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5. 16:00
≪정감록≫과 ≪격암유록≫ 등의 숱한 예언서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 전북 무주의 설천면과 무풍면 일대에요. 설천면 대불리 석기봉 자락. 백두대간의 단전쯤 자리에 ‘신선동神仙洞’이 있어요. 전북 무주의 오지마을로 떠나볼까요?
무주군 대불리의 신선동 마을
전북 무주의 대불리 석기봉 자락의 내복동 마을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치닫고 오르는 길 끝. 거기에 신선처럼 마음을 닦으며 사는 이들이 띄엄띄엄 거처를 짓고 산다고 해요. 산촌에서 차 한 대 겨우 지나가는 위태위태한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오르자 계곡을 끼고 거짓말처럼 자그마한 마을이 나타납니다. 이름하여 ‘신불사 마을공동체’에요.
신불사는 절도 아니고 사당도 아니에요. 칠순이 넘은 한산대사란 이가 거기 단군을 모시고 삼십 년째 머물면서 명상과 공부를 하고 있어요. 스물아홉에 출가해 사찰로 들어갔다가 종교보다는 세상 공부 쪽으로 뜻을 세운 그는 청량산에서 토굴생활 10년을 거쳐 30여 년 전에 이곳 심심산골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곤 두문불출의 공부. 공부는 곧 가르침으로 이어졌고, 배움을 따라 이 깊은 산중까지 찾아온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공동체를 이루게 됐어요. 말이 공동체지 모여서 사는 건 아니고, 한산대사가 거저 내놓은 땅에다가 저마다 집을 짓고 제 나름으로 공부하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창밖으로 멀리 덕유산 정상이 건너다 보이는 자리에 세워놓은 신불사의 다실 ‘아름정사’에 들어 한산대사와 마주 앉았습니다. 이야기는 거침없었어요. 그의 풀이에 따르면 지금은 ‘관념의 시대’의 끝자락. 그러니 앞으로 전혀 다른 ‘문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랍니다. 본성의 시대는 ‘몸’으로, 관념의 시대는 ‘머리’로 살았다면 문화의 시대는 ‘가슴’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그러자면 새로운 세상의 틀과 작동원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는 ‘자연의 원리’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해요. 자연의 순환과 흐름 속에서 삶의 법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는 ‘무릇 여행을 한다면 자연도 가슴으로 만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연을 경관 감상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고요함을 좇은 사람들
신불사 일대에 마을공동체를 이룬 이들만 거처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깊은 산중의 맑은 기운이 좋아 들어온 이들도 있어요. 정년퇴직 후 노후를 보내기 위해 찾아든 이들도 있고, 자연 속에서의 삶을 꿈꾸며 집을 짓는 젊은 부부도 있어요.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 깊은 산중으로 불러모으는 것일까. 때 묻지 않은 자연의 맑은 기운일까, 아니면 번잡한 세상 정반대 쪽의 고요함일까.
신불사 마을공동체에서 석기산 쪽의 등산로 초입의 폭포 아래쪽에 ‘선유산방仙遊山房’이란 당호를 내건 집이 한 채 있어요. 젊어서 제법 크게 무대조명 일을 하다가 친구로부터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7년 동안 빚을 갚고 난 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시를 떠나온 이의 거처에요. 그는 스스로 택한 산중의 삶이지만 도피와 이기가 아니라 남들과 나눌 것들을 늘 찾고 있다고 했어요. 가장 궁금했던 건 생계인데요. 그는 “사는 게 참 알고 보면 단순하다”고 말합니다. 산중생활의 생활비는 한 달 30만 원이면 족하다고 해요. 한산대사가 말한 ‘무념의 걸음’이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요. 한산대사가 공부로 깨달았다면, 김씨는 그 이치를 생활과 몸으로 깨달은 건 아닐까요.
무념의 걸음으로 만날 수 있는 숲길
전북 무주에는 한산대사가 말한 ‘무념의 걸음’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어요. 덕유산 서남쪽 자락의 칠연계곡. 계곡은 덕유산 동엽령을 거쳐 향적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지나는 길에 있어요. ‘무념의 걸음’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왕복 3㎞ 정도 되는 칠연폭포까지 구간이에요. 이쪽은 길이 워낙 부드러워서 빠른 걸음이라면 왕복 1시간쯤이면 넉넉합니다. 칠연폭포는 암반을 따라 층층이 이어지는 폭포가 7개의 소沼를 이룹니다. 하나의 소를 넘친 물이 폭포 하나를 만들고, 폭포 아래 고인 소가 다시 넘쳐서 도합 여섯 개의 크고 작은 물줄기를 만들어내요. 폭포의 규모는 웅장한 물소리를 내기에는 어림없지만, 경관이 아니라 ‘걸음’에 마음을 두고 걷는 길이라 오히려 그게 더 맞춤이에요. 만일 웅장한 풍경이었다면 경관에만 마음을 다 빼앗기고 말 터. 걸어보면 알거예요. 경관이 ‘밖’을 보게 한다면, 걸음은 ‘안’을 보게 한다는 것을. 그제야 한산대사가 말한 ‘무념의 걸음’이란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관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목적을 향해 걷지 말고 그저 무념의 걸음을 통해 자신을 보라는 말이었겠죠.
여기다 무주 적상산의 절집 안국사에서 출발해 향로봉까지 왕복하는 4.5㎞ 남짓의 숲길을 덧붙여봅니다. 이 길에서 지금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쪽 사면을 온통 뒤덮은 노란 꽃을 피운 피나물 군락 때문이에요. 무주에는 또 부드럽게 이어지는 그윽한 강변길도 있어요. 금강을 끼고 강을 굽어보며 이어지는 잠두마을 옛길이에요. 잠두 1교에서 잠두 2교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벚꽃 흐드러진 봄날의 들뜬 걸음을 불러들이는 곳이지만, 화려한 꽃이 다 진 자리에 초록이 무성해지는 지금이라면 무념으로 걸을 수 있답니다.
묵을 곳과 볼거리
무주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는 무주덕유산리조트 (063-322-9000)에요. 리조트 안에서 곤돌라를 타고 해발 1,522m의 설천봉까지 단숨에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죠. 설천봉에서 그리 경사가 급하지 않은 산길을 따라 20여 분만 더 오르면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이에요. 6월 초쯤이면 덕유산 정상쪽의 덕유평전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납니다. 덕유산의 철쭉은 흰빛에 가까운 연분홍 색이라 화려함은 덜하지만 수수한 맛이 있어요.
신불사 근처에는 유일한 숙소인 블루베리힐(010-34251277) 펜션이 있어요. 대단한 풍경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일대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무주읍 용포리 일대의 금강변은 옛 강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경관도 좋지만 6월 중순 쯤 반딧불이가 나타날 때쯤이면 환상적인 풍 경을 만날 수 있답니다. 용포교 인근 강변의 펜션 ‘푸른강가애(愛)’(063-324-9115)와 ‘풍경이 있는 집’(010-7221-9800) 등을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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