면 자연의 섭리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세대를 돌아 만난 생명의, 순진무구의 시작과 끝인 단짝의 이야기로요.
요즘은 대가족이 사라지며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다니는 모습을 찾아보기 조금 힘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작은 추억이라도 꺼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 상대는 꼭 할아버지와 손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할머니와 손녀, 어머니와 아버지, 친구, 연인, 형제자매 등 모두가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Q. <단짝> 시로 인해 독자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고요?
김선태 시인: 저한테 손자가 몇이나 되냐, 몇 살이냐 묻는 독자가 많았어요. 전 아직 손자가 없는데 말이죠. (웃음) 많은 독자분들이 시인과 작품의 화자를 동일시하는 것 같아요.
물론, 시에 ‘내’이야기를 담는 것은 중요합니다. 저는 시를 ‘자기 보여주기’이자 ‘나’를 통해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분들도 그런 관점으로 시를 보기 때문에 시적 화자가 곧 시인이라고 보는 경우가 생기는 거겠죠. 하지만 제가 쓰는 모든 시가 저의 그 자체가 아닌, 경험과 생각을 빗댄 은유이니 오해 말아주세요.
Q. 그렇다면 선생님의 실제 ‘단짝’은 누구인가요?
김선태 시인: 저는 ‘단짝’이라고 하면 어린 시절 이웃집에 살았던 동갑내기 동무가 떠오릅니다. 아주 순박하고 힘이 셌는데,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죠.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해 쓸 수 있는 건 자기 이름과 제 이름밖에 없었어요. 제 이름이 ‘선태’이고 그는 ‘선택’이어서 자신의 이름을 쓰기 전에 제 이름이 먼저 써지기 때문이었죠. 그런 그가 일만 죽어라 하다가 장가도 못 가고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잊히지 않는 제 단짝인가 봅니다.
Q. 시인의 시선으로 본 광화문글판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합니다.
김선태 시인: <단짝>이 실린 시집 『짧다』는 짧은 시 66편만을 묶었어요. 지나치게 길고 난해하여 독자들과 소통 부재로 치닫는 시들이 종종 있는데요. 그런 현실이 안타까워 압축적이고 강렬한 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쩌면 전략적으로 펴낸 것입니다. 시에 대한 본래의 진정성과 위의도 되찾고, 바쁘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시를 잃지 말고 살아가자는 의도도 들어 있지요.
같은 차원에서 광화문글판은 참 유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살아가기 바빠 시나 책을 잘 읽지 않게 되는 시대입니다. 다들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럴 때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상징적인 장소 광화문 광장에 좋은 시, 좋은 글을 걸어놓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위안과 힐링이 된다고 봅니다. 그것도 길고 복잡한 글이 아닌, 짧지만 울림이 큰 생명의 글을 선보인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죠.
최근 광화문글판과 비슷한 글판들이 전국에 생겨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를 쓰는 자의 입장에서 아주 반가웠어요. 더욱 많은 곳에서 좋은 글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선생님만의 시 창작의 원천이 있다면?
김선태 시인: 제 시의 원천은 ‘결핍’과 ‘상처’입니다. 언뜻 보기와 달리 저는 지금껏 참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 가출하여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살아왔고, 아직도 귀가하지 못한 채, 이제는 할 수도 없게 되었죠. 그렇게 생긴 결핍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위안과 화해의 세계를 모색하는 시를 쓰고자 하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남도의 자연과 문화원형에 대한 관심입니다. 지역문학의 변별력이 살아 있어야 한국문학도 건강성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Q. 선생님 시 중 봄에 어울리는 또 다른 시를 추천해 주신다면?
김선태 시인: <햇살 택배>라는 시를 추천드리고 싶네요. 봄을 노래한 짧은 시인데요. 겨우내 어둡고 침침했던 지하 단칸방 창문으로 스며드는 봄 햇살을 자연이 주는 선물 택배로 인식하고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시란,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안과 감동이어야 합니다. 그 이유에서 <햇살 택배>는 제 시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죠.
Q. 지난 광화문글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판은 무엇인가요?
김선태 시인: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글판이지요.
전문이 다섯 줄 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시이지만, 그 쉽고 간결한 시구가 오히려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갔던 것 같아요. 독자가 없으면 문학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읽고, 공감하고, 감동을 전하며 그것이 다시 저자에게로 돌아와 서로 치유를 나누는, 세상을 치유하는 소통이 이뤄져야 하죠.
Q. 새로운 시작, 봄을 맞이하는 시민들에게 전하는 한 말씀 부탁드려요.
김선태 시인: 심사위원들이 광화문글판에 저의 시 <단짝>을 왜 선정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광화문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여러 집회도 열리는 곳입니다. 갈등과 화해가 공존하는 곳이지요. 저는 이곳에 모인 시민들이 저의 시를 보고 세대와 이념의 차이를 넘어 함께 손잡고 걸어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광화문글판에 그려진 그림처럼 함께 걸어간 발걸음에 꽃이 피기를.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서로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3 광화문글판 봄편은 김선태 시인의 <단짝>에서 발췌한 문안으로 코로나와 경기침체로 움츠러들었던 지난 추운 날들을 따스이 녹이고자 합니다. 생명력이 살아 움트는 봄, 새 희망에 대한 기대를 담아 서툴지라도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떼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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