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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Beasts of the Southern Wild>(2012) – 가라, 소녀야.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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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30. 15:09

ㅣ비스트ㅣ

2013년 1월, 미국 영화계에 하나의 이변이라 불러도 좋을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갓 서른을 넘긴 벤 자이틀린(Behn Zeitlin)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비스트 Beasts of the Southern Wild>(2012) 가 제85회 아카데미상의 4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된 것이죠.

최종 수상엔 실패했지만, 무명 신인 감독의 작은 영화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아카데미상의 주요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커다란 화제를 모은 비스트. 어떤 작품인지 한 번 살펴볼까요?


 <비스트>(2012) - 이변, 새로운 희망의 등장

이 영화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주인공 허시퍼피(Hushpuppy) 역의 쿠벤자네 월리스(Quvenzhané Wallis)입니다. 영화 촬영 당시 실제로 만 여섯 살이었다고 하네요.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던 이 소녀는 <비스트>로 역대 최연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어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을 만큼 깊고 섬세한 연기를 보여 줍니다. 벌써 유명 뮤지컬 <애니 Annie> 리메이크의 차기 주인공으로 발탁됐다니 할리우드에서도 범상찮은 연기력을 눈 여겨 본 모양이죠? 아빠 윙크(Wink) 역의 드와이트 헨리(Dwight Henry) 역시 연기 경험이 전무했다고 하구요.

 


올해 4월 타계한 미국의 대표적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도 생전에 이 영화에 대해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이 만든, 독창성과 천재성으로 빛나는 기적 같은 영화가 느닷없이 등장하곤 한다. <비스트>는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이다."

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칸느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AFI 어워드 대상 등을 수상했고, 시카고, LA, 뉴욕, 워싱턴, 런던, 토론토 등 영미권 각지의 영화비평가협회가 선정하는 상들을 휩쓸다시피 했는데요. 제작비 180만 달러, 한화 약 20억 원으로 미국 기준으로 보면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가 이토록 열광적 지지를 받은 것도 전례가 드문 일입니다.


 <비스트>(2012) - 욕조섬(Bathtub)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미국 남부 상당수가 물에 잠겨 버린 세상.

마른 땅(Dry Side)에 사는 사람들은 물이 무서운 나머지 높다란 둑을 쌓아 올렸고, 바깥에 남기를 택한 사람들은 지도 위 한 점으로 남은 욕조섬(Bathtub)에 모여 거주하고 있습니다.  

여섯 살 소녀 허쉬퍼피 역시 이 욕조섬에서 아빠와 함께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아빠 말에 의하면 욕조섬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세상 그 어디보다 축제가 많은 곳이라고 하는데요. 욕조섬 사람들은 마른 땅에 사는 사람들은 결코 가지지 못한 것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죠.

그러나 그것은 소외감과 절망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시각각 차오르는 물의 위협 속에서 이렇다 할 대책 없이 가난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이 근심을 잊기 위해 달리 무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욕조섬 주민들이 탐닉하는 축제란 실상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일종의 디오니소스적 의식(儀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영화의 타이틀이 오르기 직전 등장하는 욕조섬의 축제는 그야말로 숨 막히게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하기도 합니다. 이 장면은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의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낙심과 고뇌에 빠진 주인공에게 부지불식간 찾아오는 어떤 마법 같은 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영화에는 이런 황홀한 순간들이 여러 차례 등장하기도 하죠.


 <비스트>(2012) - 폭풍과 함께 깨어난 괴물

어느 날 말없이 사라졌다가 환자복을 걸친 채 다시 나타난 아빠. 매사 퉁명스러운 아빠일망정 애를 태웠던 허시퍼피는 말다툼 끝에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는 말과 함께 그의 가슴을 내리칩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아빠가 쓰러지고 폭풍이 몰려와요.

아니, 정확히는 천둥소리와 함께 남극의 빙하에 갇혀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죠. 그것은 선사시대 동굴벽화에나 등장할 법한 괴물 오록스(Aurochs)였습니다. 이 괴물이 허시퍼피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 또는 욕조섬의 무녀 배쓰시바(Bathsheeba)의 말대로 우주의 질서 일부가 무너지면서 강림한 자연의 분노인지는 알 수 없어요. 어쨌든 폭풍의 상륙과 함께 오록스도 육지에 발을 내딛습니다. 

막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욕조섬은 이번에도 살아나면서 다행히 허시퍼피와 아빠는 폭풍을 견뎌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떠나긴 했지만요. 아빠는 허시퍼피가 혼자 남게 될 때를 대비해 물고기 잡는 법도 가르치고, 엄마와 만나 허시퍼피를 갖게 된 얘기도 들려줍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 욕조섬 가장 높은 곳에 캠프를 짓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차오른 소금물로 인해 가축과 식물이 죽어가고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 닥칩니다. 아빠와 동료들은 소금물을 가두고 있는 둑을 터뜨리기 위해 사제폭탄을 만들죠. 하지만 배쓰시바는 둑을 건드리면 마른 땅 사람들이 욕조섬을 그냥 놔두지 않을 거라며 극구 반대해요. 옥신각신하는 사이 손에 잡힌 뇌관을 당기고 마는 허시퍼피.

굉음과 함께 둑이 폭발하고 소금물에 잠겼던 마을과 진 땅이 드러납니다. 겨우 되찾은 집으로 돌아간 부녀는 거칠지만 애틋한 방법으로 서로의 정을 나눠요. 아빠의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어린 허시퍼피도 눈치채고 있었을텐데요. 어떤 일이 있어도 울지 말라고 다짐하는 아빠의 곁에 누워 잠을 청하는 허시퍼피. 그 순간에도 오록스들은 어디론가 계속 이동하고 있습니다.


