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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여성 Best와 First를 만나다 -FP출신 교보생명 첫 여성임원 황미영 상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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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7. 19:00

l 경력단절여성ㅣ 

 

 

  

 

 

 

학창시절 One of the best라는 문구를 보면서 'Best는 하나뿐이어야지 어떻게 Best 중의 하나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 하며 의문을 품곤 했는데요, 하지만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니, 경제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자기 영역의 one of the best였어요.

 

이러한 생각이 나중에는 'Best보다 더욱 가치 있는 것은 first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동시에 best를 넘어 First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다 경력단절주부에서 FP로, FP에서 다시 교보생명 임원이 된 황미영 상무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교보생명이 ‘2013 소비자대상’을 단독 수상하던 바로 그날! 황미영 상무가 소비자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교보생명 소비자 보호 사례 발표를 했는데요, 우리 나라 최고의 전문가들 앞에서 강의를 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부터 그녀의 삶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황미영 CCO(최고고객책임자, Chief Customer Officer)는 교보생명의 제1호 FP출신 여성상무입니다. 결혼과 함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10년만인 32살에 FP를 도전하신 분이죠. 그 이후, FP소장 - FP지점장 - FP지원단장을 거쳐 현재의 자리에까지 오르신 분이랍니다. 무엇보다 일반 사원이 아닌, FP(재무설계사)에서 여성 상무 1호가 되었다는 점은 대한민국 모두가 주목할만한 부분일 거예요. 

 


황미영 상무님은 현재 3개팀의 담당임원으로서 서비스회복센터장 겸 CCO 라는 직함을 맡고 계신데요, 고객의 소리를 경청하고, 고객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회사의 각종 제도나 프로세스를 고객 관점으로 재조명해 고객만족경영에 이바지하고 계시답니다. 사랑, 지혜, 도덕성이 기본인 생명보험에서 선량한 고객을 지키기 위한 업무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구요. 

 


경력단절여성에서 다시 FP가 되기까지

 

 

 

 

1980년대 초에는 여성이 결혼을 하거나 나이가 서른이 되면 대부분 퇴사를 했었는데요, 황미영 상무님 역시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렇게 아이 셋을 둔 그녀가 다시 일터로 돌아오기까지는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당시FP지원동기를 물어보니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할 수 있어요”라며, 나이차가 있는 남편 덕분(?)에 남편의 경제활동 기간을 고려해보니 향후 아이들의 대학학자금 마련이 고민이 돼 직장을 구하게 됐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1990년대 당시에 주부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는데요, 고심 끝에 FP job을 선택하게 됐다고 해요.

 

수많은 영업직 중 왜 FP를 선택하셨냐는 질문에 그녀는 당당하게 대답했어요.

 

“화장품은 할인매장에 가면 싸게 살 수 있고,

도서는 청계천 9가 도서매장에 가면 싸게 살수 있어요.

하지만 고객의 꿈을 지켜주면서 내가 돈을 버는 직업,

그것은 FP 밖에 없어요.”

 


FP란 직업이 두렵지 않았었냐고 묻자 그녀는 “누구나 온전히 적성에 맞는 직업은 없어요.”라고 대답하시면서, “직업에 본인의 적성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공룡처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화석이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라는 대답에서 고수의 포스가 느껴졌답니다.

 


황미영 상무님은 “잘 알면 두렵지 않다”는 신념으로 신인시절 약관, 상품원론, 보험업법 등 보험의 기본이론을 탄탄하게 익혔다고 해요. 32살이라는 나이도 무언가를 새로 배우기엔 부담 없는 나이었고요. 그래서 다시 일하기를 원하는 주부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셨답니다.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을 두고 일을 시작하면서 걱정이 많았다는 황미영 상무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반려동물’이라는 대답을 찾았다고 해요. 강아지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목욕시키기와 밥 주기를 전적으로 일임해 책임감을 키울 수 있도록 한 것이 효과가 컸다고 해요.

 

그리고 또 하나의 원칙은 주말에는 가족들과 꼭 붙어있기!

 

주말에는 오롯이 가족에게만 집중했고, 양육의 핵심인 ‘양보다 질’을 몸소 실천한 끝에 세 아이 모두 심성 바른 아이로 자라났다고 해요. ^^

 

황 상무님은 “오랜 시간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애정을 듬뿍 주는 것이 중요해요. 쉽게 워킹맘이라는 이름을 포기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어떻게 가지치기를 하고 보듬어 주느냐에 따라 어떤 나무로 성장하는지 결정돼요. 누구라도 일하면서 건강하고 올바르게 아이를 키울 수 있어요. ”라고 말씀하셨어요.

