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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인간의 삶, 스포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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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15. 16:22




사전적 의미로 운동은 ‘사람이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을 말해요. 스포츠에는 참가자의 목적이나 기대되는 성과에 따라서 운동 · 놀이·게임·여가 ·레크리에이션이 포함될 수 있답니다. 그렇기에 운동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하면 스포츠가 돼요. 오늘은 운동하는 인간의 삶을 스포츠와 연계해 인문학적으로 풀어보도록 할게요.






<테오도르 아도르노 (출처 : http://thecharnelhouse.org/)>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과 직업 선수들이 하는 행동은 비슷하지만 다르답니다. 이봉주 선수가 42.195km를 달리는 것은 스포츠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운동이나 레저랍니다. 박지성 선수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은 축구라는 스포츠지만 우리가 동네 운동장에서 꼬마 아이들과 차는 것은 취미이자 운동이죠. 스포츠는 운동이나 레저·취미 생활과 다른 체계적인 시스템과 국제적 규모의 대회를 전제로 하는 하나의 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는 히틀러 지배 하의 독일과 문화산업이 크게 발달한 미국을 관찰하면서 ‘대중에 대한 총체적 기만’이라는 판단을 내렸답니다. 대규모 전쟁을 일으킨 독일뿐만 아니라 망명지 미국에서 발견된 놀라운 상황, 즉 화려한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문화산업이 대중의 현실 인식을 왜곡한다고 본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아도르노는 스포츠에 대해서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답니다. “스포츠에는 단지 폭력을 가하려는 열망만이 아니라 스스로 복종하고 감수하려는 열망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아도르노는 결국 “스포츠는 신체를 기계 자체와 유사하게 만드는 경향을 띤다. 그래서 스포츠는 어디서 조직되든 간에 부자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결론을 맺었어요.






이 고전적인 비판에 대하여 스탠포드대 한스 U. 굼브레히트 교수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어요. 그는 ≪매혹과 열광≫에서 스포츠 선수의 경이로운 육체의 움직임 속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답니다. 이 아름다움은 “생명의 고양”(칸트)과 연결돼요. “일상의 신체 활동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강렬한 체험, 한 개인(선수)이 최고의 신체적·감정적 몰입을 통해 궁극의 희열과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을 우리는 만나는 것”(굼브레히트)이죠.


그러나 보다 깊이 있는 학문적 성찰, 즉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 그 사회적 역할, 나아가 발전적 전망의 가능성까지 살핀 학자들은 1950년대 영국 버밍엄대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한 문화연구자들이랍니다. 리처드 호가트와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거쳐 스튜어트 홀로 이어지는 이들 버밍엄 학파는 스포츠를 포함한 대중문화를 남성주의, 형제애, 하층민의 감정 발현, 지역성과 개인성 등의 개념으로 적극적인 해석을 내렸어요.


같은 맥락에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와 에릭 더닝은 ≪스포츠와 문명화≫에서 스포츠(특히 축구)라는 사회적 행위 안에 더욱더 격렬한 감정 표출이 이뤄지는 행위에 주목한답니다. 그 감정과 행위가 때로는 국가·기업·미디어에 의해 억지로 생산되거나 강제로 차단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열광에는 현대의 억압에 도전하는 다양한 열망이 뒤엉켜 있음을 밝혀낸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몇몇 세부 종목으로 더 들어가보도록 할게요.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이 쓴 ≪축구란 무엇인가≫는 축구의 원리·역사·미학·특징을 묵직한 시선으로 분석한 저작이다. 축구에 대한 역사적·사회적·철학적 이해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어떤 문화적 과정과 그 변천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살피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답니다.


이상의 책들이 학문적인 차원의 성과라면 우루과이의 대표적인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는 축구, 나아가 현대의 스포츠가 얼마나 경이롭고 풍요로운 세계인가를, 흡사 남미 선수들의 신묘한 드리블과 같은 문장으로 보여준답니다. 가난한 삶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얼룩진 권위적 세계에 대한 통렬한 풍자 정신으로 무장한 갈레아노의 이 축구 칼럼집은 ≪수탈된 대지≫·≪불의 추억≫·≪사랑과 전쟁의 낮과 밤≫ 등의 걸작을 써낸 소설가다운 인간적 풍모와 위엄으로 가득 차 있어요.

20세기 초엽에는 남미 축구의 절대 강자였지만 그 이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 한 수 아래로 평가 받는 우루과이의 축구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해요. 다른 나라 아이들과 달리 우루과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조차 ‘고오오오오오올!’ 하고 외치며 태어난다고. 그런 유머의 힘으로 우루과이와 남미의 쓰라린 역사를 통찰하고 그 상처 위에 펼쳐졌던 축구라는 드라마의 의미를 되새겨줬어요.


그리고 닉 혼비의 소설 ≪피버 피치≫가 있는데, 이 작품은 어릴 때부터 잉글랜드의 명문 클럽 아스널의 광팬으로 성장한 소설가 자신의 자전적 기록이랍니다. 이 소설에는 흔히 ‘축구 종가 영국’이라고 불리는 그 나라 하층민들의 힘겨운 시대가 담겨 있어요. 닉 혼비는 ≪피버 피치≫에서 이렇게 쓰고 있어요.

“축구를 보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며, 실제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남의 행운을 축하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운을 자축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열정, 그런 욕망, 그런 순정한 마음이 지금도 전 세계의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답니다. 스포츠가 자칫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비판한 아도르노의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럼에도 스포츠에는 그 이상의 뭉클한 감정, 뜨거운 힘들이 내장되어 있는 것도 사실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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