 <비스트>(2012) - 탈출과 대면

배쓰시바의 경고대로 마른 땅에서 파견한 강제철거반이 들이닥치고 욕조섬 주민들은 모두 난민 캠프에 수용되고 맙니다. 하지만 야생에서 자라온 욕조섬 사람들은 집단생활에 순응하지 않고 떼를 지어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 순간, 수술을 받고 쇠약해진 아빠는 허시퍼피만을 내보내려 합니다. 더 이상 딸을 돌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만류를 뿌리치고 돌아온 허시퍼피에게 아빠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아빠는 죽어. 네 아빠도 마찬가지고. 내가 죽는 걸 네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딸의 애원에 못 이겨 결국 함께 탈출하는 아빠.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입니다. 아빠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친구들과 함께 무작정 물에 뛰어들어 지나가는 배를 얻어 탄 허시퍼피는 엄마를 찾는다고 말하죠.

선장이 흔쾌히 데려다 준 곳은 Elysian Field, 즉 낙원이라는 선술집입니다. 이곳에서 허시퍼피는 자신의 엄마로 짐작되는 한 여성을 만나요. 이 여성은 아빠에게 들은 얘기대로 맛이 끝내주는 악어 튀김 요리를 만들어 줍니다. 진짜 엄마인지, 어린 소녀의 바램일 뿐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싸 준 악어튀김 요리를 들고 아빠에게 돌아가는 허시퍼피와 세 명의 친구들. 그들의 모습에 강물을 헤엄치고 평원을 내닫는 오록스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침상에 누운 아빠의 목전에서 끝내 오록스와 대면하게 되는 허시퍼피. 하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록스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이렇게 말하죠. “너희들은 내 친구나 다름없어. 하지만 난 내 것을 돌봐야겠어.” 이 무시무시한 선사시대의 괴물은 그런 허시퍼피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오록스에게 등을 돌리고 아빠에게 다가간 허시퍼피는 악어 튀김 요리를 아빠 입에 넣어 줍니다.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다시 울지 말 것을 다짐하는 아빠. 허시퍼피의 귀에 들리는 아빠의 심장 고동이 점점 약해져 갑니다

아빠의 유언대로 시신을 배에 싣고 불을 붙인 채 띄워 보내는 허시퍼피와 욕조섬 사람들. 아빠의 시신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제 허시퍼피는 욕조섬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선두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이 결말 부분은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 새 본 영화들 가운데 최고로 꼽는 장면입니다.

배경으로 흐르는 트럼펫 위주의 스코어도 참 좋습니다. 감독이 음악에도 직접 참여했던데 다방면에 재주가 많은 사람인 건 분명해 보여요. 개인적으로 잘 아는 영화인 한 분은 죽기 전 이런 영화 한 편 만들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하기도 하더군요.  


 <비스트>(2012) - 후대에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

 

영화 속에서 아빠 윙크는 자신이 죽고 난 후 홀로 거친 세상에 살아남아야 할 허시퍼피에게 끊임없이 강해질 것을 가르치죠. 평소의 호칭조차 녀석(man), 대장(big boss, lady boss) 등 귀여운 딸을 대하는 여느 아빠의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어떻게 하면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는지, 게를 먹을 땐 어떻게 껍질을 깨뜨려야 하는지, 억압과 핍박엔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직접 시범을 보여 주면서 말이죠. 말하자면 내가 죽고 없을 때 후손에게 무엇을 남겨 줄 수 있을까, 즉 나름의 상속 준비 대책인 셈입니다 

보험을 가입하는 주요 목적 중에는 사망 또는 사망에 준하는 중대사유로 인한 사망보험금의 상속도 포함됩니다.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의 경우 가장의 사망으로 지급되는 사망보험금으로 유가족의 생활자금이나 유자녀 양육비 등을 충당할 수 있고, 물려줄 재산이 많은 경우라면 다른 재산의 상속에 필요한 자금으로 이용 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상속재산의 상당수가 부동산이라면 납부 기한 내에 부동산을 처분해 상속세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은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피보험자 사망을 사유로 하는 사망보험금은 민법상으로는 상속인 고유의 재산으로 분류돼 상속재산으로 보지 않는 반면, 세법상으로는 보험료 납부 내역을 검토해 상속인, 즉 수익자가 부담한 보험료의 비율만큼을 제외한 보험금은 모두 상속(증여)세 과세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상속 시 절세를 위해서는 보험료 납부자나 수익자를 설정할 때 대상과 시기를 면밀히 따져 보실 필요가 있다는 점 알아 두시면 좋겠네요.

이상에서 소개한 대로 <비스트>는 한 편의 우화 같은 영화예요. ‘어리지만 용감한 소녀가 부모를 잃고 역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홀로 서게 된다.’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러 상징과 은유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상당히 폭넓은 독해가 가능한 작품입니다. 괴물 등 판타지적 설정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화면은 오히려 거칠고 투박한 다큐멘터리의 그것과도 닮았고, 섣부른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거나 과장된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수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의 열광에 가까운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2월 국내 개봉 땐 단 열흘 상영에 그치고 말아서 아쉬웠지만, 현재는 다행히 포털 사이트의 스토어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관람할 수 있으니까 직접 해답을 찾아 보시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다음에 소개해 드릴 영화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는 국가재정과 복지정책, 의료보험 등을 다룬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 Sicko>(2007)입니다.  다시 뵐 때까지 가꿈사 가족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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