 


FP에서 교보생명 상무가 되기까지 – 청와대 출입을 하다! 

 

 

 

1992년 당시 교보생명에서는 <지구촌 책정보지>를 발간하여 고객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보내곤 했는데요, 청와대에도 <지구촌 책정보지>를 보내야 했어요. 때마침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웠던 종로영업국에서 한 명을 선발해 직접 보내기로 했고, 그녀는 그렇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답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을 출입하며 춘추관에서 장수연금보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한번 보고 마는 FP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고객과의 거래가 아닌 관계 형성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고객과의 만남을 인연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지혜덕분에 어려운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거절하는 고객에게는 어떻게 계약을 체결했냐고 묻자, 고객을 만날 때는 꼭 3장 이상의 가입설계서를 가져갔다고 대답했답니다.

 

35세 고객이라면 5년 전인 30세와 5년 후인 40세의 가입 설계서를 뽑아 ‘지금 가입하신다면, 5년 전에 가입하셨다면, 5년 후에 가입하신다면’의 세 가지 경우를 제시하면서 고객들에게 시간을 선물했다고 해요.

 

그리고 슬럼프에 빠질 때면 또래 동료들과 상의하기 보다는 실력이 좋은 선배 또는, 교육담당자와 상의를 하거나 실력이 좋은 선배를 관찰하며 그대로 따라 했다고 말씀하셨죠.

 

그런 노력 끝에 1992년 7월 FP로 위촉 된지 6개월 만에 FP소장이 되었고, 94년 4월에 지점장으로 부임하게 됐답니다. 2년만이었죠. 그때도 두려움보다는 의욕과 열정이 그녀를 감쌌다고 해요. 여성이 지점장으로 성공하려면 영업현장 경험은 기본이고, 수수료 계산이나 유지율 관리 같은 사무능력이 있어야 했는데, 그 두 가지 다 겸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엇보다 여성이다 보니 섬세하고 여성의 심리를 잘 읽을 수 있어 지점 운영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지점장들이 앉아서 설계사들이 해 오는 계약을 받는 시절이였지만 황미영 상무는 설계사와 함께 움직이면서 희로애락을 공유 한 부분이 성공의 밑거름이 아니었나 이야기 하더군요

 

이후 첫 여성TM센터장, 첫 여성 도입양성센터팀장, 첫 여성FP지원단장, 첫 여성 자랑스러운 교보인상 수상자 등 화려한 타이틀을 거머쥐며 수많은 1호의 주인공이 되었답니다. 모든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기에 가능했고요.

 

이렇게 1호 타이틀의 길을 개척하느라 남들보다 고생도 많았을 그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양성담당 대리 시절이라고 말씀 하셨는데요, 이 일은 이전처럼 FP들을 교육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사무업무, 지점장 응대까지 함께 해야 했다고 해요.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울면서 퇴근한 적도 많았지만 어느 날 동료로부터 “당신이 잘 함으로 인해 당신 후배들이 그 자리에 갈 거예요.”라는 말을 듣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해요.

 

'내가 잘해야만 길이 열리는구나.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데 누구 한 사람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면 나로 인해 힘이 덜 들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그래 맞아.’

 

그렇게 생각하고 지원단에 돌아와서 상대방의 요구가 무엇인지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 후로 어느 자리에 가든, ‘상사는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잘해야 하고, 또 내가 잘해야 후배 여성들이 올라올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해요.

 

그렇지만 왜 위기가 없었을까요? 아들이 학교를 안 가는 사건이 바로 위기의 시기였다고 말하는 그녀. 엄마가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하고 아들과 5시간을 이야기했던 적도 있다고 해요. 또, 늦은 귀가로 인해 남편과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기도 했다네요. 하지만 막상 “그만두겠다.”고 말하니 자녀들과 남편이 오히려 반대를 했다고 해요. "누구에게나 고비는 찾아오지만, 그것을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이죠."라는 황 상무님 말씀 덕분에 많은 여성분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더욱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꿈을 묻자 그녀는 “영업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는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되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답니다.

 

 


여성1호에서 나아가 인생의 멘토가 되고 싶다! -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족집게 강의 

 

 


Q. 경력단절여성들이 일터로 돌아오는데 있어서 경력단절은 큰 장벽인가요?


장벽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거예요. 내 것을 꽉 쥐고 안 놓기 때문이죠. 내가 과거에 했던 것, 잘 한 것만을 생각하면서 거기에 맞는 직업을 찾아 근무하면 정말 좋겠지만 세상사가 모두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잖아요.

저도 제일 처음 내가 어떻게 보험을 하지 이런 생각을 했으니깐요.

하지만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으로 대하느냐의 차이일거예요.

