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8. 17:01
안녕하세요, 교보생명 공식블로그 '가족·꿈·사랑'을 찾아주신 여러분~! 프론티어 기자단 6기 김하은입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계절, 여름이 찾아왔어요! 무더운 날씨에 가끔은 작렬하는 태양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천지를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녹음을 덕분에 마음이 절로 누그러지는 그런 계절이 바로 여름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좋은 여름날, 오늘은 여름 특유의 정서를 만끽할 수 있는 서울 나들이 추천 코스를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서울의 여러 명소 중에서도 프론티어 기자는 성북동을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는데요, 여러분도 지금부터 저와 함께 떠나보아요~!
성북동의 서울 나들이 추천 명소 하나. 길상사
먼저, 처음 소개해드릴 곳은 '길상사'에요. 여러분 모두 백석 시인은 알고 계시죠? 그렇다면 혹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알고 계신가요? 이 시에서 등장하는 나타샤가 바로 길상사의 공덕주 길상화(본명 김영한)라고 해요. 백석이 26세일 때 그는 기생이었던 김영한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고 해요. 하지만 둘은 백석 집안의 격렬한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한 채 백석은 만주로, 김영한은 서울에 남아 서로를 그리워했다고 해요. 서울에 남은 김영한은 성북동 골짜기에 땅을 사서 요정을 차렸고 그곳은 후에 3공화국 때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중의 하나인 대원각이 되었다고 해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그녀는 백석과의 못다 이룬 사랑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다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이 대원각은 ‘백석의 시 한 편만 못하다’라는 말과 함께 법정스님께 시주했다고 해요. 대원각은 당시 시가로 1천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법정스님은 그녀의 시주를 번번이 거절하다가 10년 만에 그녀의 뜻을 받아들여 1997년 길상사라는 절로 거듭나게 되었답니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새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어요.
이번 성북동 투어에서 프론티어 기자는 첫 번째로 길상사를 방문했답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 덕분에 땀이 절로 흘러나왔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을 찾아간다는 생각에 부푼 마음을 안고 걷다 보니 드디어 눈 앞에 길상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참고로 길상사에 들어가실 때, 만약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고 있다면 입구에 준비되어 있는 랩스커트를 허리에 두르고 들어가야 해요.
길상사는 1997년에 세워져 그 역사는 짧지만 사찰체험, 불도체험, 수련회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일반 대중들을 불교와 가깝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또, 이곳에서는 매달 1회씩 '맑고 향기롭게'라는 제목으로 선 수련회를 열고 있는데 일반인들도 8시간 이상 참선을 하며 템플 스테이를 해볼 수 있다고 해요. 프론티어 기자도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서 템플 스테이를 헤보고 싶네요. ^^
길상사는 건물과 정원이 매우 아름답고 우아한데요, 비단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맑은 자연을 벗삼아 고요한 경내를 걷다 보면 마음이 절로 경건해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절 구석구석을 둘러보던 프론티어 기자는 근처에 계신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진을 찍자고 말씀 드리면 실례겠지?'라는 생각에 지레 포기하려 했어요. 그런데 이때 "이리와, 할아버지랑 같이 사진 찍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바로 길상사의 한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었어요. 너무도 좋아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날 함께 사진을 찍은 스님이 길상사의 주지스님인 덕운스님이셨지 뭐예요! 다정한 주지 스님 덕분에 이날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답니다. ^^
성북동의 서울 나들이 추천 명소 둘. 간송미술관
프론티어 기자가 다음으로 걸음을 옮긴 곳은 간송미술관이에요. 간송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국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술관' 중 하나이기도 하답니다. 개인이 만든 미술관이 어떻게 이리 많은 국보를 지닐 수 있었느냐고요? 그 속에는 우리의 전통 문화가 파괴되고 유출되었던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의 혼과 얼이 담긴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해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웅지를 실천하신 선각자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노력이 숨어 있답니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저는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이 분이 안 계셨다면 빼앗긴 우리의 미술품들을 이 땅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혼란스러운 시대에, 간송은 23세의 나이에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 받아 조선 최고의 부자 중 하나가 되었지만 민족을 생각하고 문화를 수호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미술품과 고서적을 사들이려 노력하셨어요. 하나의 일화가 있다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 없애버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어요.
