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7. 16:00
'상실’이 그를 끌고 갑니다. 실향과 실연과 실패. 소중한 것들을 아프게 잃으면, 기다렸다는 듯 ‘시’가 그에게 옵니다. 두고 온 고향과 떠나간 사랑과 못 이룬 소망이, 그에게 남기는 최고의 선물인 셈이에요. 그러니 결국 잃는 것이 없습니다. 한없이 부박한 물질만능 사회에서, 더없이 질박한 서정의 세계를 구현해가는 사람. ‘손실 없는’ 그의 세상 속으로 말없이 훌쩍 건너가고 싶습니다.
강쟁리에 두고 온, 서정시
조금 가난하지만 많이 자유로워요. 안정된 직장과 고정된 수입이 없는 대신, 한정된 틀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지금이 그는 참 좋습니다. 이를 일컬어 그는 ‘가난과 자유의 우정’이라 부릅니다. 실천문학사 대표직을 벗고, 문학 강사로 출판 프리랜서로 떠돈 지 2년 남짓. 속절없이 작아졌던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이 ‘오래 전 그때’처럼 다시 커져 있어요. 시인을 청년이게 하는 건, 가난과 자유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요.
“시인은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가리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고통을 안고 있는, 깨어있는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시인은 평생 청년일 수밖에 없어요.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며 영원히 철들지 않는 존재로 남고 싶어요.”
그의 시는 쉽고 맑죠. 어렵거나 복잡한 말 한 마디 쓰지 않은 채, 보잘것없는 사물이나 가진 것 없는 존재들에 따뜻한 숨을 불어넣습니다. ‘자신을 낮춰’ 세상을 높이는 것이 그만의 마법. 그 마법의 빗자루를 타고,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나 어느새 잃어버린 것들이 가만가만 곁으로 와요. 퍽퍽했던 가슴이 서서히 촉촉해집니다.
“인간은 균열과 파편을 통해 성장해요. 내 삶의 가장 큰 균열은 실향이에요. 그 아픔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어요.”
그의 고향은 영산강 시원지인 담양 강쟁리에요. 그곳의 어른들은 대나무 소쿠리를 짜면서 노래를 부르죠. 소쿠리를 팔러 다니며 전국 각지에서 모아온 이야기를 노래로 엮은 것인데, 그것이 그의 문학에 큰 영향을 줬어요. 가난한 동네였는데도 먹을 것이 무척 많았다고 해요.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눠 먹었기 때문이죠. 온 마을이 집이자 학교였던 강쟁리를 떠난 건 여섯 살 때의 일이에요. 부모님과 함께 부산으로 이사하면서, 꼬맹이의 가슴에 깊은 ‘향수병’이 생겼답니다. 고향으로 가려고 툭하면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던 그 꼬마는 결국 이듬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는 그곳으로 홀로 돌아갔어요. 이번에는 부모님과의 이별이 아팠어요. 외로움이 사무쳤지만, 그 덕에 그리움이란 선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움이란 게 맑은 슬픔의 상태잖아요. 그 상태에서 난 왜 이리 쓸쓸할까, 난 어디서 왔나,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 해볼 수 있었죠. 결국 아홉 살 때 부산으로 다시 왔어요.”
시에 닿을 수 있는 힘, 고독
성장기 내내 그가 잘하는 거라곤 ‘혼자 있는 일’뿐이었요. 그땐 한심했던 그 능력이 지금은 가장 든든한 자산입니다. 홀로 있어야 자세히 볼 수 있고, 그래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한 대상을 하염없이 골똘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 그 힘을 주는 것이 ‘고독’임을, 고독해야 시에 닿을 수 있음을 그는 이제 압니다. 상실과 고독으로 점철된 생이 새삼 고마운 이유에요.
“남보다 뭐든 늘 늦었어요. 한글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뗐고, 대학도 스물다섯에 갔죠. 시도 늦게 만났어요. 소설 습작을 하다 군대에 갔는데, 어린 날의 짝꿍이자 오랜 친구였던 여자아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거기서 들었어요. 그때 처음 시가 제게 왔어요.”
군 제대 후에는 안마시술소에서 카운터 보는 일을 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앞 못 보는 동료들에게 책을 읽어줬어요. 시각장애인들에게 책을 읽어주려면 서사가 분명하고 이미지가 선명한 텍스트를 골라야 했죠. 문장을 리드미컬하게 읽을 줄도 알아야 했어요. 그 과정 자체가 ‘문학수업’이었어요. 친하게 지내던 맹인소녀가 어느 날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만 읽어주지 말고 모두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돼 달라”고. 그녀의 말을 ‘죽비’ 삼아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어요. 그때부터 오직 시만 생각했습니다. 숱한 낙선 끝에 스물여덟에 시인으로 등단했고, 수십 번을 투고해 그로부터 5년 후 첫 시집을 냈습니다. 실향이 고독과 그리움을 선물했다면 실패는 겸허와 끈질김을 선사했다. 잃는 만큼 얻는 것이 ‘삶 ’ 이라는 신비였습니다.
“부산에서 지역문예운동을 하다 서른다섯 살에 일산으로 왔어요. 도시도 인간이 만든 자연이에요. 맨 처음 호수공원을 봤을 땐 약을 타서 물의 선명도를 유지하는 걸 보고 한숨이 나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것마저 없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어요. 볼수록 눈물겨워요.”
눈물겨운 것들이 그를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도, 어쩌면 그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손택수 시인은
前 실천문학사 대표. 1970년 담양에서 태어났고,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한국 서정시의 본령을 잇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나무의 수사학≫•≪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 네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신동엽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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