훗날 내 아이에게 엄마는 낯선 곳에서 과감히 도전하여 이루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하고 생각하면 못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


Q. 경력단절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시기(연령대)를 꼽는다면?


아동의 발달단계를 보면 다섯 살까지 감정과 정서가 형성된다고 보는데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엄마가 데리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사회적으로 보육시스템의 기반이 확대되고 있으므로 다시 일 할 수 있는 시기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Q.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할까요?


2010년 임원보 승진 당시 막내아들이 내가 나온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며 '엄마가 자랑스럽다. 우리 엄마 존경해.'하고 했어요.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80% 정도 잔소리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엄마와 자녀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FP는 독립사업자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을 뿐더러 고객의 재무전문가로서 필요한 금융지식과 경제상식 등을 꾸준히 공부해 스스로 발전할 수 있고 더불어 고객에게 신뢰도 쌓일 수 있어요. 일석이조의 직업이죠!.
 


Q. FP라는 직업을 소개하면?


FP라는 직업이 1992년에는 보험가입을 권유하는 단순한 모집인이었다면, 1998년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부터는 재무설계사로 목적자금, 복리, 단리, 연금 등 종합적인 금융 플래너로 진화했어요. 앞으로는 ‘이동하는 금융회사’가 될 것으로 보는데요, 자신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어 ‘교보생명의 ○○○’ 나아가 ‘○○○의 보험회사’가 되리라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FP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직업이랍니다.

 


Q. 경력단절여성에게 교보생명이란?


교보생명은 정직한 회사, FP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회사, CEO 부터 사원까지 소통이 잘 되는 회사에요. 흔히들 말하는 학력불문, 성별불문, 연령불문으로 본인의 능력만 있으면 발전의 끝과 제한이 없는 회사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회사가 바로 교보생명이 아닐까 싶네요.
 

 

Q. 자라나는 청소년, 전업주부, 경력단절여성, FP, 직장인 각각의 입장에서의 성공 마음가짐을 알려주신다면?


청소년들은 정확한 목표를 세워야 해요. 젊음, 자유로운 시기를 그냥 지내면 어느덧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평범해져 버릴 거예요. 목표를 향해서 아낌없이 나를 투자하고 달릴 수 있는 사람, 남과 다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전업주부는 과연 만족을 할 수 있을 때가 언제일까요? 아이들이 한창 엄마 손을 필요로 할 때는 전업주부로서 행복하겠지만, 아이들이 엄마 손을 떠나고, 남편 역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나면 점점 외로워지고 힘들어지는 것이 전업주부일 거예요.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말고, 무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요. 엄마가 부단히 노력하고 배우려는 자세일 때, 아이들도 이를 보고 배우게 된답니다.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뭔가 하려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될 수 있는 한 내가 즐거운 일을 하면 좋지만,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것만을 찾으려는 자세는 지양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FP는 공부하는 직업이고 또 고객과 함께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사랑, 도덕성, 지혜 배려심, 이런 것들이 성공의 열쇠라고 볼 수 있어요. FP는 스스로와의 싸움이랍니다. “너는 할 수 있어.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해줘야 해요.
직장인들은  ‘내가CEO라면 어떤 사원을 채용할 것인가? 어떤 사원에게 인사고과를 잘 줄 것인가? CEO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한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Q. 화사한 분위기의 인상이신데, 외모 관리의 비법은?

 
하하. 칭찬 감사해요. 스무 살 때부터 기초화장만큼은 꼼꼼히 하고 있어요. ‘꼼꼼히’라는 말이 귀찮아서 포기하지 말고, 씻고 나서 그저 듬뿍 발라주시면 된답니다. 20분도 안 걸려요. 또 일주일에 한 번 TV를 보면서 천 원짜리 마스크 팩에 달걀 노른자를 올려놓는답니다. 
 


Q. 오늘 인터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인간이 공룡과 달리 화석이 되지 않은 것은 변화에 적응했기 때문이에요. 적성에 맞는 직업은 없답니다. 물론 적성에 맞아 즐겁게 일하면 더 좋겠지만, 즐거움은 내가 찾는 것이랍니다. 꿈 꾸고 세운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해 나아갈 때 진정한 즐거움은 저절로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꿈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시고 성공하고 싶거든 모두들 꿈을 가지세요 ~~~~

 

 

 <2010년 4월 7일 임원보 승진 당시>

 

 

She is…
 

1961년생

광주여상 졸업

1979년 12월 대한교육보험 입사

1981년 21세 결혼으로 퇴사

1992년 32세 FP로 위촉

1994년 FP지점장 위임

2005년 여성1호 지원단장 위임

2010년 FP출신 여성1호 임원보

2013년 FP출신 여성1호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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