그 때 간송이 위험을 무릅쓰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 백지를 내밀며 원하는 만큼 돈을 준다고 하셨어요. 해례본의 주인은 천 원을 제시했는데 이는 당시 아무리 값비싼 서책이라도 백 원을 넘지 않는 것이 상례인 것에 비하면 큰 돈이었답니다. 하지만 간송은 그 천 원에 만 원을 더 보태어 주었답니다. 당시 만 원은 기와집 10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고 해요. 이처럼 간송은 그 물건의 가치를 인정하고 제 값에 사들여 모았어요.
이후 간송은 1933년부터 지금 서울 성북동의 대규모 부지를 남모르게 구입하여 미술관 건립을 기획했답니다. 이는 문화재와 고미술을 수집·보호하는 목적 외에도 우리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였답니다. 1938년 준공된 이곳은 오늘날의 간송미술관이 되었죠.
<훈민정음 해례본과 단오풍정 (출처 :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이 수집한 유물은 종류도 다양했는데요, 이곳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외에도 11점의 국보와 10점의 국가 보물, 4점의 서울시 유형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다수의 유물이 추가로 국보와 보물의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윤복의 '미인도'와 '단오풍정' 또한 간송미술관에서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아쉽게도 간송미술관은 일 년에 2번 그것도 2주정도 동안만 전시를 한다고 해요. 그 덕에 전시 기간 동안에는 간송미술관 앞에 나있는 길을 따라 쭈욱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곤 한답니다. 프론티어 또한 전시기간은 아니라 간송미술관의 대문만 둘러보았지만, 의미가 있는 곳인 만큼 여러분께 꼭 소개해드리고 싶었어요. 간송미술관은 매년 5월과 10월에만 일반에 개방되는데요, 보관하고 있는 유물이 너무 많아 전시마다 주제를 달리 하여 선보인다고 해요. 다음 전시 때 프론티어 기자단도 방문해 꼭 관람해야겠어요!
참고로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파크 디자인박물관 2층에서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단오풍정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몇몇 작품들을 모은 '간송문화전'이 2015년 7월2일부터 9월28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그곳을 먼저 방문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성북동의 서울 나들이 추천 명소 셋. 심우장
이제 저희는 심우장을 향해 갈 거예요. 주택 사이로 나 있는 조그만 골목길을 조금만 오르다 보면 금세 심우장을 볼 수 있는데요, 골목으로 들어가기 전 한용운 시인 동상 옆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답니다!
아 참, 이곳의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라고 하니 참고해주세요~!
심우장은 1985년 7월 5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 7호로 지정된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지은 집이에요. '나룻배와 행인', '님의 침묵' 등의 유명한 시를 쓰신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 승려였던 한용운은 1933년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으로 이곳을 지으셨어요. 그 이유는 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어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에 산비탈이 있는 쪽(북향)으로 집을 지으셨다고 해요. 이렇게 평생 일제에 저항 하는 삶을 살아오셨지만, 한용운 선생님은 아쉽게도 결국 우리나라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에 이곳에서 생애를 마치셨다고 해요.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프론티어 기자는 신발을 벗고 직접 집에 들어가 보았는데요, 조그마한 방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남긴 글씨와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전시되어 있었답니다. 이곳에 서 있으니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애국심과 뜨거운 뭔가가 울컥 솟았답니다. 독립운동에 힘써주신 모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성북동의 서울 나들이 추천 명소 넷. 북악산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북악산이었어요. 저는 친구와 산책을 즐길 겸 한양 도성의 성곽길을 따라 북악산에 올랐답니다.
한 시간쯤 오르니 해도 뉘엿뉘엿 지려고 하고, 길을 잘못 들었는지 오르기 힘든 길이 나와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하산하려다 보니 웬걸?! 등지고 오르느라 볼 수 없었던 성북동의 경치가 성곽길과 함께 한 눈에 보였답니다. 정말 아름답죠? ^^
사실 성북동 투어를 나섰을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별 생각 없이 길을 나섰는데요, 다 마치고 나니 여러 가지 볼 거리는 물론 너무도 많은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어요. 여러분도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는 성북동을 거닐며 그 정취를 직접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돌아오는 주말,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성북동의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거닐며 힐링 해보시기 바라요.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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