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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대중음악사. 우리의 삶과 함께한 추억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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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4. 11:24

 





 

삶의 매 순간 우리와 함께한 ‘생활음악’ 대중가요. 대중가요는 우리의 삶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며 우리 대중들에게 큰 위안을 주곤 했어요. 오늘은 해방 이후 대중가요의 시대별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고, 각 시대별 대표적인 대중가요의 특징과 의미, 애창된 대중가요의 인기 이유와 그 시대정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다시 강요된 분단으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한국 대중의 정서는 분단 시대를 살게 된 절망과 독립국가로서 가지는 희망이 교차하는 혼돈 속에 있었어요. <가거라 삼팔선>의 애끓는 망향 의식과 <럭키 서울>의 명랑한 낙관론은 그 혼돈의 양 극단을 반영한답니다. 악극단과 유성기, 이동 천막극장으로 대표되는 그 시절 대중음악의 생산력과 지금의 그것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난 70년간 대중음악의 정서는 그 양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흘러왔어요. 대중음악이 어떤 식으로든 당대의 사회적 상황과 그 속에서의 대중적 삶의 궤적 안에 있는 것이라면, 결국 지난 세월 우리의 삶은 희망과 절망이 끊임없이 부딪히는 혼돈 속에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에요.




1950’s 서구화 욕망과 망향의 정서



 

<아리조나 카우보이>와 <꿈에 본 내 고향>



한국전쟁과 함께 시작된 1950년대, 대중음악에서 드러나는 가장 특징적인 정서는 서구적 삶에 대한동경이랍니다. <럭키 모닝>·<샌프란시스코>·<아리조나 카우보이> 등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는 이국 취향은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음악적으로도 다양한 형식의 서구적 양식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죠. <대전 부르스>·<닐리리 맘보>·<비의 탱고> 등 많은 노래들이 서양 대중음악의 양식을 적극 차용하며 서구화의 욕망을 드러냈답니다. 물론 일제강점기의 <타향살이>나 <나그네 설움> 같은 노래에서 드러난 망향의 정서는 <삼팔선의 봄>·<꿈에 본 내 고향> 등 분단으로 인한 고향 상실을 담은 노래들로 면면히 이어졌어요.




1960’s 트로트와 팝의 공존



 

<하숙생>과 <동백 아가씨>



1960년대는 급속한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의 삶과 가치관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에요. TV 방송이 시작되고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본격화되던 이때, 대중음악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주류가 형성되었어요. 일제강점기 이래 계속되어 온 트로트가 하나의 주류라면, 다른 하나는 미8군 무대 출신 연예인들에 의해 주도된 팝 스타일의 가요들이랍니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이농 현상이 시작되던 이때,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로 대변되는 트로트 가요는 주로 농촌적이고 서민적인 정서를, 최희준의 <하숙생>으로 대표되는 팝 스타일 가요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정서를 대변했어요. 망향의 정서는 산업화 시대를 맞아 <고향무정> 등에서 보듯 이농으로 인한 탈향 정서로 이어졌답니다




1970’s 청년문화의 확산과 금지곡



 

신중현과 엽전들 1집 <미인>과 김민기 <아침이슬>



1970년대에는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세대가 새로운 소비자로 등장했고, 이에 따라 통기타 포크 음악과 록 밴드 음악이 청년층의 지지를 얻으며 새롭게 선보였어요. 대학생들의 청년문화는 기성 사회와는 다른 순수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담은 것이었죠. 하지만 개발 독재의 막강한 정치 논리는 이런 정도의 자유주의도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대중의 가장 일상적인 삶의 양식과 의식, 정서마저 철저히 재단하고 통제하려 했답니다. 그 와중에 숱한 금지곡들이 양산되었어요. 송창식의 <왜 불러>, 이장희의 <그건 너>, 김민기의 <아침이슬>, 신중현의 <미인> 등 당대 청년층의 의식과 정서를 대변했던 많은 노래들이 금지되어야 했죠.




1980’s 가요의 다양화와 민중가요 유통



<조용필 1집>



1980년대는 조용필이라는 슈퍼스타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어요. 그는 동요에서 트로트·팝·록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에서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전 세대의 사랑을 받는 국민가수로 대접받았고 처음으로 오빠 부대를 끌고 다니는 가수가 됐답니다. 거품 경제의 성장 속에서 10대 청소년들이 새로운 소비자로 등장하고 그에 따라 댄스가수, 비디오 가수가 등장해 인기를 모은 것은 8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랍니다. 이 시대 대중음악은 성인 취향의 트로트, 10대 취향의 댄스음악, 그리고 발라드로 시장이 나뉘는 모습을 보였어요. 1980년대는 극심한 이념적 갈등으로 점철되었던 시대에요. 억압적인 검열을 거부하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통되는 민중가요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리기도 했답니다.




1990’s 새로운 세대의 감성 소비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열린 1990년대는 10대 청소년 세대가 가장 중요한 대중음악 소비자로 등장한 시기랍니다. 1992년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그때까지의 음악적 문법을 완전히 허물면서 전혀 새로운 시대를 열었어요10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강렬한 사운드와 리듬, 랩과 댄스에 열광했고, 이 새로운 세대가 보여준 문화적 감성은 신세대문화 논란을 불러일으켰죠. 이후 19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대중음악 판은 랩과 댄스로 무장한 신세대 아이돌 그룹의 경연장으로 변해갔어요.




2000’s 케이팝의 등장과 세대 별거



인기 아이돌, <인피니트>



2000년대로 넘어서면서 아이돌 스타를 중심으로 한 대중음악 시장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졌어요. 대형기획사들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아이돌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 미모와 가창력, 댄스 실력을 갖춘 아이돌 그룹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케이팝(K-Pop) 한류를 이끌며 글로벌한 인기를 모으고 있답니다.

아이돌 그룹의 케이팝(K-Pop)에서 노랫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역동적인 리듬과 화려한 댄스, 자극적인 시각적 쾌락이죠. 새로운 시대의 청소년들은 아이돌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기성세대는 노래방에서 과거의 레퍼토리를 틀어놓고 노래 부르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대중음악은 더 이상 고향을 노래하지 않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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