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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만 보지 말아요, 위를 보아요. 광화문글판이 당신을 위로합니다! 광화문글판,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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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7. 19:24

 

 


 


 

2011년 봄편, 이진명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나>

  

 

 

우이동 삼각산 도선사 입구 귀퉁이
뻘건 플라스틱 동이에 몇다발 꽃을 놓고 파는 데가 있다
산 오르려고 배낭에 도시락까지 싸오긴 했지만
오늘은 산도 싫다
예닐곱 시간씩 잘도 걷는 나지만
종점에서 예까지 삼십분을 걸어왔지만
오늘 운동을 됐다 그만두자
산이라고 언제나 산인 것도 아니지
젠장 오늘은 산도 싫구나
산이 날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도선사 한바퀴 돌고 그냥 내려가자
그런 심보로 도선사 한바퀴 돌고 내려왔는데
꽃 파는 데를 막 지나쳤는데
꽃, 꽃이, 꽃이로구나
꽃이란 이름은 얼마나 꽃에 맞는 이름인가
꽃이란 이름 아니면 어떻게 꽃을 꽃이라 부를 수 있었겠는가
별안간 꽃이 사고 싶다
꽃을 안 사면 무엇을 산단 말인가
별안간 꽃이 사고 싶은 것, 그것이 꽃 아니겠는가
몸 돌려 꽃 파는 데로 다시 가
아줌마 아줌마 하며 꽃을 불렀다
흰 소국 노란 소국 자주 소국
흰 소국을 샀다
별 뜻은 없다
흰 소국이 지저분히 널린 집 안을 당겨줄 것 같았달까
집 안은 무슨, 지저분히 널린
엉터리 자기자신이나 좀 당기고 싶었겠지
당기면 무슨, 맘이 맘이 아닌
이즈음의 자신이나 좀 위로코 싶었겠지, 자기 위로
잘났네, 자기 위로, 개살구에 뼈다귀
그리고 위로란 남이 해주는 게 아니냐, 어쨌든
흰색은 모든 색을 살려주는 색이라니까 살아보자고
색을 산 건 아니니까 색 갖고 힘쓰진 말자
그런데, 이 꽃 파는 데는 절 들어갈 대 사갖고 들어가
부처님 앞에 올리라고 꽃 파고 있는 데 아닌가
부처님 앞엔 얼신도 안하고 내려와서
맘 같지도 않은 맘에게 안기려고 꽃을 다 산다고라
웃을 일, 하긴 부처님은 항상 빙그레 웃고 계시더라
부처님, 다 보이 시죠, 꽃 사는 이 미물의 속
그렇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꽃이잖아요
부처님도 예뻐서 늘 무릎 앞에 놓고 계시는 그 꽃이요
헤헤, 오늘은 나한테 그 꽃을 내주었다 생각하세요
맘이 맘이 아닌 중생을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생각하세요
부처님, 나 주신 꽃 들고 내려갑니다.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다니, 덜 덜어진 꼭지여
비리구나 측은쿠나 멀구나

 

이진명,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나>

 

 

2011년 여름편, 정현종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2011년 가을편,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 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 짓지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이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마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마 >

 

2011년 겨울편, 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을 바라본다

 

 

_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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